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우리 지역 전자도서관에 들어가 보았다가 반색했다. 신착 자료가 상당한 양으로 들어왔다. 그간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었다가 사지 못하고(또는 않고) 리스트로 남아 있던 ‘비교적 신간’들도 신착 자료에 포함되어 있어 더 기뻤다. 비록 연말연시라 바쁘고 올해 추가적인 휴가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지만, 읽을 책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이 글을 구상하던 중에 우리 지역 도서관에서는 별도 안내 시까지 무기한으로 휴관한다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

  몇 년 전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지금도 장강명은 나에게 애증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애’는 ‘신간 알리미’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증’은? ‘신간 알리미’를 통해 소식을 접수한 책을 일단 장바구니나 보관함에만 담아 두고, 살지 말지를 수십 번을 넘게 고민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그게 겨우 ‘증’이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여튼 장강명의 ‘비교적 신간’인 『책, 이게 뭐라고』는 미리보기로 본 책 앞부분 중 일부 서술이 너무 재수 없었기에 ‘구입 보류’ 상태로 두고 있었다. 책의 출간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것을 보면 가늘고 별 볼일 없이 오래 가는 ‘증’인 셈이다. (참고로 글을 쓰는 2020년 12월 현재 그의 최신작은 『책 한번 써봅시다』이다.) 보통 장바구니에 담은 책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데, 다행히(?) 그 기한이 오기 전에 전자도서관에 신착 자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빌릴 수 있는 전자책까지 안 볼 정도의 ‘증’은 아니었다.

 

 

 

  책 제목은 장강명이 요조와 같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같다던데, 내가 팟캐스트에 문외한이니 딱히 팟캐스트 이야기가 주(主)된 내용이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고 읽었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하니,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에세이스트로서의 장강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대치가 낮았던 만큼, 책의 초반부에서 내 생각과 부딪히는 부분은 ‘음...그래...’ 하는 심정으로 휘리릭 넘겼다. 끝까지 읽으니 그에 대해 얼마간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후반부가 짠함의 포인트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기정사실처럼 단정 짓는 대목은 두 번 세 번을 고쳐 읽어도 별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생략)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구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순서를 고의로 흐리며,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든 나라는 나치 독일이었고, 히틀러는 평생 개를 아낀 채식주의자였다. 이는 단순히 불쾌한 우연이 아니다. 공감이 윤리의 지침이 되기에 얼마나 부적절한가를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와 구식 저널리즘의 열렬한 지지자」, 『책, 이게 뭐라고』 중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육식을 하기 위해 반증으로 써 먹기 좋은, 강력한 ‘팩트’여서 그런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책에서도 ‘채식주의자 히틀러’ 이야기는 확인 가능하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고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에 절대 반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히틀러가 항상 음식에 관해 강한 주장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기에 대해 무시무시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고기를 먹는 것을 보면 인간의 시체를 먹는 광경이 떠오른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고기 대신 수분 함량이 높은 채소를 으깨 죽처럼 만든 음식을 양껏 먹었다.

 

-「15장 지저분하게 먹기」,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 중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관한 ‘거의 모든 생각’(통념)에 대한 반론과 섭식 상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는 이 책의 지은이는 철학자다. 문헌 고증(팩트 체크)에 이골이 난 사람이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각 장별로 어떤 자료를 ‘어떻게’ 참고하면 좋을지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책 말미에 달아 두었다. 그러나 나는 위 인용 대목을 본 시점에서 책의 전반적인 신뢰도를 내적으로 상당히 잃었다.

  미주에서 언급한 자료 출처(http://www.historyextra.com/feature/second-world-war/when-hitler-took-cocaine)에 들어가 보니, ‘히틀러 육식’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았다.

 

  He had forsaken meat in 1931 after comparing eating ham to eating a human corpse. Henceforth, he ate large quantities of watery vegetables, pureed or mashed to a pulp.

 

  해당 기사는 2014년에 나온 전자책 ‘신간’의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신간의 원제는 'When Hitler Took Cocaine and Lenin Lost His Brain'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니 팩트 체크라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지경이다.

 

  BBC는 그래도 영국의 공영방송국이니까, 신뢰할 만한 기사를 쓰지 않을까? 막연히 (희망 섞인) 자문을 해 보지만 우리는 답을 안다. 답은 ‘때때로 아니오’다. 헛소리는 돌고 돈다.

 

 

 

  세상 모든 일을 혼자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남들이 주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들과 힘을 합치면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엔 필연적으로 부작용도 따른다. 그중에서도 큰 부작용 하나가 '개소리 순환고리bullshit feedback loop'라는 것이다. 뭔가 수상쩍은 정보가 반복하여 출현할 때, 누군가의 주장이 검증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정보가 옳다는 확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짓의_기원」, 『진실의 흑역사』 중

 

 

  ‘히틀러는 채식인이었다’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흔히 퍼져 있을까? 왜 그 이야기는 유독 비건,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 지향인 앞에서 ‘굳이’ 꺼내지는 일이 많을까?

 

 

  존경하는 한 선생님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주제를 다룬 다섯 권의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또는 쓰셨다. 서술어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유는, 연수에서 들었는지, 블로그 글에서 보았는지, 책에서 발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 선생님의 주장에 왜곡의 소지가 있다면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육식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채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된 책이라도 몇 권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유독 채식 문제 앞에서 ‘중립’과 ‘식물의 고통’ 운운하면서 채식인 또는 채식 지향인을 ‘유별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광장』에서 ‘중립’ 운운한 이명준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나 잠깐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히틀러는 ‘알려진 것처럼’ 채식주의자인가? 아래의 인용을 읽어 보자. (써 놓고 나니 소제목의 부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

 

 

 

 

 

 

 

 

 

 

 

 

 

 

 

  히틀러 스스로도 채식의 장점을 떠들고 다녔지만 일반인들에게 히틀러가 채식인이라고 알려진 것은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히틀러의 전기 중 하나인 『아돌프 히틀러의 삶과 죽음』에 따르면 ‘히틀러의 채식주의’는 히틀러를 혁명적인 금욕주의자, 파시스트 간디와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던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주셉 괴벨에 의해서였다. 약간 길긴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진실을 인용해 보자.

 

(...) 사실 그는 아주 자기 멋대로 하고 금욕주의의 본성은 전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요리는 상당히 뚱뚱한 윌리 칸넨베르크라 불리는 남성에 의해 호화스럽게 준비되었는데 궁중의 어릿광대처럼 행동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소시지 이외에 고기에 대해 좋아하지 않았고 생선을 먹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캐비어를 즐겼습니다. (...)

 

(...) 남들 몰래 조용히 채식의 유익을 즐기는 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채식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방해하거나 막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히틀러가 채식인이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히틀러는 채식인협회를 박해하였다고 알려진다. (...) ‘채식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인의 모임 장소를 알리는 것도 금지되었다. 심지어 게슈타포(Gestapo)는 채식 레시피가 포함된 책조차 몰수하였다.

 

- 「히틀러 - 순결한 땅의 이방인」, 『역사 속의 채식인』 중

 

  만약 (일단 사실도 아니지만)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채식 지향인에게도 불순함이 깃들어있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 히틀러가 과거에 미대생이었다는 이야기를 현 시국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어진 예술가 앞에서 꼭 해 보라. 가능하면 상대방의 반응까지 적어 두어 보라.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 아닌가?

 

  고작해야 ‘플렉시테리언’으로도 부를 수 없는, 일주일에 한두 끼 완전채식으로 먹으면 채식 비중이 높은 축에 속하는 나날을 보내는 내가 이렇게 ‘히틀러 채식주의자’ 이야기에 열 받아 하는 것조차 어느 정도는 기만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짜, 책이 뭐라고.

 

  ps. 생각해 보니 위에서 언급한 책들은 다 전자책으로 읽었다. 글감으로 쓸 인용구를 찾는 데에는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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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0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0-12-21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작가의 글은 안 읽어봤지만 인도님 글 넘 좋아요!!!!좀 더 자주 써주세요. 이렇게 소주제 있는 글, 힘들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펙트 체크도 읽는 저는 고맙네요!!!😍👍❤️ 바쁘셔도 자주 글 올려주세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08:35   좋아요 0 | URL
라로님 감사합니다! 여러 권을 읽어야 비로소 연결지어 생각할 거리와 글감이 마련되는 것 같아요. 틈틈이 읽고 더 쓰도록 분발하겠습니다!!!

다락방 2020-12-21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라로님 댓글에 동의합니다. 글 좀 자주 써주세요, 특히 ‘증’에 관련된 작가에 대해서 더요!

인간의과도기 2020-12-21 11:10   좋아요 0 | URL
ㅎㅎ 장강명만큼 (애)증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가 아직까지는 없어 앞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