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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코짱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0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그러므로 이 한 권은 나, 호시 신이치라는 괴상한 작가 그 자체를 쇼트 쇼트 스토리로 완성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후기 중에서
호시 신이치라는 이름을 알고 나서 짧은 기간에 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을 기회를 얻었다.
그 중 이 책 <봇코짱>은 유달리 독특한 색채를 풍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러다가 작가의 후기를 보았다.
이 책 <봇코짱>은 작가가 직접 선별한 이야기 단편집이라고 한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39편인데, 초기 작품을 주로 골랐으며, 또 하나의 특징은 그를 운명적으로 끌어당긴 짧은 형식의 소설들이 많다는 점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골라서 수록했다는 점임을 작가는 밝히고 있다.
미스터리, SF, 판타지, 우화, 동화등등의 분위기를 보이는 이 쇼트한 소설들은 작가 호시 신이치의 특징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많은 작품 중에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반전이 있다.
바로 <생활유지부>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 속의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쾌적한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소설의 서술자는 이 도시의 생활을 쾌적하도록 유지하는 생활유지부의 외근직원이다. 어느 날 그들은 과장의 명령으로 다른 날과 다름없이 외근을 나가고 그들은 받은 명령을 수행한다.
아름다운 전원 주택, 그림을 그리며 여가를 즐기는 중년 신사, 자전거를 타는 젊은 연인들을 보면서 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사회가 평화로울 수 있는 것도 다 정부의 정책 덕분이지. 국민 개개인이 충분한 토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책."
본문 81쪽
가뜩이나 땅덩이가 좁은 일본 사람이 한 말이라서 예사로 들리지가 않았다.
그렇다. 그들이 하는 일은 나라의 인구 수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도록 사람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반발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필요악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속인다.
"모두가 공평하게 전쟁 방지를 위한 부담을 져야 합니다. 생활유지부의 계산기가 매일 선택하는 카드는 절대로 공평합니다. 뒷거래가 들어가 있다는 소문이 난 적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인과 아이를 차별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살 권리와 죽을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
본문 85쪽
아침마다 그들의 계산기는 죽일 사람의 명단을 뽑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영화 <아일랜드>의 로터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클론들인 것을 모르는 그들은 그 복권 추첨이 낙원으로 가는 티켓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그 관계가 의심스러운데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일랜드의 추첨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통점이라면 인간성을 잃어버린 자들의 추첨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역시나 그 마지막은 다른 이들의 목숨을 정리하는 그 사람이 오늘 추첨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호시 신이치다웠다.
섬뜩한 소재와 기발한 진행,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들은 39편의 쇼트쇼트를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