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검은 색 배경에 한 소년의 얼굴이 떠 있다.
금발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아주 귀여운 얼굴이다.
그러나 어딘지 이 아이의 얼굴은 어두워 보인다.
짙고 커다란 눈,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눈썹, 오똑한 콧날은 고귀함을 드러내고 야무지게 다문 입술은 어떤 말도 할 것 같지 않다.
아이답지 않은 검은 색의 옷은 그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질감이 감촉을 손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그 눈.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담은 그 눈이 이 아이를 아이로 보이지 않게 한다.
책을 얼굴 높이로 들고 아이와 눈을 맞춰 보았다.
그는 아이가 아니다.
이런 눈은 아이에겐 있을 수 없는 눈이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세상을 다 살아버린 눈을 한 그는 누구인가.
그의 고백은 너무도 슬프고 음울해서 나의 한 밤을 다 차지한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인 이 소설은  한 세상을 겪고 난 노인의 말투로 시작된다.

 

"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
                                        - 본문 11쪽

그렇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고백의 대상인 소년이 누구인지는 소설의 말미에서나 알 수 있지만, 막스는 너무도 절절하게 그의 곁에 있고 싶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새미에 대한 막스의 그 깊은 애정의 비밀은 무엇일까?
1부부터 끊임없이 등장하는 램지부인은 막스에게 어떤 존재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난 막스는 노인의 얼굴과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는 날마다 젊어진다.
10대 소년일 때는 50대 장년의 모습으로 아랫층의 아름다운 앨리스에게 빠진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빗나간 오해를 부르고 사랑하는 앨리스를 잃고 만다.
그의 남은 평생은 날마다 더 젊고 멋진 청년이 되어가면서 앨리스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 신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가 일치하던 그 시절에 그는 앨리스를 다시 만나, 앨리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떠난 앨리스.
그녀를 잃고 막스는 죽음과도 같은 삶을 지낸다.
그런 그의 곁을 다시 찾아 낸 평생의 친구. 단 하나뿐인 막스의 친구 휴이와 전국을 떠도는 여행을 한다.
앨리스의 편지 속에 아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
앨리스와 막스, 막스와 휴이, 휴이와 앨리스.
이들의 관계는 평생을 두고 이어지지만, 정작 그 사랑의 가운데에 있던 앨리스는 자신을 평생 사랑하던 막스를 알아보지 못한다.
단지 그는 휴이의 어린 아들 리틀 휴이다.
그것도 곧 떠나갈......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은 젊은 시절에나 가능할 것인가.

 

가끔씩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서 왜 그 때는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없었는지 아쉬워하곤 했다.
그야말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그 많은 어설픈 실수들과 부끄러운 잘못들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이리저리 좌충우돌 실수하고 상처받던 그 시절이 내게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임을 안다.
이젠 웃을 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을 사랑할 줄 알고, 따스한 봄 햇살 아래의 산책의 즐거움을 알고, 뜨거운 커피의 행복을 안다.
내면의 성숙과 어울리는 외모의 쇠락을 슬퍼하지 않을 줄도 안다.

막스가 가질 수 없었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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