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 -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이상엽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선생님께

늘 존경하는 마음만 품고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몇 자 적어 올립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의 피 흘리는 노래들은 저의 어설픈 젊음에 잊을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기곤 했습니다.

이런 노래가 있구나, 이런 삶들이 있구나.

그 시절 모든 게 얼마나 아프고 두렵던지 어린 나이에 받은 큰 충격들은 저의 학창 시절 대부분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공부에 찌들어 있다가 모처럼 맞은 자유에 들뜰 틈도 없이 어두운 골방에서 그동안 몰랐던 세계에 눈 뜨면서 더욱더 불안하고 어렵기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상처들을 잘 보듬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텐데, 어리석은 우리들은 오히려 서로를 상처주기에 바빴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조차 상대의 비난이 두려워 입을 닫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를 못하지요.

저는 가끔씩 그 시절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도 애써 그 때 서로 아팠던 이야기들은 피하려고 하는 걸 발견합니다. 다들 애들 크는 얘기, 아파트 평수 늘리는 얘기들을 하면서 눈을 감지요.

이젠 20여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잊을 법도 하건만 우연히라도 그 시절에 낮은 목소리로 함께 부르던 노래라도 듣게 되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이룰 수 없답니다.


그 시절 제가 하고픈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사진 찍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지금같은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필름 카메라였죠.  고가의 카메라는 고사하고 소모되는 필름조차 가격이 겁나던 그 시절이 아련하군요. 선생님께서 사진을 배우신다니, 불현듯 저도 그 시절의 작은 소망을 떠올렸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들과 사람 냄새나는 그 눈빛들이 저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우연히 발견한 선생님의 사진과 편지는 저를 20년 전의 시간으로 끌고 가는 듯합니다.

당나귀와 새와 사람의 발로만 닿을 수 있는 그 곳, 석두성에서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상상해 봅니다.
산 위의 마을 석두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끝없는 계단밭을 수 놓은 노란 유채꽃과 강인한 눈빛들의 여자들이라지요? "서글픈 아름다움"이라는 선생님의 표현은 어찌나 딱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계단밭은 일굴 땅이 없어서 사람의 힘으로 산을 깍아 만든 밭이겠지요. 곡싱이 잘 자라지 않아서 유채를 키우겠지요. 그 밭을 일구고 유채를 길러 기름을 짜는 여성들의 삶은 말 그대로 노동으로 쥐어짜지는 삶이겠군요. 중화제국의 한족들을 모시고 사는 중국의 소수민족. 그리고 가부장의 남자들을 모시고 사는 세계의 소수 여성. 석두성의 여성들의 삶은 비단 그들만의 삶은 아닐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빈곤한 나라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은 더욱 비참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 세상의 더러움에 적당히 물들어 살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을 때도 돈을 탐하고 높은 지위를 탐하는 자신의 모습을 불현듯 발견하고 진저리칠 때도 있음은 그래도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음이겠지요? 우리의 그 순수가 아직은 살아있어서 더 나은 세상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된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어둠은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곧 밝은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저를 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와 인류의 낙원 샹그리라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또다른 선생님의 사진을 곧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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