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
빌 브라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하는 말 중에 가장 큰 거짓말이 있다면
"내가 살아 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한 권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그것은 '소설'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꾸며진 이야기가 가미되어야 한다.
왜? 허구성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요즘 텔레비전의 사극 드라마를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 소설일뿐 역사는 아니니까 말이다.
가끔 사극을 역사 공부의 전부로 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작가는 서문에서 여기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물론 자신의 경험도 있을테고 사료를 조사한 결과 생각이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그들과 했던 놀이들을 기억해내긴 했지만, 이 사람처럼 많은 기억이 쏟아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했기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작품일 것인가 말이다.

 

어린 시절 그 누구가 말괄량이나 개구장이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얌전한 공부벌레였어. "라고 말한다면 그는 사람 대하는 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일지도 모른다.
흔히들 우리가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라 꼽는 조숙한 일인칭 주인공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의 놀라운 내면의 성숙과 인생에 대한 통찰에 화들짝 놀라고 감명 받는다하더라도 그는 바깥에서는 개구장이 어린일 뿐이다. 왜? 어린이는 어린이니까.


빌 브라이슨이 성장했던 시절의 미국은 소비가 미덕인 시대로  그야말로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명 스포츠 전문 기자인 아버지와 역시 기자인 어머니를 두어서 더욱 유복했던 주인공은 신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책에는 한 소년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의 여러가지 고통과 성숙의 통과 의례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사소한 어떤 사건들에 담긴 사회적 의미일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여러가지 일들을 담담히 전달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1950~60년대 미국이 갖는 정치, 외교, 사회 문제를 엿볼 수 있었고, 미국인들이 그 일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혹은 어떤 정치적 사건에 보이는 반응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자라온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렴풋하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갔던 시장의 풍경들이다. 할머니와 찍은 사진으로 기억되는 창경원의 모습은 그릴 수 있다.
처음 텔레비전을 들여놓았던 때의 벅찬 감정과, 그 다리 달리고 문 열리는 텔레비전 위에 검정색 전화기를 올려 놓고 친구들을 불러 보여줬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그 흑백 텔레비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음이 방송되던 기억과 80년 광주의 사건을 보도하던 뉴스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거기에 광주에서 고통을 받는 어린이들에게 위문 편지를 쓰라던 담임 선생님의 이름도 기억이 난다.
또, 동네에서 가장 먼저 컬러텔레비전을 장만한 텔레비전광인 우리 엄마는 지금도 텔레비전을 늘 보신다. 그 새 텔레비전으로 고교 야구를 보다가 들었던 이웅평의 귀순 비행 사건도 기억이 나고, 아쇼ㅣ안 게임과 올림픽도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내 유년의 기억은 왜 다 텔레비전이 그 고리가 될까?
그 때 너무 많이 보아서인지,지금은 잘 보지 않는다.
내가 빌 브라이슨 처럼 책을 쓴다면 제목은 <텔레비전 키드의 생애>가 어떨까?

 


1950년대 전쟁 후의 호황으로 소비가 미덕인 미국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은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비록 그것이 내 나라의 같은 시기의 불행과 맞물려 주인공이 좀 미울진 몰라도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닌 걸 어쩌랴.
이 소설은 버찌씨의 <이해의 선물>과, 인자한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큰바위 얼굴>과 더불어 미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초원의 집>처럼 서부 개척 시대도 아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뉴욕도 아닌 딱 그 곳.
진정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느 한적한 작은 도시를 나는 지금 문득 그리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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