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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로망 - 쉐프와 레스토랑을 이야기하다
박은영.박현정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제 세상에는 귀한 직업 천한 직업이 없어진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 은연중에 존재하는 그 직업의 서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농공상'을 직업 서열의 기준으로 여겨왔던 우리 나라에서 '장사'란 가장 천한 직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은 그리 훌륭한 직업에는 속하지 않았다.
물론 옛날에도 가장 훌륭한 음식 솜씨는 궁중에서 임금을 기쁘게 할 수도 있었다. (장금이를 보시라)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생업으로 삼아서 남의 주머니의 돈을 바라고 음식을 하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어디서 무슨일을 하든지 그 중 가장 최고가 된다면 그는 훌륭한 삶이 되는 것이다. 음식 솜씨가 좋으면 남의 집 찬모살이를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 '요리사'는 쉐프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예술가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만의 주방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며 뜨거운 불과 최고의 재료로 아름다움과 맛을 함께 창조한다.
그들이 만든 작품은 비록 접시 위에 올라와 있을 지언정 주린 창자를 채울 것이 아니라, 일단은 그 모양을 감상하고 그 냄새를 기억하고 그리고 우아한 칼솜씨로 작게 잘라서 그윽하게 입에 넣고 감상해야한다.
물론 그에 걸맞는 스페셜 와인도 곁들이는 것이 감상의 정도이다.
음식을 뚝딱뚝딱 쉽게 해치우면서 말도 잘 하던 그 제이미나, 부하 직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그 지옥의 부엌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쉐프라는 것이 어떤 직업인지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기 만의 주방을 갖는 것이 그들의 얼마나 큰 소망인지도 말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세계의 수많은 요리들과 유명한 쉐프들, 그리고 그들의 작업장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 기준이 되는 근거는 '미슐랭 가이드'를 들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그 객관성과 공정성으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들은 별의 개수로 그 식당의 수준을 매기는데,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한 개 받으면 가는 길에 꼭 들러 봐야 하는 식당, 별을 두 개 받으면 멀리 돌아서 가더라도 꼭 가야하는 식당, 최고의 영예인 세 개를 받으면 그 식당을 가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되는 식당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이 책 <키친 로망>에서는 그 중의 별 세 개짜리의 식당과 그 쉐프들을 소개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쉐프는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의 부유한 가문이던 스포르차의 궁정 연회 담당으로 수십년간 요리와 연회의 세계에 흠뻑 빠져서 살았다고 한다. 중세 르네상스 이탈리아 귀족들의 음식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준비하고 관찰하면서 요리법을 기록하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고 조리 도구들을 발명했다니 얼마나 놀라운 지 모르겠다. 개인용 냅킨을 고안하고, 두 조각의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넣은 음식을 생각해내고 그 이름을 고민하는 기록도 있다. 포크와 페퍼밀(후추 가는 기계), 와인 오프너까지도 그의 작품이니 음식의 세계에 그가 미친 영향은 어쩌면 미술사에 미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
훌륭하고 멋진 쉐프들과 그들의 주방과, 잊을 수 없는 만찬을 보여준 식당들과 동네 근처의 밥집처럼 편안한 식당들, 그리고 쉐프로서 하는 음식기행들이 이 책에 빼곡하다.
꼭 가봐야하는 식당들이 이리 많으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고 한다.
자, 나도 한 번 고민해 봐야겠다. 어디가서 무엇을 먹어야 죽을 때 억울한 일이 안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