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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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가끔은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의 내밀한 일상과 마음의 흔들림과 부끄러운 소소하고 남루한 이야기들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은 그의 간결하고 무심한 문체 탓일까? 아니면 그의 이야기들이 사소하고 평범해서일까?


스펙타클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주인공들의 목숨을 건 정열에 넋을 잃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할 필요는 없겠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픈 사람에게  "나의 이 대단찮은 인생도 글로 쓰면 소설 한 편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즈쿠이시.
산에서 약차를 만드는 할머니와 함께 사느라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이다.
할머니와 헤어지고 시내에 들어 와 살면서 끊임없이 두통을 느낀다.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선인장이다.
선인장이 이 책의 중요한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것은 표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래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글이다.

" 홍채각, 가스테리아, 일출환, 검련각, ……. 언젠가 친구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선인장의 이름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 두 개가 병이 들었다. 며칠 전에 가스테리아를 내버렸는데, 오늘은 홍채각마저 밖으로 내놓아야 했다. 하나는 이상한 멍울 같은 것들이 생기더니 시들어 버렸고, 다른 하나는 작은 상처가 점점 깊어지더니 곪아 갔다. 선인장들에 왜 이상이 생기는지 처음에는 전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예쁘고 싱싱하던 선인장들이 왜 갑자기 죽어 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러 개의 화분들 중에 꽤나 아끼던 것이고, 그만큼 정성스럽게 가꾸어 왔는데…….
  결국 화원에 가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선인장에게는 적당히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라면서 혹시 너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가 아무 말도 없이 화원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뿌리를 땅바닥에 굴려도 살아남는다는 선인장.
그 선인장을 죽이는 것은 다름아닌 지난친 사랑과 관심이었던 것이다.
주인공 시즈쿠이시가 바로 선인장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의 큰 관심과 사랑도 바라지 않고 세상에 큰 관심과 사랑도 주지 않는다.


한 때 선인장을 좋아하던 나는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전에 근무하던 곳의 근처에 까페가 하나 생겼다.
비록 지하였지만 넓고 쾌적한 공간이 사람들이 편히 앉을 만했다.
그 곳을 자주 찾게되는 이유는 의자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황토 화분에 길게 키운 선인장들 때문이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선인장을 키우느라 주인의 고생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부터는 더욱 자세히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집에 선인장을 키우기 시작했다.
비록 가시를 품고있으나 쭉 뻗은 몸매며, 태양을 바라는 그 일편단심과 무엇보다 물을 한 달에 한 번만 주어도 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여름이 되면 베란다에 내 놓았다가 추워지면 들여놓기를 몇 년째 하고 있다.
황토화분에 심겨진 선인장은 이쁘게 잘 자란다.
훌쩍 큰 키는 나의 키를 넘어선 지 오래다.
네 개의 크고 작은 선인장을 옮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가시 때문에 나무에 손을 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나르는 사람의 이마에 박힌 큰 가시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충직한 선인장이 참 아름답다.
한여름 햇볕을 맘껏 받고 있는 선인장은 행복해 보인다.
사람의 관심보다는 자연의 관심이 더 필요한 것이다.

 

시즈쿠이시는 가에데를 다시 만날까?
선인장같은 시즈쿠이시에게 햇볕은 누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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