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은 결국 두 갈래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나의 길은 경쟁에 가위 눌리면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허겁지겁 쫓아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안락한 일상을 버릴지라도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일 것이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에필로그 327쪽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한 것일까.
이 책의 말미에서 나는 그만 미궁에 빠진 듯이 허망했다.
책을 읽는 내내 상민, 영교와 함께 촐라체 북벽을 오르고 그리고 크레바스에 빠져서 죽은 이를 만나면서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면서 하산을 하던 나는 다 내려와서 더 깊은 베르크슈룬트에 빠진 느낌이다.
아니, 베이스캠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촐라패스를 넘나들면서 그들을 구해낸 "나"가 바로 이런 느낌일까?
불멸에의 영성을 따라 이상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 주변엔 그런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다들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지고 다른 사람의 물질적 성취를 부러워하고 욕하느라 속이 곪아터지면서도 우리는 자신만큼은 고결한 그 무엇을 찾노라 말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 책 <촐라체>를 다 읽으면, 혹은 그들과 함께 촐라체 북벽을 타 넘으면 어떤 깨달음이 나를 기다릴 줄 알았다면 나는 아직 어리숙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만년설에의 동경과 단독 등반에의 단촐하고 정갈한  매력이 또 하나의 삶의 '화두'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눈과 맑고 투명해서 푸르기까지 한 빙하와 오만하기 그지없는 산과 무심한 하늘만이 배경인 이 소설은 그리하여 더욱 청신하고 단아하다.

삶의 모든 것이 자신을 버린다고 느낀 그들은 산으로 간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산에게 자신을 위한 길을 부탁한다. 여기가 삶의 마지막 장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늘 입에 달고 살던 '죽고싶다'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체득하고 삶에의 욕망과 자신이  가야할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이 허망한 세상에서 가졌던 욕심과 의심과 미련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이 부질없는 세상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내달리는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는 것인지.
내 주위에서 서로 잡아당기며 달려가는 저들은 누구인지.
오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진정 내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가도......
이것이 이 책 <촐라체>가, 그리고 히말라야의 촐라체가 나에게 주는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밤 어쩌면 나도 알피니스트가 된다.
산이라고는 지리산과 금강산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나는 오늘도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내게 쏟아지던 별들을 그리워하면서 그 별들이 촐라체에서 그가 보던 별빛일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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