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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아직 학생일 시절에 나의 꿈은 '세계 여행'이었다.
유럽을 주유하고,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아메리카를 정복하려고 했었다.
외국의 풍물을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았고,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열심히 읽었다.
당시에는 국내 작가의 글이 그다지 흔하지 않았던 관계로 주로 외국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또한 고등학교 시절 나의 최대 전략 과목은 국어와 더불어서 지리였다.
멋쟁이 지리 선생님은 나의 노트를 견본으로 아이들의 노트 검사를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어려워 죽겠다는 지리가 나는 왜 그리 공부하지 않아도 다 알겠는지......
공부해도 이해 못하던 물리와 참으로 대조되었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해외 여행이 그리 흔하지 않은 시대였다.
우리 때 외국은 외교관이나 나가는 것이었다. 해외 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그리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는 싸우디에 돈 벌러 가는 아저씨나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삼촌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여권과 비자만 있으면 해외에 나가기 시작한 때, 나는 처음으로 장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외국 여행을 했다.
우스운 것은 그 때까지 제주도도 못 가본 채, 외국 여행부터 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제주도에 가서보니, 내가 가본 외국보다 더 좋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몸만 힘들지 별로 좋은 줄도 몰랐다. 미리 공부를 하고 갔어야, 아는 만큼 보고 오는데, 급히 나가느라 공부는 커녕 옷도 제대로 못 챙긴터라 불편하기까지도 했다.
물론 처음보는 광경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보니 어느덧 이 나이다.
외국여행 많이 한 사람들의 책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고 거기서 퍽이나 만족햇는지 좀체 움직일 여유도 마음도 안 생겼다.
국내에서 발간된 해외 여행기를 거의 다 읽어서 이젠 어느 나라엔 어디가 좋은지, 어느 곳에 가면 뭘 먹어야할 지까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 책은 참으로 남달랐다.
한 두달 파리에 다녀온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작가는 파리에 대한 사랑과 동경으로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파리 생활을 시작한다.
늘 사랑해마지 않던 파리지만, 미국인인 그의 사고로는 파리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아파트 구하기부터, 아이 유치원 보내기, 그리고 파리의 식당에서 밥먹기와 아이 데리고 응급실 가기까지의 모든 생활들을 그는 놓치지 않고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서 파리는 어떤 곳인지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아름다운 야채와 역사 깊은 까페와 골목길을 달리는 버스들, 그리고 공원의 회전목마가 기억에 남는다.
때로는 아내의 눈으로, 때로는 아이의 눈으로 우리에게 파리를 보여주는 그의 글이 참 아름다웠다.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눈은 사소한 사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속에서 프랑스다움을 발견해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파리의 동아리였다.
늘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 때로는 친절이 부담되는 그들이지만, 그들 내부로는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있었다.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고 당신을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 만나주지만, 결국엔 당신은 우리가 아니라는 그들만의 파리가 있단다.
그 역시 오랜 시간을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하면서 살았지만, 철저한 고독을 그리워하는 미국인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