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담장 하나 사이로 옛날식 기와집 10여채, 독서실 주변은 주로 7, 80대 어른들이 산다. 자식들은 장성해서 다 떠나고 노인 내외거나 혼자다. 골목길 한 두 개 건너 가까이 살다보니 오다가다 인사 드리고 서로 부탁하는 일도 있어 이웃사촌이 따로 없다.
아침 청소 하는데 어데서 만도린 소리가 들린다. 담너머 이웃집 할머니댁이다. 70후반쯤이신데, 한때 실버 합창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고 피아노도 즐겨치신다. 언제 만도린도 하셨나? 피아노는 대개 찬송가고, 가끔 노래도 부른다. 썩 잘하는 솜씨는 아니고, 초보를 갓 벗어난 그냥 즐기는 정도.
피아노 소리는 일정하지 않다. 여름날 오후거나 나른하니 졸음에 겨울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트럼펫 연습 날, 독서실 바로 앞 감나무 잎이 하나둘 스산하게 떨어질 때, 하늘 하늘 남천 잎이 흩날릴 때,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골목길 피아노 소리. 못 치면 못 치는대로, 박자 틀리면 틀리는대로 낮은 음조로 찬송가와 함께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는 때로 정겹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베토벤의 소나타, 쇼팽의 녹턴이 이보다 더할까? 그냥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모습,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 투명한 소리!
2
지난 며칠 집수리하느라 무리했다. 어깨가 뻐근하다. 연습은 해야겠고 억지로 트럼펫을 든다. 어데 오늘뿐인가. 간혹 친척이나 이웃들과의 만남이 생기면 오후 연습을 거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미리 오전으로 앞당긴다. 오전에 못하면 저녁식사 후에 한다. 연습은 반. 드. 시. 해야만 한다. 불가피한 일만 아니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불가피한 일? 그게 뭔데? 하지만 매일을 거르지 않고 연습한다는 거 말처럼 쉽지 않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데? 누가 시켰나? 왜 그렇게 연습타령이지? 오늘같이 피곤한 날은 안 해도 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습관처럼 꾸역꾸역 하려다보니 문득 옆집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의 피아노와 나의 트럼펫. 누가 더 음악을 좋아할까? 누가 더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걸까? 할머니가 아닐까?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 그래, 나도 할머니처럼 하고싶다. 눈이 오거나 부슬부슬 비내리는 날, 쓸쓸이 낙옆이 뒹그는 날, 문득 커피가 한 잔 생각날 때, 어쩌다, 어쩌다 생각날 때, 아무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누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내킬 때 하고, 하기싫을 때 안하는것. 누가 뭐라고 하는것도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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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한 결과 INTJ로 나왔다. 근데 이게 믿을게 되나?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 아닌가? 상황에 따라 자유스럽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은 정해진 딱 하나라기보다 다중적 아닐까? 똑같은 일도 어떤 때는 이렇게, 다른 때는 저렇게 행동한다. 상황에 따라 대처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맘먹기에 따라 언제든 바뀌고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성격유형검사는 어느 한 가지로 결정된 행동 패턴을 보인다니 이런 식의 고정된 결정론을 신뢰할 수 없다.
한데 나의 평소 생각, 행동 패턴이 어째 바뀌지 않고 비슷하게 나타난다. 고쳐보려고해도 쉬 바뀌지 않는다. 누구는 타고난 기질, 성격 때문이라고한다. 아내의 우스개 말에 따르면, '사람은 탠대로 산다'고 한다 즉 태어난대로 산다는 거다. 일리가 있다. 맨 끝에 붙은 J. 이런 유형은 목표지향적이어서 어떤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계획적으로 밀어붙여야 직성이 풀린다고.
아닌게 아니라 그런면이 좀 있다. 연습시간 정해놓고, 매일 해야만 맘이 편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연습방식, 연습 태도는 이미 타고난 성격유형 때문일까? 사실이 그렇다면 할머니와 나 둘 중 누가 더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가를 비교한다는게 부질없다. 할머니는 아무것에 얽매일 것 없이 자유롭게 하고, 나는 나의 목표와 계획대로, 즉 각자 탠대로 자기 방식, 자기 성격대로 하는것일테니 말이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다. 한때 직장 동료였던 L. 어느날 뜬금없이 트럼펫을 사겠다고했다. 대충 저렴한 것으로도 되련만 부득부득 전공생, 직업연주자 수준이어야 한다고 우겼다. 바하 스트라디바리우스 LT모델, 일금 340만원정. 악기가 도착했지만 연습이라고해봐야 고작 내가 해준 원포인트 레슨 두 시간뿐이었다. 나 홀로 독학! 그래도 불철주야 성과는 있는지 동구밖 과수원길...을 딱 한 소절 했다 그것도 아흔살 해소기침 소리로. 비싼 악기이니 레슨을 좀 받으라 해도 막무가냈다. 굳이 얽매이고 싶지않다는게 이유였다. 하긴 공무원 신분에 연가내고 혼자 몽고 무전여행을 떠나는 친구였으니....이제사 미스테리가 풀렸다. 그래 사람은 텐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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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든 프로든 당신이 만약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일하게 ‘목표지향적’일거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동구밖 과수원 길’도 아닌, 그 힘든 드보르작과 모차르트를 연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매주 연습날을 잊지 않을까. 어떻게 그 힘든 연습을 꼬박꼬박 해낼 수 있을까. 때로 물먹은 솜마냥 사지삭신이 다 힘들고, 부부싸움에 친구갈등, 낙옆도 안 떨어지고, 눈도 안 오고, 비도 안 오는날도 있을텐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오케스트라는 한 해 한 번 정기연주회를 하고, 소품 위주의 작은 연주회를 몇 차례 더 한다. 자, 비중이 큰 정기연주회를 한번 생각해보자. 연주회를 앞두고 곡이 정해진다. 그러면 1년 후 있을 정기연주회를 목표로 본격 연습에 돌입한다. 통상 매 주 한 차례 모여서 연습을 한다. 1년이면 대략 50여차례, 물론 별도의 개인 연습이 더 많을 수 있다.
정기연주회 무대는 두 시간 남짓. 1년간의 연습을 생각하면 찰나의 순간이다. 스포트라이트, 우레같은 박수, 그토록 화려한 무대, 찾아온 지인들, 여기저기 청중들, 꽂다발, 웃음만발 기념촬영, 축제와도 같은 날, 특별한 저녁만찬. 하지만 모든게 한순간으로 끝나자 이윽고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바람 한 점조차 없다. 허망하다. 쓸슬하다. 공허하다. 1년동안 그토록 연습에 매진했던 시간들, 노력들, 하기싫은 연습날 참아내며 했던것. 더 재밌는 일도 있으련만 깡그리 무시하고 연주에 올인했다. 그런데 막상 연주회가 끝나고 나니 허망하다. 맹하다.
우리네 인생도 정기연주회 무대와 흡사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인생의 정기연주회를 시작한다. 일단 목표가 세워졌으니 싫든 좋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습에 돌입한다. 우선 학교를 졸업하자 직장이라는 목표가 나타난다. 또 다른 목표인 결혼, 이윽고 자식을 낳는다. 돈은 생활을 하는데 산소와도 같은 존재, 공기가 없으면 한순간도 숨을 쉴 수 없다. 만인들의 목표인 적금을 붓기 시작한다. 천만 원, 5천만 원, 1억...드디어 목표에 도달한다. 집을 산다. 더 큰 집을 산다. 하지만 목표는 계속 나타난다. 자식 결혼시킨다. 정기연주회, 또 다른 정기연주회, 그러다 마지막 도착점에 이르러 모든 정기연주회, 아니 모든 목표는 비로소 종료된다. 바로 죽을 날이 도래하는거다.
그동안 살면서 많은 목표를 세우고 이뤄왔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기쁨도 잠시, 새로운 목표가 나오고, 다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땀과 시간을 들인다. 그러나 목표는 단지 목표에 불과할뿐 삶의 궁극적인 의미가 될수 없다. 이런저런 크고작은 목표가 삶의 의미며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는거다. 보다시피 어떤 목표가 이뤄지면 다시 시작되고 계속해서 끝이 없다. 오매불망 목표가 성취되는 순간 그동안 들인 노력과 땀을 생각하면 허탈하기조차 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그때그때의 순간들이 더 중요하고, 삶의 정수이자 핵심이 아닐까. 다름아닌 바로 이 순간! 지금!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연습에 매진하는 이 순간 기쁨을 최대한 누리고 즐겁지 않으면 안 되겠다. 비록 트럼펫 연습이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의 일부이자 전부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이 순간이 전부이고 이 순간이 삶의 정수라면 연습시간, 연습 그 자체를 즐겁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 어떻게 해야 연습시간이 즐거울까? 어떻게 해야 연습이 즐거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