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악녀
페이 웰던 지음, 김석희 옮김 / 쿠오레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에덴의 악녀>라는 제목을 듣고 얼핏 떠오르는 것은 에덴 동산의 이브일지도 모른다.
순진한 남자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즉 세상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여서 인류를 불행에 빠지게 한 그녀.
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착하기만 한 남자를 구슬러서 같은 죄를 짓게한 그녀.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주고, 세상의 모든 남성에게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하는 고통을 주었다는 그녀 말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은 악녀일지도 모른다.
이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뼈와 살을 깎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고통인 굶주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능히 참아낸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 10달 동안 무거운 배를 가지고 다녀도, 살을 찢는 고통을 겪어도 참는다.
댓가없는 행복은 없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여자는 바쁜 바깥 일을 하더라도 집안을 깨끗하고 따뜻하게 가꾸고, 늘 맛난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은 깔끔하게 단장시킬 줄 알아야한다.
물론 그 아이들은 공부도 잘 해야하고 예의도 바르며, 그녀의 다림질 솜씨는 올림픽 금메달감이고 그녀의 음식 솜씨는 장금이도 울고 가야한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젊고 아름다워야하며 지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남자를 잘 이해하며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연구를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 여자는 악녀가 될 수 밖엔 없는 지도 모른다.


악녀와 천사의 차이는 뭘까?
단지 자신의 내면의 솔직함을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는 것의 차이일까?


이 소설의 루스는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외모로 인해서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분신인 아이들조차도 언젠가부터 그녀의 기쁨이 되지 않는다.
따뜻한 저녁을 차려놓은 깨끗한 집에 남편 보보가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천사같은 외모를 한 가냘프고 섹시하고 돈 많은 메리 피셔 때문이다.
보보는 바람을 피우면서 아내인 루스에게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루스는 못 생겼기때문에 그런 취급을 받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비록 그는 정직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자였던 루스를 악녀로 만든다.
자신의 집을 태우고 분신인 아이들을 남편의 정부에게 떠맡기고 치밀하고 교묘한 계략과 행동으로 보보와 메리를 파멸시킨다.
아마 악녀는 머리가 좋아야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한다.
바로 자신을 악녀로 만든 메리 피셔의 모습으로 말이다.
어쩌면 루스는 메리 피셔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루스가 활동하는 부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빠른 화면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드라마를 많이 썼다더니 그 영향인 듯하다.
평범하기조차 힘들었던 루스를 이렇게 변모시킨 것은 바로 그녀의 깊은 욕망이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의 과정은 악녀가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순한 사람은 이용당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당차게 지키는 사람이 더욱 매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번뜩이는 재치와 신랄한 풍자와 무심한 듯한 묘사들이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어찌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새로운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도구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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