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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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이름은 밝히기가 어렵다.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소녀'라고 부르면 어쩐지 <소나기>느낌이 나서 새로 이름을 하나 짓는다.
그 소녀는 황순원님의 소녀와는 많이 다른 편이니 말이다.
이 소설 <하이킹 걸즈>의 '은성'이가 생각나니, 나는 소녀를 '은별'이라 부르겠다.


내가 은별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은별이가 중학교에 복학했을 때이다.
이미 세 군데의 학교에 전학을 한 경력이 있고 일년을 쉬다가 2학년에 복학한 은별이는 탈색된 머리에 여기저기 갖고 있는 흉터, 그리고 큰 눈이 인상적인 아이였다.
학교 공부는 물론 알아들을 일이 없었고, 그저 가방 운전이나 하는 게 은별이의 일이었다.
그리고 3년 쉬고 복학한 금별이와 쉬는 시간에 나가서 담배 한 대 빨고(?), 애들한테 돈이나 좀 빌려(?)서 노는 게 일이었던 은별이는 시험을 보면 아주 꼴찌는 아니었다.
가끔씩 학교도 빠지고 애들하고 어울려서 놀다가 집에 안 들어가기도 하면서 은별이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까짓 이깟거 인생, 지가 별거야? 하여간 꼰대들은 증말 재수없다니까?'
그래도 속 얘기를 가끔씩 털어놓기도 하고, 포스 강한 금별이가 학교에 안 오면 담임 대신 데리러 가기도 한 은별이.
눈물도 많고 정도 많아서 그 잘난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쪽팔리게(?) "엉엉"  소리내어 울어버린 그 은별이는 지금 어엿한 아가씨다.
소질을 살려서 재미난 자기의 일을 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고 고되다.
"에휴,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걸......그럼 다른 사람 밑에서 이렇게 치사하진 않을텐데......"
이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엄마 엎에선 절대 안한다.


그 은별이가 참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너무도 성숙해진 그녀의 목소리도.


하는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인데다가 딸아이가 중학생이다 보니, 이 책 <하이킹 걸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하나는 아이들을 때리는 학교짱, 하나는 습관적인 도둑질을 하는 왕따.
사고를 친 나머지 소년원으로 가야하지만, 그 아이들은 실크로드 대장정을 제의 받는다.
실크로드라니, 비단길이라는 예쁜 이름만큼 즐거운 외국 여행을 생각한 은성은 더위와 고됨과 먼지 따위에 질려버린다.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보라와 마귀할멈 미주 언니까지 은성을 괴롭힌다.


우루무치에서 둔황까지의 1200킬로미터를 걸어서 주파하는 이 모험은 그들의 좌충우돌 해프닝과 소녀들의 깊은 우정,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 대한 부적응으로 괴로워하던 소녀들을 성장시킨다.


가끔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아이들이지만, 그 깊은 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가끔씩은 잊는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문학상'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읽도록 해야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하나하나가 완벽한 하나의 우주임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사족 한 가지, 작가의 말을 보니,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총 세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가 은퇴 후 실크로드를 따라서 걷는 경험을 쓴 여행기이다. 한 때 이 책에 빠져서 아나톨리아 고원을 그리고, 터키의 무서운 개들에게 쫓기는 꿈을 꾼 밤도 있었던 차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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