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이다.

 

1996년 1월 6일.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본고사 첫날 시험을 마치고, 학교 기숙사에서 다음날 논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부는 안 되고 마음은 들떠서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늦은 저녁을 먹었고 그의 소식을 들었다.

대학에 가면 공연장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대학의 문턱에서 잃었다.

 

소설가 김소진을 처음 만난 책이 군 휴가에서 구입한 그의 유고집이었듯이

내가 처음으로 직접 본 김광석의 공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의 추모공연 '김광석 다시부르기'였다.

노래하는 권진원과 눈을 마주치면서 다시 볼 수 없는 김광석의 웃음을 떠올렸다.

 

그의 노래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 나는 전형적인 라디오 키드였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라디오를 켜면 10~20년 전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민기의 '친구',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 같은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처음 좋아했던 대중가수는 이문세였는데,

당시 TV 출연은 잘 하지 않던 가수라 매일 밤 10시를 기다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아마 별밤에서 동물원의 '거리에서'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통해 김광석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였을까? 이문세의 부드러운 목소리보다는 김광석의 깊고 슬픈 목소리가 가슴에 깊이 남았다.

처음 구입한 그의 앨범은 3집이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외사랑'은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때 아프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나무'는 지금도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삶의 버팀목이 되는 노래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가 세상에 살았던 것보다 몇 년 더 살았다.

외롭고 쓸쓸한 삶의 길목마다 그의 맑은 목소리와 노래가 함께할 것이라 믿고 힘을 낸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드리우고 싶다.

광석이 형. 편히 쉬시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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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는 요란하지는 않지만 도처에서 드러난다.

가는 해와 오는 해가 교차하는 지점의 아쉬움과 두근거림, 설렘이 확실히 덜하다는 것.

새해에 대한 계획이 갈수록 구체적이면서 단출해진다는 것.

 

연말에는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친구들과 연락해 만났다.

12월 초에 1년 후배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나도 너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열심히 뛰는 사람도,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사람도,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어제도,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오늘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누군가는 만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

어제는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40줄에 막 들어선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제대로 주목을 받을 기회도,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외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르는

처절한 외로움과 소외감이

자신이 죽을 자리를 그곳으로 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르네상스보다는 고딕이, 모더니즘보다는 리얼리즘이 대개는 더 좋았다.

아직 인생을 통째로 운명의 손에 넘겨주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지만

역리의 패기보다는 순리의 안온함이 내 몸과 마음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세상의 이치가 수긍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내 방 안에 홀로 책을 펼치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잠든 새벽과 눈뜬 아침이 전혀 다른 시공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잊지 않게 된 나이이다.

나잇값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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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변수가 등장했지만, 아직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TV나 라디오를 통해 세상의 정보들을 접하고, 때로는 울고 웃는다.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큰 만큼 매스미디어를 구성하는 프로그램의 영향도 크다.

당연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최일선에 서 있는 프로듀서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요즘 잘 나가는 PD 2명의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하려고 그랬다.

 

김진혁과 이재익.

TV와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장 큰 차이겠다.

하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일단 둘 다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이고, 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큼 프로그램의 가장 큰 미덕은 의미나 가치보다는 재미라고 생각하는 점도 닮았다.

 

 

 p34. 어떻게 해서든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만드는 힘, 근성과 노력이 아이디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 천재들의 방식은 직관에 의존하는데, 직관이란 날뛰는 망아지와 같아서 그 힘은 무시무시하나 그 힘만으로 트랙을 끝까지 완주하기는 어렵다.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다. 학창 시절에 자주 들은 말도 떠오른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며칠 밤을 새우며 머리를 쥐어뜯고 코피를 쏟았던 무용담은 퇴근하고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중요한 것은 아침에 누가 더 빛나는 결과물을 꺼내놓느냐다. 곱씹을수록 무서운 말이다.

 

 

 

 

 

 p32. 그저 단순한 사실만을 말하고 그 사실이 내포한 메시지는 시청자 스스로 찾고 해석하도록 한다.

 

 p149. 어떤 대상을 꾸짖을 때 이는 제작진이 꾸짖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꾸짖는 것이며, 다시 말해 언론에 비판의 기능을 일임한 국민들이 꾸짖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인에게는 직접 꾸짖는 역할이 아니라, 국민의 꾸짖음을 '전달'해주는 역할만 있다.

 

p178. 시청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프레임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프레임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시청자는 최소한 한 가지 잘못된 프레임만으로 사실을 접할 때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다.

 

- 김진혁은 EBS를 떠나 한예종 영상원 교수로 부임한다. 우리 언론에 표현의 제약이 상존함을 또다시 확인한다. 다큐 제작 PD를 갑자기 수학교육팀에 보내다니... 왠지 창조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통섭을 노렸을 것이다, 물론. 방송 현장에서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로 한 결정이라면 기꺼이 격려하고 싶다.

 

 

 새로운 재미와 새로운 관점. 둘 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재익보다는 김진혁의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지만... 그래서 너무 티는 안 낼 생각이다. 그래도 얼굴에 다 써 있겠지만 얼굴 보는 사람이 별로 없으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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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력', 또는 '예술과 물질적 풍요' 같은 제목도 생각해봤지만

'예술과 돈'만큼의 진실성을 느낄 수 없다.

 

예술이 창의력과 자유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창작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예술과 돈의 관계는 필연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매우 밀접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대는 다르지만 개성 있는 삶을 살다간 윤선도와 이중섭을 통해 예술과 돈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윤선도는 가문의 재산으로 평생 풍족한 삶을 살았다.

보길도 전체를 자신의 정원으로 꾸밀 만큼 유배지에서도 경제적인 걱정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대찬 성격 때문에

공직에 나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유배지에서 보냈건만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

경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

 

반면에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격변기 속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할 집 한 칸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이 그의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

우리는 감동적인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 건너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소신을 접고 전시회도 열면서

어떻게든 돈을 모으려던 이중섭은 동료에게 사기를 당하고

그림값을 제때 받지도 못하면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양 극단의 예술가를 보면서

결국 예술은 예술가의 삶과 환경의 영향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중섭이 좀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가족과 행복하게 생활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은 떨쳐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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