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땅
윌리엄 랑게비쉐 지음, 박미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막에서 보면 모래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단다.

어제는 마을이었던 그 곳이 내일은 모래 언덕이 되어 버린다는 그 곳.

모래들은 기다란 산맥을 만들어 꿈틀거리며 전진한다.

그러니, 모래들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한다고 말할만도 하다.

모래들은 그토록 온몸을 뒤채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하찮은 인간들의 무모한 도전 앞에서 모래들의 코웃음이 들린다.

 

저자 랑게비쉐는 미국의 기자다.

그는 단지 사막 가까이 가고 싶은 이유로 사하라를 횡단한다.

그가 간 길은 아프리카 북쪽 알제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한다.

알제리를 나와서 니제르 도곤두치와 니아메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리와 모리타니아를 지나 세네갈에서 끝난다.

그 길을 그는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가기로 결심한다.

사막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이다.

정치적인 어떤 이유로 미국인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작가도 되고 과학자도 된다.

현지인들이 타고 다니는 사파리 버스 - 트럭을 개조한 -의 대추야자 자루 위에서 덜컹거리고 찌는 듯한 더위에 모래 폭풍을 맞으며 그는 앞을 향해서 전진한다.

모래가 서걱이는 빵을 먹고 전갈을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면서 그는 그들의 열악한 사정에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을 향한 이유없는 친근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프랑스인을 욕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손으로 밥을 먹기도 한다.

그가 만난 것은 서구 열강의 약탈에 찌들고 자기들끼리의 정치 놀음에 희생되는 아프리카 사람들 뿐이 아니다.

그는 더러운 강물이라도 길어서 차를 대접하는 기품있는 흑인 뱃사공을 만나고 불구가 된 남편과 네 아이를 거두는 씩씩한 말리카를 만난다.

덥기만하고 먹을 것도 물도 부족한 그 곳, 사하라.

 

랑게비쉐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거기서 아프리카 여성들을 보았다.

피부의 색깔로 차별받고 여자라서 차별받는 이중의 차별로 고립된 아프리카 여성들의 삶이 눈물처럼  나를 흔든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도 없고 친척집에도 남편의 하락으로 가야하는 여성들.
농사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해야하는 그녀들.
찌는듯한 더위에도 손과 발을 가리려고 스키 장갑과 털양말을 신고서 차안에서도 내릴 줄 모르는 여자들.

그 여자들의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 남자들의 모습.
그들은 차안의 여성들이 덥지 않을까 걱정하는 랑게비쉐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슬람의 진정한 여성상은 너무도 귀중해서 보호받는 존재인 것을 잘못된 종교의 힘은 아프리카의 소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낙타와 교환을 하며 가출을 유도한다.

 

랑게비쉐는 이 긴 사막횡단을 어떤 마음으로 견딘 것일까.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다 해도 그것은 종교적 해탈을 이루기 위한 고행에 다름이 아닐진대, 그가 원하는 득도는 무엇인가.

인샬라.
그것이 그의 깨달음인가.




사막에서 보면 모래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단다.

어제는 마을이었던 그 곳이 내일은 모래 언덕이 되어 버린다는 그 곳.

모래들은 기다란 산맥을 만들어 꿈틀거리며 전진한다.

그러니, 모래들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한다고 말할만도 하다.

모래들은 그토록 온몸을 뒤채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하찮은 인간들의 무모한 도전 앞에서 모래들의 코웃음이 들린다.

 

저자 랑게비쉐는 미국의 기자다.

그는 단지 사막 가까이 가고 싶은 이유로 사하라를 횡단한다.

그가 간 길은 아프리카 북쪽 알제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한다.

알제리를 나와서 니제르 도곤두치와 니아메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리와 모리타니아를 지나 세네갈에서 끝난다.

그 길을 그는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가기로 결심한다.

사막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이다.

정치적인 어떤 이유로 미국인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작가도 되고 과학자도 된다.

현지인들이 타고 다니는 사파리 버스 - 트럭을 개조한 -의 대추야자 자루 위에서 덜컹거리고 찌는 듯한 더위에 모래 폭풍을 맞으며 그는 앞을 향해서 전진한다.

모래가 서걱이는 빵을 먹고 전갈을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면서 그는 그들의 열악한 사정에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을 향한 이유없는 친근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프랑스인을 욕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손으로 밥을 먹기도 한다.

그가 만난 것은 서구 열강의 약탈에 찌들고 자기들끼리의 정치 놀음에 희생되는 아프리카 사람들 뿐이 아니다.

그는 더러운 강물이라도 길어서 차를 대접하는 기품있는 흑인 뱃사공을 만나고 불구가 된 남편과 네 아이를 거두는 씩씩한 말리카를 만난다.

덥기만하고 먹을 것도 물도 부족한 그 곳, 사하라.

 

랑게비쉐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거기서 아프리카 여성들을 보았다.

피부의 색깔로 차별받고 여자라서 차별받는 이중의 차별로 고립된 아프리카 여성들의 삶이 눈물처럼  나를 흔든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도 없고 친척집에도 남편의 하락으로 가야하는 여성들.
농사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해야하는 그녀들.
찌는듯한 더위에도 손과 발을 가리려고 스키 장갑과 털양말을 신고서 차안에서도 내릴 줄 모르는 여자들.

그 여자들의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 남자들의 모습.
그들은 차안의 여성들이 덥지 않을까 걱정하는 랑게비쉐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슬람의 진정한 여성상은 너무도 귀중해서 보호받는 존재인 것을 잘못된 종교의 힘은 아프리카의 소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낙타와 교환을 하며 가출을 유도한다.

 

랑게비쉐는 이 긴 사막횡단을 어떤 마음으로 견딘 것일까.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다 해도 그것은 종교적 해탈을 이루기 위한 고행에 다름이 아닐진대, 그가 원하는 득도는 무엇인가.

인샬라.
그것이 그의 깨달음인가.





사막에서 보면 모래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단다.

어제는 마을이었던 그 곳이 내일은 모래 언덕이 되어 버린다는 그 곳.

모래들은 기다란 산맥을 만들어 꿈틀거리며 전진한다.

그러니, 모래들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한다고 말할만도 하다.

모래들은 그토록 온몸을 뒤채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하찮은 인간들의 무모한 도전 앞에서 모래들의 코웃음이 들린다.

 

저자 랑게비쉐는 미국의 기자다.

그는 단지 사막 가까이 가고 싶은 이유로 사하라를 횡단한다.

그가 간 길은 아프리카 북쪽 알제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한다.

알제리를 나와서 니제르 도곤두치와 니아메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리와 모리타니아를 지나 세네갈에서 끝난다.

그 길을 그는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로 가기로 결심한다.

사막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이다.

정치적인 어떤 이유로 미국인 기자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작가도 되고 과학자도 된다.

현지인들이 타고 다니는 사파리 버스 - 트럭을 개조한 -의 대추야자 자루 위에서 덜컹거리고 찌는 듯한 더위에 모래 폭풍을 맞으며 그는 앞을 향해서 전진한다.

모래가 서걱이는 빵을 먹고 전갈을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면서 그는 그들의 열악한 사정에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미국을 향한 이유없는 친근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프랑스인을 욕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손으로 밥을 먹기도 한다.

그가 만난 것은 서구 열강의 약탈에 찌들고 자기들끼리의 정치 놀음에 희생되는 아프리카 사람들 뿐이 아니다.

그는 더러운 강물이라도 길어서 차를 대접하는 기품있는 흑인 뱃사공을 만나고 불구가 된 남편과 네 아이를 거두는 씩씩한 말리카를 만난다.

덥기만하고 먹을 것도 물도 부족한 그 곳, 사하라.

 

랑게비쉐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거기서 아프리카 여성들을 보았다.

피부의 색깔로 차별받고 여자라서 차별받는 이중의 차별로 고립된 아프리카 여성들의 삶이 눈물처럼  나를 흔든다.

다른 사람을 만날 수 도 없고 친척집에도 남편의 하락으로 가야하는 여성들.
농사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해야하는 그녀들.
찌는듯한 더위에도 손과 발을 가리려고 스키 장갑과 털양말을 신고서 차안에서도 내릴 줄 모르는 여자들.

그 여자들의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는 남자들의 모습.
그들은 차안의 여성들이 덥지 않을까 걱정하는 랑게비쉐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한다.
이슬람의 진정한 여성상은 너무도 귀중해서 보호받는 존재인 것을 잘못된 종교의 힘은 아프리카의 소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낙타와 교환을 하며 가출을 유도한다.

 

랑게비쉐는 이 긴 사막횡단을 어떤 마음으로 견딘 것일까.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다 해도 그것은 종교적 해탈을 이루기 위한 고행에 다름이 아닐진대, 그가 원하는 득도는 무엇인가.

인샬라.
그것이 그의 깨달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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