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는 요란하지는 않지만 도처에서 드러난다.
가는 해와 오는 해가 교차하는 지점의 아쉬움과 두근거림, 설렘이 확실히 덜하다는 것.
새해에 대한 계획이 갈수록 구체적이면서 단출해진다는 것.
연말에는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친구들과 연락해 만났다.
12월 초에 1년 후배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나도 너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열심히 뛰는 사람도,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사람도,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어제도,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오늘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누군가는 만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
어제는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40줄에 막 들어선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제대로 주목을 받을 기회도,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외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르는
처절한 외로움과 소외감이
자신이 죽을 자리를 그곳으로 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르네상스보다는 고딕이, 모더니즘보다는 리얼리즘이 대개는 더 좋았다.
아직 인생을 통째로 운명의 손에 넘겨주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지만
역리의 패기보다는 순리의 안온함이 내 몸과 마음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세상의 이치가 수긍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내 방 안에 홀로 책을 펼치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잠든 새벽과 눈뜬 아침이 전혀 다른 시공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잊지 않게 된 나이이다.
나잇값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