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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아라비안 나이트
리처드 F. 버턴 지음, 김원중.이명 옮김, 마르크 샤갈 그림 / 세미콜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아라비안 나이트는 언제나 상상의 세계를 헤매이게 한다. 날으는 양탄자를 탄 신밧드와 함께, 혹은 독 속에 든 도둑들과 함께, 또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 함께 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다 였다.
우리에게 알려진 아라비안나이트가 어린이를 위하여 선별된 이야기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 셰에라자드가 천 일간 들려주었다는 - 수많은 이야기들은 더 잔인하고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있었지만, 어쩐지 아리비안나이트는 어린이 방송 시간에 나올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완역본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 굳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책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를 읽고 싶었던 것은 샤갈의 그림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림에는 문외한인 채로 살아오느라 그 유명하다는 샤살의 그림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거니와 그가 아라비안 나이트의 삽화를 그렸다는 것은 더욱 몰랐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이미 알고있는 이야기이니, 샤갈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늘 범하는 오류를 또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삽화보다는 텍스트에 중점을 두는 버릇이다. 이 책에 실린 네 가지 아라비안나이트가 실은 처음 읽는 이야기였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가면서 드로잉과 판화를 만나면 그저 한번 훑어보고 다시 글자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이 책 <샤갈의 아라비안나이트>에 실린 이야기는 총 4편밖엔 되지 않는다.
책이 두꺼운 양장 커버에 252쪽이나 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각 이야기 하나하나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던 신밧드나 알리바바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것일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아름다운 흑단마를 타고 날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스 알 나하르 공주를 얻은 페르시아의 왕 사부르의 아들 카마르 알 아크마르 왕자의 이야기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나오는 바다의 여인 줄나르와 아들 바드르 바심왕의 이야기이다. 바드르 바심왕은 바다의 삼촌 살리의 이야기만 듣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 조하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얻기 위한 여행을 떠나지만 오히려 마밥에 걸리고 만다.
세번째 이야기는 어부 압둘라와 인어 압둘라의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빵장수 압둘라와 임금 압둘라도 나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끝없는 신의가 이 이야기의 주제이다. 또 한가지 여기서 나는 이슬람 세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삶은 알라께사 잠시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알라가 맡기신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카마르 알 자만과 보석상의 아내 하리마의 이야기이다. 남편을 배신하고 정부를 따라온 하리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헬레네에 비견될 것이다.
아름다운 왕자는 달과같은 얼굴로 표현되었고, 그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자신의 사랑을 얻는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우정, 그리고 사랑과 갈등과 속임수로 이 세상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그토록 정교하게 짜 놓은 것을 보면 아라비안나이트의 문학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 편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다시 앞으로 펼쳐서 그림을 살폈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인 표지는 바다의 딸 줄나르와 그의 아들 바심왕에 대한 이야기의 삽화이다.
바다의 딸 줄나르는 마법에 걸린 자신의 아들 바심을 구하기 위하여 이프리트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
짙은 청록색 밤하늘과 몽환적인 달빛 아래에서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이다.
초록색이거나 붉은 색의 바탕에 형체를 흐려 놓은 사람들의 알몸들이 부끄러움 없이 그들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 그림들은 샤갈의 그림이 보여주는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잘 드러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