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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담장 하나 사이로 옛날식 기와집 10여채, 독서실 주변은 주로 7, 80대 어른들이 산다. 자식들은 장성해서 다 떠나고  노인 내외거나 혼자다. 골목길 한 두 개 건너 가까이 살다보니 오다가다 인사 드리고 서로 부탁하는 일도 있어 이웃사촌이 따로 없다

 

아침 청소 하는데 어데서 만도린 소리가 들린다. 담너머 이웃집 할머니댁이다. 70후반쯤이신데, 한때 실버 합창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고 피아노도 즐겨치신다. 언제 만도린도 하셨나? 피아노는 대개 찬송가고, 가끔 노래도 부른다. 썩 잘하는 솜씨는 아니고, 초보를 갓 벗어난 그냥 즐기는 정도 

 

피아노 소리는 일정하지 않다. 여름날 오후거나 나른하니 졸음에 겨울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트럼펫 연습 날, 독서실 바로 앞 감나무 잎이 하나둘 스산하게 떨어질 때, 하늘 하늘 남천 잎이 흩날릴 때,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골목길 피아노 소리. 못 치면 못 치는대로, 박자 틀리면 틀리는대로 낮은 음조로 찬송가와 함께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는 때로 정겹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베토벤의 소나타, 쇼팽의 녹턴이 이보다 더할까? 그냥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모습,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 투명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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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집수리하느라 무리했다. 어깨가 뻐근하다. 연습은 해야겠고 억지로 트럼펫을 든다. 어데 오늘뿐인가. 간혹 친척이나 이웃들과의 만남이 생기면 오후 연습을 거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미리 오전으로 앞당긴다. 오전에 못하면 저녁식사 후에 한다. 연습은 반. . . 해야만 한다. 불가피한 일만 아니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불가피한 일? 그게 뭔데? 하지만 매일을 거르지 않고 연습한다는 거 말처럼 쉽지 않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데? 누가 시켰나? 왜 그렇게 연습타령이지? 오늘같이 피곤한 날은 안 해도 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습관처럼 꾸역꾸역 하려다보니 문득 옆집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의 피아노와 나의 트럼펫. 누가 더 음악을 좋아할까? 누가 더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걸까? 할머니가 아닐까?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 그래, 나도 할머니처럼 하고싶다. 눈이 오거나 부슬부슬 비내리는 날, 쓸쓸이 낙옆이 뒹그는 날, 문득 커피가 한 잔 생각날 때, 어쩌다, 어쩌다 생각날 때, 아무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누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내킬 때 하고, 하기싫을 때 안하는것. 누가 뭐라고 하는것도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3

오래전에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한 결과 INTJ로 나왔다. 근데 이게 믿을게 되나?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 아닌가? 상황에 따라 자유스럽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은 정해진 딱 하나라기보다 다중적 아닐까? 똑같은 일도 어떤 때는 이렇게, 다른 때는 저렇게 행동한다. 상황에 따라 대처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맘먹기에 따라 언제든 바뀌고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성격유형검사는 어느 한 가지로 결정된 행동 패턴을 보인다니 이런 식의 고정된 결정론을 신뢰할 수 없다.

 

한데 나의 평소 생각, 행동 패턴이 어째 바뀌지 않고 비슷하게 나타난다. 고쳐보려고해도 쉬 바뀌지 않는다. 누구는 타고난 기질, 성격 때문이라고한다. 아내의 우스개 말에 따르면, '사람은 탠대로 산다'고 한다 즉 태어난대로 산다는 거다. 일리가 있다. 맨 끝에 붙은 J. 이런 유형은 목표지향적이어서 어떤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계획적으로 밀어붙여야 직성이 풀린다고.

 

 아닌게 아니라 그런면이 좀 있다. 연습시간 정해놓고, 매일 해야만 맘이 편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연습방식, 연습 태도는 이미 타고난 성격유형 때문일까? 사실이 그렇다면 할머니와 나 둘 중 누가 더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가를 비교한다는게 부질없다. 할머니는 아무것에 얽매일 것 없이 자유롭게 하고, 나는 나의 목표와 계획대로, 즉 각자 탠대로 자기 방식, 자기 성격대로 하는것일테니 말이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다. 한때 직장 동료였던 L. 어느날 뜬금없이 트럼펫을 사겠다고했다. 대충 저렴한 것으로도 되련만 부득부득 전공생, 직업연주자 수준이어야 한다고 우겼다. 바하 스트라디바리우스 LT모델, 일금 340만원정. 악기가 도착했지만 연습이라고해봐야 고작 내가 해준 원포인트 레슨 두 시간뿐이었다. 나 홀로 독학! 그래도 불철주야 성과는 있는지 동구밖 과수원길...을 딱 한 소절 했다 그것도 아흔살 해소기침 소리로. 비싼 악기이니 레슨을 좀 받으라 해도 막무가냈다. 굳이 얽매이고 싶지않다는게 이유였다. 하긴 공무원 신분에 연가내고 혼자 몽고 무전여행을 떠나는 친구였으니....이제사 미스테리가 풀렸다. 그래 사람은 텐대로 산다!  

 

4

아마추어든 프로든 당신이 만약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일하게 목표지향적일거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동구밖 과수원 길도 아닌, 그 힘든 드보르작과 모차르트를 연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매주 연습날을 잊지 않을까. 어떻게 그 힘든 연습을 꼬박꼬박 해낼 수 있을까. 때로 물먹은 솜마냥 사지삭신이 다 힘들고, 부부싸움에 친구갈등, 낙옆도 안 떨어지고, 눈도 안 오고, 비도 안 오는날도 있을텐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오케스트라는 한 해 한 번 정기연주회를 하고, 소품 위주의 작은 연주회를 몇 차례 더 한다. , 비중이 큰 정기연주회를 한번 생각해보자. 연주회를 앞두고 곡이 정해진다. 그러면 1년 후 있을 정기연주회를 목표로 본격 연습에 돌입한다. 통상 매 주 한 차례 모여서 연습을 한다. 1년이면 대략 50여차례, 물론 별도의 개인 연습이 더 많을 수 있다

  

정기연주회 무대는 두 시간 남짓. 1년간의 연습을 생각하면 찰나의 순간이다. 스포트라이트, 우레같은 박수, 그토록 화려한 무대, 찾아온 지인들, 여기저기 청중들, 꽂다발, 웃음만발 기념촬영, 축제와도 같은 날, 특별한 저녁만찬. 하지만 모든게 한순간으로 끝나자 이윽고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바람 한 점조차 없다. 허망하다. 쓸슬하다. 공허하다. 1년동안 그토록 연습에 매진했던 시간들, 노력들, 하기싫은 연습날 참아내며 했던것. 더 재밌는 일도 있으련만 깡그리 무시하고 연주에 올인했다. 그런데 막상 연주회가 끝나고 나니 허망하다. 맹하다.  

 

우리네 인생도 정기연주회 무대와 흡사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인생의 정기연주회를 시작한다. 일단 목표가 세워졌으니 싫든 좋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습에 돌입한다. 우선 학교를 졸업하자 직장이라는 목표가 나타난다. 또 다른 목표인 결혼, 이윽고 자식을 낳는다. 돈은 생활을 하는데 산소와도 같은 존재, 공기가 없으면 한순간도 숨을 쉴 수 없다. 만인들의 목표인 적금을 붓기 시작한다. 천만 원, 5천만 원, 1...드디어 목표에 도달한다. 집을 산다. 더 큰 집을 산다. 하지만 목표는 계속 나타난다. 자식 결혼시킨다. 정기연주회, 또 다른 정기연주회, 그러다 마지막 도착점에 이르러 모든 정기연주회, 아니 모든 목표는 비로소 종료된다. 바로 죽을 날이 도래하는거다.

 

그동안 살면서 많은 목표를 세우고 이뤄왔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기쁨도 잠시, 새로운 목표가 나오고, 다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땀과 시간을 들인다. 그러나 목표는 단지 목표에 불과할뿐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될수 없다. 이런저런 크고작은 목표가 삶의 의미며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는거다. 보다시피 어떤 목표가 이뤄지면 다시 시작되고 계속해서 끝이 없다. 오매불망 목표가 성취되는 순간 그동안 들인 노력과 땀을 생각하면 허탈하기조차 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그때그때의 순간들이 더 중요하고, 삶의 정수이자 핵심이 아닐까. 다름아닌 바로 이 순간! 지금!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연습에 매진하는 이 순간 기쁨을 최대한 누리고 즐겁지 않으면 안 되겠다. 비록 트럼펫 연습이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의 일부이자 전부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이 순간이 전부이고 이 순간이 삶의 정수라면 연습시간, 연습 그 자체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어떻게 해야 연습시간이 즐거울까? 어떻게 해야 연습이 즐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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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빌보드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으로 전국을 뜨겁게 달군게 엊그제. 빌보드 차트 양대 산맥이 '빌보드200'과 '핫100' 두 가지라니 이제 남은건 개별 싱글곡에 상을 준다는 '핫100'이다. 이건 어떻게 될까. 서른 중반인 아들도 별관심 없는데 정작 60중반인 내가 더 관심이 갔다. 현지시간 29일 발표한다기에 은근히 1위 등극을 기다렸다.

 

오늘 아침 다음 포털을 보니  <LOVE YOURSELF 轉 'Tear'>의 타이틀 곡인 <FAKE LOVE>가  10위에 랭크 됐다고. 과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3주간  2위한 적이 있어 좀 아쉽긴했지만 뭐 톱 10에 들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어젯밤 유튜브를 통해 BTS의 뮤비를 주욱 들어봤다. 장기인 칼춤 군무를 비롯, 해외 팬들의 반응도 일일히 살펴봤다. 놀라워라~ 팬클럽 '아미'를 향한 관심이 이렇게 열광적이었다니~  역시 음주가무를 즐긴 민족의 후예답다. 폭발적인 팬덤 현상을 그동안 어깨넘어 소식으로만 알았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비로소 실감이 간다.

 

"운명인 줄 알았던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 을 담은 신곡 <FAKE LOVE>는 60중반인 나 역시도 괜찮게 들렸다. 노래도 노래지만 볼거리가 촘촘하게 구성된 5분 가량의 뮤비가 더욱 일품이다. 오늘 아침  다시 들어봤는데 <강남스타일>처럼 은근한 중독성이랄까 끌어대는 마력이 있다. 특히 후반부 페이크 러브~ 페이크 러브~ 후렴구는 나도 따라할 수 있을정도...솔직히 내 나이에 아이돌그룹을 소화한다는게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미 사전 면역 주사를 맞은 탓인지 그리 낯설지 않았다.   

 

며칠전 남북평화협력 기원 <봄이 온다>의 일환으로 남측 대중가수들이 평양공연을 한바 있다. 당시 출연했던 가수 중 '레드벨벳'에 대해 나는 녹화 공연을 시청하기 전까지 전혀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레드벨벳이 무대에 나서자 반신 반의하면서도 과연 어떤 노래를 할까 궁금했다. YB까지는 그럭저럭 소화되는데, 레드벨벳은 아무래도....노래가 시작되자 정작 무대의 가수보다 객석의 북한 사람들 표정이 궁금했다. 

 

<빨간맛>과 <배드 보이>가 울려퍼지자 짐작대로 객석의 표정은 얼음짱처럼 굳었다. 나도 마찬가지...그런데 희안하게도 두 번, 세 번 거듭 보고 들으니 슬슬 재밌어졌다. 특히 <빨간맛>의 빠른 속도로 바뀌는 현란한 무대배경, 춤, 상큼 발랄한 노래 등 보면 볼수록 재미까지 더했다. 이렇게 사전 면역이 된탓인지 막상 방탄의 노래가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거다.  

 

건 그렇고, 나는 평생을 서양클래식만 즐기고 들어왔다. 전형적인 클래식음악 팬이다. 그것도 말랑말랑한 리스트, 파가니니, 쇼팽 등 낭만주의만이 아니라 근엄하기까지 한 바하, 헨델로부터 고전파까지 지속적으로 들어온.......기껏 나가봐야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아니면 설운도의 <누이>로 오랫동안 단련된 내 귀가 아닌가. 그런데 왜 레드벨벳과 BTS의 노래가 거북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그걸 밝혀보려는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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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투스문학살롱 여 섯번째 모임인 오늘은 우리고장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장편 <탁류>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친해지고 할 얘깃거리 역시 많아지는게 인간관계입니다. 주기적으로 만나 읽은 책에 대해 말하고, 서로가 아는 사람들, 책이며 음악, 친구, 가족들 얘기까지 화제는 얼마나 무궁무진한지요. 뭐 굳이 책이 아니라도 할 이야기는 정말 많습니다.

 

맛좋은 드립커피를 가져오신 분, 어느 분은 빵과 도너츠까지....먹고 마시며 이야기에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군요. 오늘은 그동안 읽은 <탁류>와 다음번에 읽을 <인생수업>까지 겹쳐 할 얘기가 더 많아졌습니다. 더욱이 <인생수업>은 시한부 환자들에 대한 내용이다보니 더욱......하긴 꼭  책이 아니라도 온갖 주변사로부터 어린시절 가족들 이야기, 임종을 맞이한 지인들의 모습까지 화제는 끝이 없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칸투스 소식까지....

 

호스피스 창시자로 불리는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이레, 류시화 옮김)은 시한부 환자들의 삶, 어째 찜찜하고 불길하기까지한 '죽음'이 주제이지만, 실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배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배움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잠깐 저자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 죽음을 앞둔 이들과 아직 살아있는 이들을 치료하면서 우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배움들이 결국은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두려움, 자기 비난, 화, 용서에 대한 배움입니다. 또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배움 사랑과 관계에 대한 배움입니다. 놀이와 행복에 대한 배움들도 있습니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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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투스문학살롱은 칸투스 단원이든 비단원이든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굳이 책을 안 읽어도 부담없이 나갈수 있는 독서회, 말하기 싫어 가만 있어도 누구 한 사람 눈치하는 이가 없는 모임이라면 은근히 끌리지 않나요? 최근 모임을 활성화해보려고 재밌는 아이디어도 만들어졌죠? 작은 독서노트를 준비해서 읽은 내용이나 소감, 혹은 소개하고 싶은 문장들을 짧게 메모했다가 2분정도씩 돌아가며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서글픈 일인데, 기나긴 인생 평생살아도 책 한 권 읽을 수 없는게 우리네 바쁜 현실입니다. 글 써본지는 또 언제적이던가요. 자, 뭔가 새롭게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싶은 분, 비록 짧은 토막글이라도 끄적여보고 싶은 분, 삶이 너무 드라이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분, 어데 마땅히 갈데도 없고, 누구 이야기 상대가 없는 분, 고단백 영양가많은 음식을 먹는데도 어째 속이 허한 분, 여름날 아무 책이라도 읽고싶은 분이 계시면 망서리지 말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독서회 칸투스문학살롱은 여러분이 주인이고, 여러분이 꾸려가는 독서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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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후반 수산학교 졸업무렵, 배 타려면 항해사 면허장을 취득해야 한다. 그런데 시험과목인 운용학이니 해사법규, 항해술은 도통 재미가 없어 철학, 문학, 역사 책만 줄창 읽어댔다. 와중에 밴드부까지 하느라 공부는 뒷전인채 허구헌날 나팔 불고, 엉뚱한 책만 읽어댔으니 대체 배를 타겠다는건지 말겠다는건지... 아니나다를까 면허장 시험에 그만 미역국을 먹고 말았다. 믿었던 장남이 시험에 떨어지자 아버지의 충격이 컸다. 이래선 안 되지, 작심하고는 삼학동 어느 골목집에 몇 달 공부하러 들어갔다.

슬레이트 집 방 두 칸에 여섯 남매.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 친구 분이 자신의 집 뒷방을 잠시 공부하라고 내줬던 거다. 삽작문을 열고 어깨를 구부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두어 평 크기의 응달집. 습기눅눅하고 하루종일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까짓 집이야 작고 허름하지만 대수인가. 어데서든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그래, 얼른 합격하고 원양어선을 타자. 백수인 아버지는 무능했다. 장남인 내가 가족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그 시절은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랬고, 오로지 돈을 벌어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시험공부한답시고 집에 있던 장서를 모조리 리어카로 옮겼다. 700여권, 당시 학생 신분치고는 상당한 분량의 장서였다. 중고책에 낡디낡은 책이 대부분이라 보잘것 없었지만 한 권 한 권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루종일 학교 주변 개울을 치우고 받은 일당, 명산동 어느 대서방에서 몇 달 심부름, 문화동 카디날 장갑공장에서 노가다로 뛰며 번 돈, 신문배달 등 갖은 고생과 땀으로 일군 책들이었다. 그러니 책이 아니라 내 분신이나 다름없어 평생을 동고동락해야할 운명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마침내 원양어선에 승선했다. 사회생활이 시작된거다. 출항하기전 낡은 배를 수리하고, 선원들을 모집할때까지 당분간 부산생활을 해야한다. 하숙집은 영도고 수산회사는 건너편 충무동이었다. 수산회사를 가려면 영도다리를 건너 자갈치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시장을 지날 때마다 구수한 꼼장어 냄새가 허기진 뱃속을 괴롭혔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못해 단 한번 꼼장어를 먹어보지 못했다. 돈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책 사느라 호주머니는 먼지만 풀풀날렸다. 영도다리 아래 국밥집, 자갈치 시장 꼼장어를 맘껏 먹어보는게 늘 꿈이었다. 그러나 단호히 유혹을 떨쳐내고 그곳을 통과했다.

대신 발걸음은 자갈치 시장 골목길, 국제시장을 지나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국밥 한 그릇, 교통비를 아껴 사모은 책들, 비록 먹지 않고 허기져도 책만 있으면 배가 불렀다. 사방에 책이 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아, 평생 책만 읽고 살 수 있다면...그러나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얼른 돈벌어 가족들을 먹여살려야한다. 꼼장어, 국밥의 유혹 정도야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지만 책 욕심을 버리기가 너무 힙들었다. 그 시절, 그렇게도 먹고싶던 꼼장어를 마침내 딱 한 번 먹을 기회가왔다.   

출항을 하루 앞두고 군산에서 부모님이 내려오셨다. 그날 저녁 부모님과 함께 자갈치 시장에 갔다. 하지만 막상 꼼장어 맛은 기대했던것보다 별로였다. 실은 맛이 없다기 보다 오랜세월 집을 떠나려고보니 어린 동생들, 부모님 생각으로 그만 입맛을 잃었던거다

날이 새자 드디어 부산항을 출항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 있는 장서를 어떻게 해야하나. 소중한 내 분신, 내 사랑하는 연인들...가슴이 먹먹했다. 모든것을 놓고 떠냐야한다니 눈물이 다 나왔다. 대서양 뱃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자나깨나 집에 두고 온 책을 잊을 수가 없었다.  

원양어선을 타면서도 오로지 집에 두고온 책 생각뿐이었다. 오죽하면 꿈에 다 나왔을까. 안되겠다싶어 편지를 썼다.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눈으로 보면 좀 위로가 되겠지. 이윽고 항구에 입항하자 편지와 함께 사진이 도착했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난듯 반가웠다. 아쉬운대로 머리맡에 두고보니 조금은 서운함이 덜어졌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어데 한 두 가지인가. 늦은밤 동인천 역 어느 서점에 들렀다. 불문학자 김붕구 교수의 <보들레르> 연구서가 눈에 확~ 들어왔다. 책값을 따져보니 교통비까지 몽땅 투입해야 했다. 아, 어떻게해야지. 망설이던 끝에 결국 책을 사들고 연안부두 그 먼길을 두 시간 가까이 걸어 온 일. 결혼 후 아내 결혼 반지며 목거리 모조리 팔아 책을 사고 그것도 부족해 월급봉투 축내는건 예사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속이 없는 한심한 작자였다.

비록 이해할 수 없지만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한 책도 있다. 어떤 책은 들고 다니는것만으로 자랑스럽고 폼이 났다. 평민사에서 출간한 R 프리덴탈의 <괴테-생애와 시대>가 바로 그런 경우다. 베이지색 커버, 견고한 하드케이스 장정이 고상하다못해 품위까지 있었다. 내 지적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지만 언젠가 읽을 수 있겠지 하며 구입한 책도 있다. 두툼한 분량의 제임스 조이스 전집이다.  

며칠전 한겨레 신간 서평란을 보니 칸트전집을 발간한다는 소식이 있다. 오래 전 아카넷에서 출간한 바 있는데 한길사에서 새 전집을 번역한다. 어렵쇼, 그렇다면 두 군데서 발간되는게 아닌가. 아직 한길사는 시작 단계고, 아카넷은 이미 상당수 출간되었다. 그리고 아카넷에서는 칸트전집 발간 15주년 기념으로 한정판으로 '칸트선집'을 출간한다는 소식도 있다. 선집은 모두 네 권인데, 전체 2,800여쪽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전집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어차피 칸트는 이해 안 될 책이니 그냥 소장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사진으로 봐도 멋진 칸트선집, 저걸 꼭 소장해야겠다. 한길사 전집은 나중으로 미루고...... 

사실 나는 철학에 흥미가 있어 딴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시 독학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아쉬웠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원저를 읽어낼 능력이 없어 철학사나 철학개론, 2차 해설서나 읽는 정도였다. 다른 철학자에 비해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칸트는 더욱 난해한 편에 속했다.

진즉 칸트 전공 1세대 격인 최재희 교수의 박영사판 <순수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구입했지만 아예 읽을 엄두를 못냈다. 지금까지 읽은 칸트라고해봐야 고작 이화여대 신옥희 교수가 번역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유일하고 2차 해설서 두 세권이 고작이다. 그래도 퇴직하면 도전해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던참에 오늘 아침 칸트전집 출간소식에 다시 발동이 걸린거다. 

내 비록 이해할 수는 없어도 머리맡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족히 행복할 것 같다. 누가 아랴, 자꾸 쳐다보면 언젠가 본전 생각나서 읽고 싶을 때가 있을줄. 아니면 70, 80이 돼서 읽을수도 있겠지. 못읽으면 어때 서문만이라도 읽지. 일금 15만원. 하지만 저 돈을 만들려면 아내를 구슬려야한다. 옛날이야 반지팔고, 월급 축내고 내 맘대로였지만 이제는 단 한 푼 아내 허락없이 불가능하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다 오늘 아침, 결국 아내에게 눈치도 없이 칸트선집 어쩌고 하다 댓바람에 머퉁이만 먹었다.

- 이봐욧~ 당신 대체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뭐요, 하이고 옛날에 내가 순진했지, 이젠 어림 한푼 없수, 암만 어림도...

아내는 엔간한 건 다 너그러운데 고놈의 책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꿈을 버릴수가 없다. 60평생 경험에 의하면 뭔가 간절히 소망하면 반드시 이뤄진다. 글쎄 자랑인지 바보짓인지 몰라도 갖고싶은 책은 기어이 내 수중에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당장은 살 수 없으니 그 옛날 원양어선에서 그랬듯 우선 사진이라도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 잠깐 위쪽 사진을 보시기 바란다. 어떤가. 아흐 저 푸른빛 은은한 감동이여, 아우라여~ 얼마나 기품있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선집인가! 여하튼 내 기필코 칸트선집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때만을 떠올리며 나는 가슴 두근대는 소년처럼 오늘을 보낸다. 꿈이여 제발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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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로 자처하는 나는 10여년전 트럼펫을 다시 시작하기까지는 오로지 감상이 전부였다. 그러던게 오케스트라를 하면서부터 음악생활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확실히 연주 활동과 감상은 차원이 다르다. 가령 감상만하면 그쪽으로 관심이 가고 발달된다. 즉 음반과 관련한 소식, 연주단체, 연주자들의 연주활동부터 자질구레한 에피소드까지 온갖 정보를 따르르 꿰고 관심을 갖는다. 때로 음악 자체보다 주변사가 더 재밌을 경우가 있다.

 

감상자는 음반이 빚어내는 음악의 즐거움을 단지 감상을 통해 향유하는 쪽으로 오감이 발달한다. 급기야 주객이 전도되어 실제 연주장보다 오디오 감상이 더 재밌고 실감이 나기도 한다. 연주회장이 더 낯선거다.

 

이걸 '시뮬라시옹'이라고 하는데, 가짜가 진짜로 뒤바뀌는 현상이다. 가령 어린아이들이 TV로 아프리카 초원을 보는데 익숙하면 실제 현장에서 뛰노는 초원의 동물보다 TV화면이 더 실감이 나고 브라운관 자체를 동물들이 뛰노는 현장으로 착각하는 식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부터 오직 연습, 연습뿐이어서 죽어라 연습에 매진하거나 기껏 내가 연주해야 할 연주곡만이 주요 관심사다. 상식적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연주자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할것 같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내 경우 연주회를 앞두고 새로운 곡이 나오면  일 년이 다가도록 오직 내가 연주할 곡만 주로 감상하지 다른 곡은 돌아볼 여유가 없다. 어쩌다 시간이 나더라도 기껏 연주할 곡만을 감상하는 정도여서 감상자로 지낼 때보다 다양한 곡을 감상하지 못한다. 다만 연주자로 활동하면 연주하는 몇몇 연주곡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있다.

 

연주 자체를 통해 느끼는 희열감, 앙상블의 조화가 빚어내는 기쁨은 감상자들이 결코 알 수 없다. 연주회를 앞두고 매 주 단원들이 모여 연습하는 즐거움은 오케스트라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새로운 곡이 나오고 악보를 받아들면 뭐가뭔지 몰라 해매다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발전해가는 즐거움을 과연 누가 아랴! 

 

이윽고 연주회 날.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듯 온몸은 긴장감으로 두근거린다. 서서히 무대에 오른다. 순간 찬란히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객석은 뿌옇게 보이고 차마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보면대를 조절한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고 연주가 시작된다. 한 해동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각고의 노력과 애환이 깃든 선율이 마침내 무대와 객석으로 울려퍼진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돌아가는 지루한 일상,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 과연 연주자가 아니라면 이만한 기쁨, 이토록 큰 감동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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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딸애, 며느리, 손주들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간바람에 요며칠 나 홀로 독서실을 지키고 있다. 드넓은 집에 혼자뿐이라 얼씨구~ 꽉 막힌 숨통이 이제사 터진다. 아내와 단 둘이 살아도 혼자 있는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뭐 아내도 마찬가질텐데,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어가니 그럴까? 영화나 음악은 혼자 보고 듣는게 더 편하다. 자유롭게 생각에 잠길 수 있기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또한 아내도 마찬가질터.

 

커피 한 잔 들고 오디오 앞에 앉는다. , 이 여유로움~ 호젓함~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모처럼 음악감상에 집중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픽션>에 나오는 존 트라볼타의 트위스트 댄스장면, 정명훈과 도쿄필이 연주한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 알토섹소폰의 힘찬 연주가 유쾌한 코리안팝스 오케스트라의 <내게도 사랑이>등등. 이쯤 워밍이 되었으니 슬슬 클래식을 감상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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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다른 연주단체의 연주를 듣는것도 훌륭한 연습 방법이다. 그동안 연습 패턴은 거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실황을 보면서 따라 하다보니 트럼펫이 쉬는 마디면 모를까 오케스트라 연주 전체를 들을 기회가 쉽지않았다. 어제 오늘 큰 맘먹고 유튜브 동영상만을 집중 감상하였다.

 

먼저 드보르작 <교향곡 제 9신세계’>는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 필과 아마추어인 아리울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연이어 감상했다. 특히 아리울의 연주는 우리 칸투스와 비교하면서 여러 번 반복 감상하기도했다.

 

아마추어오케스트라의 특징은 처음엔 천천히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지휘자가 통제 안 될 정도로 점점 빨라진다.  아니나다를까 아리울 역시 신세계 교향곡’ 1악장 피날레에서 조금씩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3악장에서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듯 달아난다. '동물의 왕국' 한 장면. 드넓은 초원에 얼룩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하늘에 걸려있는 조각구름 몇 개, 고요~ 한가로움~ 순간 저쪽 어데선가 갑자기 얼룩말 한 마리가 내달린다. 그러자 수많은 무리들이 영문을 모른채 함께 달려간다. 동물들의 포효, 뭉게구름, 대지는 먼지로 뿌옇게 뒤덮이고,  마침내 수 백, 수 천의 말발굽소리가 천둥치듯 진동한다.  

 

너무 빠르다보니 박자, 리듬이 부정확한데다 제 음가를 충분히 내지 않고 뚝 뚝 끊어진다. 금관악기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여음처리가 잘 안 된다. 급기야 시골장터마냥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이다. 남일 같지 않다. 자칫 나도 저럴텐데, 어떻게 해야하나를 연신 속으로 생각하면서 감상한다.  

 

지휘자님이 평소 말씀하셨듯이 연습 때 정확하게 천천히 반복연습하면 실제 연주때 당황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연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울의 연주를 보면서 확실히 느낀점은 연습 때 정확하게, 그리고 천천히 연습하면 아주 효과적일 것 같다. 그런점에서 드보르작 연습때 내가 주로 듣는 첼리비다케 지휘의 뮌헨필 연주 동영상을 한번 참고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연주는 어제 저녁 했던 칸투스 연주 템포보다 더 늦고, 특히 3악장은 현저히 느리다.

 

나는 다른 연주에 비해 너무 늦은 첼리비다케의 지휘를 첨엔 좀 답답하고 재미 없어했다. 1991년도 이 연주를 레코딩할 당시 지휘자가 워낙 고령인데다 덩치까지 커 저렇게 천천히 지휘하나 오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주 보다보니 요즘은 이 양반의 지휘 모습이 친근하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느린템포로 따라 연습하노라니 박자, 음정 정확하고 차분해서 연주하기도 편하다. 일단 빠르면 조급하고 서두른다. 호흡도 가빠져 힘을 주고, 높은 음을 내거나 포르테일 경우 통제가 안 될정도로 빨라진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마추어는 차라리 천천히 연주하는게 좋지 않을까싶다. 앞에서 잠깐 말했는데, 아리울의 경우 연주가 점점 빨라지니 1악장 피날레와 3악장에서 트럼펫 역시 갑자기 길을 잃고 빨라진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와 지휘를 겸한 베를린필하모닉, 일본 태생의 세계적인 여류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가 지휘를 겸한 또 다른 연주영상을 연이어 감상했다.

 

연주자가 직접 지휘와 연주를 함께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야 본업이 지휘이니 그럴수 있다쳐도 피아노치랴 지휘하랴 부산스런 프레드릭 굴다의 지휘 모습은 재밌다못해 귀엽기(^^)조차하다.

 

뒤늦게 지휘로 방향을 바꾼 첼리스트 장한나는 나중에 본격 지휘 수업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도 간혹 지휘를 하기도하는데, 과거 장영주와 함께 공연한 음반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우치다의 동영상이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의 연주, 지휘 모습이 너무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것 같다. 가령 레오날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 구스타프 두다멜의 지휘가 역동적이라면 카라얀, 칼뵘은 대표적으로 정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캐릭터도 지휘하는 모습처럼 역동적이거나 정적일지 궁금하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과거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겸 지휘자 자리를 두고 정명훈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 정명훈의 후임으로 바렌보임이 그 자리를 맡았다- 그런데 이 두 지휘자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차이코프스키 쿵쿨 수상 이력이 있는 일류 피아니스트 출신인데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지휘하는 모습까지 너무 흡사하다는 점이다. 역동적이라고까진 할 수 없어도 그들의 지휘 모습은 다이내믹하고 격정적이다. 절도감이랄까, 딱 딱 끊어지듯 힘차게, 때로는 부드럽게, 얼굴 표정까지도 결연하게 보일때가 있다.   

 

내킨김에 모차르트 연주자로 유명한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 20>까지 함께.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고 라뫼르오케스트라 협연한 이 음반은 1960년에 레코딩한것으로 65세에 사망한 클라라 하스킬의 마지막 음반이기도 하다. 이 연주는 1악장 365마디 피아노 독주가 끝난 후 이어지는 카덴차가 다른 연주자들과 전혀 다르다이뿐이 아니다.

 

 

 3악장 경우 345마디가 끝난후 꽤 긴 카덴차가 이어지는게 일반적인데 특이하게도 하스킬의 연주는 카덴차를 아예 생략한다.  한 가지 아쉬운점은 워낙 오래전 레코딩이라 녹음 상태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모차르트 전문인 하스킬의 연주이고, 특히 그녀의 마지막 음반이라 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고 유익한 공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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