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
유하령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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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하령은 <병자호란>의 저자 한명기 교수의 아내이고, <화냥년>은 저자의 첫 번째 저서이다.

왠지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리라 짐작되는데, 저자는 일종의 팩션이라 할 소설에서

한명기 교수가 펴낸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를 역사적 고증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선후 관계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부부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사람은 학술적으로, 한 사람은 문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책의 제목은 <화냥년>이다. 치욕적인 항복으로 막을 내린 병자호란의 전리품으로

머나먼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조선에 돌아온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화냥년의 어원을 포로로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왔다는 뜻으로 환향녀(還鄕女)에서 찾았다.

하지만 저자는 '환향녀'라는 표현을 사료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거치면서 '몸 파는 여자'라는 뜻의 중국어 '화냥[花娘]'이 들어와

정조를 잃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지금은, 그 실효성을 차치하더라도 전쟁 포로의 인권을 보호하는 제네바 협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에는 포로를 잡아간 적군 개인의 선의에 의존해야 했고,

상당수의 여성이 성적 착취와 학대에 시달렸을 것이 자명하다.

대외 정세를 오판하여 전란을 초래한 데다 도성을 버리고 백성보다 먼저 피난길에 오른 선조와 인조를 비롯한

당대 지도층의 무능이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여성들을 씻을 수 없는 치욕에 빠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몸이 더럽혀졌다는 구실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그들을 내치거나

주위의 눈에 띄지 않는 뒷방으로 유폐하는 것도 모자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진할 것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400년 전의 과거일로 묻어버리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전쟁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오늘의 관점에서도 경각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아무래도 정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첫 번째 소설을 낸 것이라 그런지 아쉬운 점은 있다.

흡인력 있는 소재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인물의 목소리가 일관되지 못하거나 다른 인물과 구별되지 않아서

가끔씩 몰입하기 힘들 때가 있었던 점이 아쉽다.

하지만 시작이 반. 400쪽에 가까운, 꽤 두꺼운 장편소설을 펴낸 공력이라면

기술적인 기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역사소설이 될지 모르지만, 다음 소설을 기대한다.

 

그 출발점에서부터 이름 없이 살다간 민중들의 기록이었던 소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가 민생단 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북간도의 동포들을 재조명했듯이,

이 소설을 통해 뭇사람의 입에서 욕설로 불리던 화냥년의 가슴 아픈 실체가 드러났듯이

힘 없고 가난한 약자들의 삶이 더 많은 소설 속에서 저마다의 의미로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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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라디오 키드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유쾌한 빈혈토크
김훈종 외 지음, 이크종 그림 / 더난출판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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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이제 서른보다 마흔이 가까운,

그러나 마음만은 청춘이라 팟캐스트 방송으로 의기투합한

잘나가는 SBS 라디오 PD 셋이 함께 펴낸 청춘 회고록(?)이다.

책 중간중간에 실려 있는 이크종의 귀여운 만화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모처럼 연배가 비슷한 저자들의 지난 세기 끝자락의 기록을 읽으니 유쾌하고도 허전하다.

그들도 나도 한때는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의 X세대로 불린 신세대였다.

그리 오래전 옛날도 아닌데 90년대 청소년의 삶은 지금과는 그 형태가 꽤 달랐다.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었기에

도시의 아파트와 빌딩 숲에 뿌리를 내린 우리들은 라디오 키드이거나 TV 키드였다.

 

누군가는 밤마다 '마이마이'나 '워크맨'으로 이적이나 윤하가 아닌,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고,

누군가는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을 흉내내며 잔뜩 옷깃을 세웠고,

누군가는 <은하영웅전설>을 읽고, 레드 제플린의 LP에 빠져 지냈다.

그렇게 대중문화의 폭포수같은 세례를 받으며 어른이 되었고,

그 자양이, 적어도 세 작가에게는 재미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토대가 되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자랐다는 무언의 유대가 꽤나 견고하다.

어쩌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이 30여 년을 살아왔을 텐데

저자들과 나는 놀랄 정도로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도 나도 조금씩 늙어갈 것이다.

어른이 되어 깨닫는 가장 무거운 진실, 시간의 불가역성.

다시 돌아올 수 없는 20세기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있고,

우리의 기억만이 풍화를 거듭하며 아름답고 애틋하게 윤색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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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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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매개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오가다가 결국 타인의 몸속에 자리잡아

박명의 운명을 천수를 누리는 운명으로 바꾸는 이야기.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진실한 표현이겠지만

꿈 속에서 겪는 사건들을 생각하면 지극히 반어적인, 소설의 제목.

 

꽤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 아쉬움이 남았다.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소재와 소설적 장치들이 혼재하여 조금은 어수선했다.

두 인물의 삶이 꿈을 매개로 교차되는 설정,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친구가 무속인이 되어 단명할 운명을 바꿔준다는 설정.

그 안에서 다뤄지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상처받거나 왜곡된 인물들.

 

작가는 최근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들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범죄 현장을 뒷정리하는 특수 청소, 재혼한 남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딸을 이용하는 친모,

수급비를 계속 받기 위해 가족의 죽음을 숨기는 빈곤층,

가족의 생계를 위해 죽어서도 세상에 적을 둘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시신을 건조하여 만드는 인육 캡슐.

 

그래도 문장의 흡인력은 상당하고, 각 인물의 개성도 뚜렷하다.

다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결말도 지나치게 도덕적이지 않고, 적당히 행복하여 만족스럽다.

 

<하품은 맛있다>는 오늘 우리의 그늘을 담고 있지만,

꿈과 운명이라는 환상적 장치와 전형에서 다소 벗어나지만 인과응보의 결말을 갖춘 점에서

고전소설의 틀에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소 허무맹랑하더라도 선이 굵고 유쾌하며

죄를 지으면 죗값을 치른다는 평범하지만 묵직한 교훈을 담고 있어

언제나 즐겁게 읽었던 고전소설의 재미.

그 재미야말로 소설의 본질이자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미치면서

처음에 느낀 아쉬움을 떨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독후의 소회는.... 잘 읽었다. 재미있었다...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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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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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이자 소설가로서 언어를 조탁하며 한생을 살다간 이윤기의 말과 글에 대한 짧은 글 모음. 오래전 <춘아춘아옥단춘아 네아버지어디갔니>에서 아버지와 알찬 대화를 나누던 따님의 글이 서문에 있어 반가웠다. 언어의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길항을 유지하려 애쓰던 작가의 모습이 되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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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 집에 대한 초심을 잃고 건축의 거품에 휘말린 시대, 건강하고 정직하고 유쾌한 오두막 생활이 시작된다 집을, 순례하다 3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이서연 옮김 / 사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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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택은 생활의 편의를 돕는 온갖 관과 선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문명의 상징이자 생태계 오염의 주범인 외부의 관과 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자체로 독립적이면서 완결성을 지닌 14평 오두막을 계획하고, 건설하여 생활하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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