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단한 소설이다. 이런 작가를 왜 내가 아직 몰랐을까. 필사의 교본으로 자주 사용된다는 말만 듣고 구입한 지 일년이 넘어 열어보고 이제야 소스라친다. 우리 글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김훈도 그렇지만 그의 글은 때로 넘치게 현학적인 대 반해 오정희 작가는 현학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으면서 기가 막히게 변화무쌍한 표현으로 아찔한 상상력을 서슴없이 내보인다. 완전 깜놀. 이게 70년대 소설이라니. 나는 70년대에 박완서가 쓴 소설을 보면서 그 유아적인 글발에 아직 충분히 글을 조탁하고 훈련할 짬이 없던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이 분은 천재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오히려 미루다가 이제야 읽음. 미국문학사에서는 대단히 가치 있는 책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저 미국의 1930년대 작은 마을의 단편을 보는 정도의 감흥만 얻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사법살인 비슷한 걸 당하는 소설이 쓰인 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 흑인이 백인들을 법정에서 살해하였어도 무죄판결을 받는 소설(타임투킬)이 나오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다. 울 나라도 답이 없는 나라지만, 그러고보면 미국도 참 어지러운 역사를 가진 나라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