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마차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4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로써 호시 신이치의 쇼트한 이야기를 총 네권을 읽었다.
호시 신이치는 데뷔당시부터 매달 70매 정도의 글을 규칙적으로 썼다고 한다.
작품을 쓰는데, 잘 될 때는 더 많이 쓸수도 있고 안 될 때는 안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도 항상 한결같은 매수를 쓴다는 것이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해 호시 신이치의 후배 작가인 간베 무사시는 이런 말을 한다.
" 그러나 호시씨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규범을 엄격히 지키며 연습과 정서(精書)를 반복하여, 한 달 매수까지  정해 양질의 작품만을 발표해 왔다. 때문에 1000편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기 규제를 좀 완화했다면 2000편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요령을 피우면서 작업을 했다면 3000편을 썼을지도 모르지만, 엄격한 자기 관리로 이루어낸 1000편에는 그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
                                                            -  해설  간베 무사시

그의 이러한 저작 습관을 간베 무사시는 스스로를 엄격히 관리한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완성된 작품들 하나하나를 브랜디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 풍속에서 철학, 과학, 역사까지, 이 세상 다양한 만물을 한 알 한 알의 포도 송이라고 생각해 보자. 포도송이는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먹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즙만을 짜내 발효시칸 포도주를 만들어냈다. 현실의 만물을 취사선택하여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세계라는 의미에서 소설은 이 포도주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껏이다. 그런데 호시 씨의 쇼트쇼트는 그 단계에서 한층 더 발전하여, 즙을 발효한 후 증류 숙성시킨 브랜디로서 세상에 나왔다. 즉, 보통 소설보다 한층 더 일반화된 우화이며, 포도 찌꺼기가 깨끗하게 여과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  해설  간베 무사시

작가들의 가장 큰 결함이 무절제라는 생각을 나는 어디에서 하게 된 것일까?
천형을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그 삶의 무게가 너무 고단하여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줄 알면서도 낮과 밤을 바꾸고, 폭음을 하고 항상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종이를 꾸기며 지낸다는 생각을 할까?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깔끔하고 명료한 작업- 비록 완전 삭제의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지만 -, 작업실을 따로 두고 아침저녁으로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가는 늘 허약한 육체와 명료하지만 냉소적인 정신을 가진 안경 쓴 사람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호시 신이치의 자기 규제가 참으로 감탄스럽다.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쓸 것만 골라서 엄격히 가리고 단련하는 모습이 그를 쇼트쇼트의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 <호박마차>에는 27편의 쇼트시리즈가 실려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악마의 의자>라는 제목을 한 나름대로는 긴 소설이다. 11쪽의 분량이니 말이다.

한 고층 빌딩에서 개업 기념으로 신기한 방을 만들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서 빌딩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상업적 계획이었다. 그 방은 바로 악마의 방이다. 그 안건을 낸 기획팀 청년이 그 프로젝트를 맡아서 실행했다. 진짜로 으시시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닌 진짜 악마의 방을 재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을 오픈 했다 사람들은 그 기괴한 실내장식과 가구들에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날밤, 인테리어를 맡은 디자이너에게 악마가 찾아온다.
악마는 그에게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선택을 강요한다.
미운 사람은 있었지만, 죽이고 싶을만큼 미운 사람은 없었던 디자이너는 그만 고민에 빠진다. 선택하지 못한 채 날이 밝으면 그가 죽기 때문이다.

 

"남자는 열심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점차 악마적인 충동이 들끓었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다. 전례없는 어마어마한 인물...... 그 자를 없앤 것은 자신이라고 먼 훗날까지 기억하며 즐거워할 수 잇을만한 자가 좋다. 그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어차피 아무도 믿진 않겠지만, 그 말을 하면서 자신만은 사실임을 알고 있는 기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 본문 189쪽

여기까지 읽었을 때 누구나 그 나라의 유명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호시 신이치는 달랐다.

결국 그가 선택한 인물은
"네가 죽어라." 였다.

이 얼마나 호쾌한 반전인가.
호시 신이치의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꼽고 싶다.

간베 무사시는 그를 젠틀맨이라 부른다.

젠틀맨인 그는 우리에게 반전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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