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넘치는 책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을 골라야할지 갈등하곤  한다.
섬세한 표현과 아름다운 묘사로 감성을 건드리는 감각적인 일본 소설과 스타벅스 커피와 루이비똥을 원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다루는 소설, 서양과 동양의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노하는 인문서까지 너무도 다양한 책들 속에서 가끔은 방황을 한다.
서점 가득한 책들과, 컴퓨터에 접속만하면 볼 수 있는 책들의 홍수.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그 안에서 차라리 이전의 궁핍이 그립다면 어불성설일까?
오히려 이 풍요가 나는 공해처럼 느껴진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책이 흔하지 않았다.
온 동네의 읽을 거리들과 작은 학교 도서관의 책을 다 읽고도 항상 읽을거리에 목말라하던 그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들은 명작과 고전 일색이었고,
어쩌다가 어른들이 사 주시던 책들도 그랬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모가 내게 사준 책은 <데미안>과 <마농레스꼬>였다.
기억도 선명한 누르스름한 양장본의 세로줄 글씨.
내용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얼마나 닳도록 읽었던지......


요즘 아이들은 책의 폭풍 속에 산다.
읽을거리가 넘치고 흘러서 선택의 고민 속에서 얄팍하고 감각적인 책들, 화려한 책들, 어른의 책들을 선택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픈 마음에 노골적인 연애소설을 자랑스레 들고다니기도 하는 중학생들을 보면, 웃음도 나오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책에 대한 이해와 감상이라는 것이 아무런 기초없이 그저 양만 쌓아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문학을 이해하려면 고전이 기초가 되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채만식과 김동인을 읽지 않고 어찌 소설을 말할 것인가.
고전이 고전인 것은 시대를 불구하고 그 진정한 가치를 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변하더라도 그들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세상과 냉엄한 인간의 갈 길들은  시대를 초월한다.


톨스토이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전쟁과 평화, 부활, 최근에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톨스토이 단편집>이 인기다.
어린이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지금 막 책장을 덮은 <크로이체르 소나타>까지 그가 아우르는 세상은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세상 전부이다.
엄격한 금욕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실은 여자 없이는 잠을 못 드는 사람이었다느니, 히는 온갖 소문과 한 열차역에서 객사한 그의 죽음까지도 그야말로 작가스럽다.


이 소설집 <크로이체르소나타>는 4개의 중단편을 싣고 있다.
그 중 가장 이끌리는 소설은 세번 째 작품인 <악마>였다.
오윈의 서문을 먼저 읽다보니 가장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남자 예브게니는 우연히 한 아낙네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남은 삶을 파괴하는 치명적 사랑의 시작이었다.
예브게니의 스테파니다에 대한 감정의 이끌림은 너무도 생생하고 절실하게 묘사되어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아프게 했다.
소설의 진행은 예브게니의 마음의 움직임처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힘겹게 진행된다.
마치 그는 바로 여기서 고뇌에 가득 차 서성이고 있는 듯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크로이체르 소나타>나 <신부 세르게이>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염세적이고 적나라한 생각들에 온전히 동조할 수는 없더라도  그가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서 충분히 알수 있었다.
<가정의 행복>은 톨스토이의 작품 중 특이하게도 서술자가 여성이어서 좋았다.
그러나, 묘사된 여성의 심리는 작가의 주관적 평가가 강하게 드러나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마샤는 어린 나이에 자신을 도와주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와 결혼을 한다. 그에 대한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으로 믿는 마샤의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 카탸가 나간 후 우리 둘은 침묵했고, 우리의 주변도 온통 고요했다. 오직 종달새 한마리가, 저녁때처럼 간헐적으로 수줍게 지저귀는 게 아니라, 밤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침착하고도 차분하게, 뜰 전체에 울리도록 노래했다. 그러자 골짜기 아래 멀리서 또 다른 한 마리가 그날 저녁 처음으로 그 소리에 화답했다. 우리와 가까이 있던 녀석은 마치 잠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듯이 잠잠해졌다가,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떨리는 음성으로 더 날카롭고 애절하게 노래했다. "
                                                        <가정의 행복> 47-48쪽

이 책을 읽으면서 중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책들에게 지쳐있었던 것일까?
어린 시절처럼 인생의 낭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끼면서 행복한 독서를 했다.
자연에 대한 찬양과 종달새의 노래에 대한 길고 긴 묘사는 마치 전원으로 나를 이끌듯 청량한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장 보수적인 계층은 노년층이고 진보적인 계층은 청년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전혀 옳지 않다. 가장 보수적인 계층은 청년층이다. 젊은이들은 잘 살아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거나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엣날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본보기로 삼기 때문이다. "
                                                            <악마> 310쪽

이 얼마나 날카로운 지적인가. 옛 사람들의 지혜를 찬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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