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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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일년이 참 길게 느껴졌다.
같은 반으로 만나 일년 내내 화장실까지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도 해가 바뀌어 반이 갈리면 점점 어색해 지다가 기어이 잊혀진 존재가 되곤 했던 그 시절엔 10년이란 세월의 약속은 영원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읽기를 나이든 사람이 세월의 흐름을 빠르게 느끼는 것은 기억력의 감퇴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바로 어제 그제 일어난 일들이 희미해지면서 오히려 먼 시간 전의 기억들조차 시간 감각이 흐려져 바로 전날의 일과 혼동되기 때문이란다. 반면에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기에 세월의 흐름을 느리게 받아들인다는 뜻일 것이다.


이제 어느덧 마흔이 넘고 보니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십 년전에 같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만나도 바로 어제의 일이었던 듯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 동안의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갈 때 나는 나이먹었음을 느낀다.

 

그런데, 신달자님은 마흔에야 생의 걸음마를 배워다고 한다.
그녀의 걸음마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의 걸음마였다.
남편의 그늘아래서 살던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힘을 길러야함을 알게된 것은 자아 인식의 고상함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고자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그러나 성실하고 가족을 위하는 미워할 수 없지만 어려운 남자를 만나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던 시를 쓰는 신달자는 어느날 느닷없는 남편의 병을 만난다.
그리고 그 병은 그를 23년이나 아픈 사람, 돌보아야할 사람 그래서 가족의 특히 아내의 몸도 마음도 정신도 파괴하고야 마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말이 하기 쉬워서 23년이다. 한 아기가 자라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그 긴 시간동안 그녀는 몸이 불편하고 정신마저 황폐해진 남편을 수발한다.
엣말마따나 긴 병에는 자식도 소용없다.
시인이던 그녀는 그날로 간병인이고 엄마이고 생활의 책임자가 되었다.
세상의 물정을 몰라서 갖고 있던 작은 재산조차 잃어야할 정도로 아둔한 아줌마였던 그녀.
남편이 주는 돈으로 콩나물 사고 두부 사던 그녀는 깨어나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중환자실에서 몸을 꼬부리고, 억지를 부리는 남편의 넥타이를 얻어 맞아가며 다시 매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억척스런 여자가 된다.
그 힘이 무엇일까? 바로 아이들이다.

 

여자의 삶과 어머니의 삶이 천양지차라는 것을 아이를 낳은 사람은 안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어머니를  우주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몸이 아파도 어머니는 아이가  어머니를 필요로하면 아프지 않다.
닫혀진 철문도 힘으로 열고, 아이를 덮치는 자동차도 막는다.
곱디곱게 자란 시인 신달자를 강인한 삶의 주인, 그녀의 어깨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려도 헤쳐나가는 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녀의 아이들임을 안다.

 

이제 긴 고통의 터널이 끝난 지금, 그녀의 어깨가 스스로를 안아 보듬고 지친 몸을 위로하고 그리고 마흔에 배운 생의 걸음마를 더욱 크게크게 내딛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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