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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별건가? - 이탈리아를 입고 먹고 마시는 남자 오세호의 쉬운 와인 이야기
오세호 지음 / 책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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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식음 문화에 물 들대로 물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 제대로 이탈리아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카푸치노 한 잔, 오후에 에스프레ㅗ 한 잔,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와인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25p

📚식사 자리와 와인 감별 자리는 구분해야 한다! 향과 맛을 보고 난 후 소믈리에와 긍정의 신호만 주고받으며 일행들에게 안심과 설렘을 주는 절차 정도를 해낸다면 매우 멋질 것이다! 대부분의 책이 분명 '와인 초보자를 위한'이라고 하고는 죄다 와인 전문가가 소믈리에가 하는 절차를 알려 준다. 와인이 우리에게서 항상 저 멀리 높은 곳에 있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65p

📚 기억 속에 없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향과 맛으로 와인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향으로, 또는 함께하는 음식의 마리아주 경험으로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향과 맛을 기억으로 저장해 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인 전문가가 되어 잇을 것이다. 100-101p

📚 우선, 피자와 파스타를 함께 먹는 건, 비빔밥과 김밥을 함께 먹는 것과 같다. 외국인이 항상 여행 중 그런 식으로 먹는다면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거기다 식전 빵까지 나온다면 이건 뭐 밀가루, 밀가루, 밀가루를 모양만 다르게 해서 연거푸 먹는 것이니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그리고 또 하나, 가운데 놓고 다 같이 조금씩 이것저것 먹는 건 한식을 먹는 것이고,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때는 개인 플레이트 위주로 식사를 이어 가길 바란다. 164p




와인을 잘, 깊게 알고 싶은 사람보다는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와인, 그리고 이탈리아 식문화를 즐기면 좋을지 저자 오세호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자신의 다채로운 경험을 곁들여서. 술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공부할 엄두가 안나 기회가 되면 먹고는 잊고 마는 와인... 오프너 없을 때 귀찮아서 스크루 캡 고르는 사람이 여기있어요. '세상에 나쁜 와인은 없다'는 저자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며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좋아하는 것 앞에는 장사 없다. '입는 곳'에서 먹는 곳으로' 이탈리아에 무한 애정을 자랑하는 저자. (몰랐지만) 배우였던 부모님의 세련된 취향과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물려받은 것 같아 부러워지기도 한다. 피클과 피자는 잘못됐고, 이탈리아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동시에 파는 법은 없다. 미국이 문제 다빈치와 로시니를 소개하며 냅킨 접는 법과 포크를 다빈치가 발명(?)했다는 알쓸신잡 모먼트도 있지 않는다. 몇번을 봐도 좀처럼 와닿기 힘든 '바디감'을 크림우유, 일반 우유, 무지방 우유로 쉽게 풀어낸다. 와인뿐만 아니라 올리브오일, 치즈, 커피까지 말미에 등장한다.

가볍고 쉽게, 이탈리아 와인과 가까워 지는 에세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주로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선보인다는 이탈리아 1위 와인 람부르스코를 꼭 먹어봐야겠다. '스파클링'이 아닌 '스푸만테' 종류를 물어보라는 팁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한다면 '아페리티보'를 여유롭게 즐겨보고 싶다.



*와인 한잔을 꼭 곁들여 읽을 것!


이탈리아 식음 문화에 물 들대로 물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 제대로 이탈리아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카푸치노 한 잔, 오후에 에스프레ㅗ 한 잔,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와인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 P25

식사 자리와 와인 감별 자리는 구분해야 한다! 향과 맛을 보고 난 후 소믈리에와 긍정의 신호만 주고받으며 일행들에게 안심과 설렘을 주는 절차 정도를 해낸다면 매우 멋질 것이다! 대부분의 책이 분명 ‘와인 초보자를 위한‘이라고 하고는 죄다 와인 전문가가 소믈리에가 하는 절차를 알려 준다. 와인이 우리에게서 항상 저 멀리 높은 곳에 있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 P65

기억 속에 없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향과 맛으로 와인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향으로, 또는 함께하는 음식의 마리아주 경험으로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향과 맛을 기억으로 저장해 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인 전문가가 되어 잇을 것이다. - P101

우선, 피자와 파스타를 함께 먹는 건, 비빔밥과 김밥을 함께 먹는 것과 같다. 외국인이 항상 여행 중 그런 식으로 먹는다면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거기다 식전 빵까지 나온다면 이건 뭐 밀가루, 밀가루, 밀가루를 모양만 다르게 해서 연거푸 먹는 것이니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그리고 또 하나, 가운데 놓고 다 같이 조금씩 이것저것 먹는 건 한식을 먹는 것이고,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때는 개인 플레이트 위주로 식사를 이어 가길 바란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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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로절린드 스톱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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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던 남편 헨리가 죽고도 그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조용하고 심약한 메그, 화려한 패션감각의 소유자이자 남모를 비밀을 갖고 있는 대프니, 호탕한 웃음소리과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만 자메이카에 두고온 딸과 교사 시절 만난 학생과 관련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레이스. 그동안의 인생에 접점이 없어 보이던 일흔이 넓은 세 여자. 그저 필라테스 강좌를 함께 듣는 사이였던 이들은 카페에 모여 있다가 니나라는 아이를 만난다.

한눈에 니나를 구해야 한다는 걸 알아본 세 사람. 아이가 숨자마자 카페로 들어와 '딸'을 찾던 험악한 남자로부터 할머니들은 거짓말로 니나를 지켜낸다. 그리고 가까운 메그네 집에서 아이를 보살피려고 한다. 니나를 보호하려는 마음 하나로 움직이지만, 니나는 이 험악한 남자 '두꺼비'에게 다시 잡혀가고 말고, 이 온순한 세 할머니는 니나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선, 두꺼비를 죽여야한다. 살인에는 초보지만, 인생에선 초보가 아닌 할머니들의 대담한 선택이다.

니나를 구하는 여정에서, 네그와 그레이스, 대프니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게 된다. 일흔이 넘은 여자들이 겪는 공감대부터 각자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까지. 스스로의 속도로 말하고 또는 기다려주며 발을 맞춰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레그, 수재나, 데스 등이 합류하며 "늙은 흑인 여자 두 명, 노숙인 두 명, 전과자 한 명"은 제각각의 형태로 용기를 보여준다. 아주 작고 사소한 용기라도 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후반부에 메그가 납치됐을 때는 살짝 늘어지는 감이 들긴 했다. 이미 두번이나 니나를 구하기 위해 시도했고, 마무리되려던 찰나 굳이 메그가 그곳에 잡혀가서 나오는게 필요했을까? 싶었던...그냥 안전한 곳에서 네 사람의 대화도 보고 많이 보고 싶었는데. 물론, 말이 아니라도 설명되는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마치 드라마처럼 세사람, 그리고 니나까지 과거와 트라우마가 반복되어 조금씩 나오기 때문에 한번씩 곱씹어야 온전히 이해가 가능할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호'라고 느낀 것은 이들이 겪은 일들을 말할 때 직접적인 묘사를 최대한 자제한다는 점(그래서 말이 길어질수도 있다). +나무를 보고 추리하는 부분이 특히 좋아서, 더 부각되지 않은게 아쉬울 정도.



그래서 나는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삐끗하는 음이 들리는지,
누가 해선 안 될 말을 꺼내는지, 이탈하는 음은 없는지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런 음은 들리지 않았다.
셋이 모두 동의했고 그건 좋은 일이었다.
사소한 내 불안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는 모두 준법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들 일흔이 넘었지만 선량한 시민이었고, 분리수거도 잘하고,
임산부에게 버스 좌석도 양보하는 사람들이었다. - P15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 늙은이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모든 건 변한단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은 우리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건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믿는 것 같은 일이니까.
자기는 다를 거라 믿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내버려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옛날이 떠오르므로. - P84

니나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사랑 같은 건 없어, 그건 그냥 사회적 구조야.
헨리는 말하곤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생각하면 할수록
헨리 역시 모르긴 마찬가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간지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겠지.
나는 사랑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니나를 거의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사랑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요.
니나는 그렇게 말한다.
나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렇게나 확신에 차서 말을 한다.
나는 니나의 말을 듣는 게 좋다. - P146

사건의 냄새 때문에 나는 코가 간지러웠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이 문제를 모두 함께한다는 게 진정 도움이 되었다.
진부한 표현이 아니었다.
함께할수록 강해진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더라도,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우리는 함께할 때 강해진다.
나이도 많고 배짱도 많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이와 배짱. 이상한 날에 하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기로 서약했다는 사실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예전에는 왜 이런 해결책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못 이상했다.
주님은 아신다. 내 인생에는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 P167

각자의 사연을 서로에게 짐 지우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여성들이 짐을 이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사연의 무게를 함께 견딘다.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리할 거야." - P278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그냥 가지 왜 안 갔어요?"라고 물을 것이다.
당신들은 헨리 같은 사람과 살아본 적이 없잖아요.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처럼 결과를 감당할 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굳이 화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푸라기 한 올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고 한다.
별생각 없이 쓰는 표현이지만 그건 정말 존재하는 일이며 바로 그날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야유하며 말하는 바람에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 P360

"어떤 일들은 할 만한 가치가 있지." 그레이스가 말했다.
대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일을 넘어섰으면 좋겠어.
그 사건의 어떤 부분에도 머물지 말고.
그 일들은 나를 정의하지 못해. 두려움과 경험에 질식당해선 안 돼."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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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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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시'라는 표지에 쓰인 말 때문에 생전에 이어령이 쓴 시들을 묶었겠거니, 했다. 진지하고, 어려운 글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어령의 글은 역시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다. 그의 글은 내 무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수에서 비롯됐지만 고전(?)이 된 뽀빠이와 낙타, 지하실과 개구멍으로 보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 거북선의 승리를 관계론적 사고 덕분이라고 보는 것. 그가 말한대로 머리로 생각한 것을 얘기하는 '온리원의 사고'를 실현한 사람이 바로 이어령이 아닐까. 장의 구분을 두지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기존에 알던 이야기도 그가 하면 새롭고 재밌다. 무엇보다 '국물문화'와 '게구멍'을 어떻게 한국적인 것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지 말이다. 성이 아니라 길이 필요하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현 시점에서 곱씹어볼만하다.



빨강색 연필로 토끼를 그린 톨스토이의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놀렸다.
"얘야, 세상에 빨간 토끼가 어디 있니?"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있어요."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이어령이 발견한 문학예술의 창조적 세계다. - P17

한마디로 건물이나 교량 같은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보기술은 상상을 초월한 만큼 발전한 데 비해
모슬렘 문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었다.
후세인을 체포하는 데 실패한 이라크전에서도
사람을 잡는 데 정밀하다는 유도탄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정보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도탄같이 기계를 다루는 하드웨어의 정보기술이요,
또 하나는 상대방의 문화나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전자를 기계 기술, 후자를 지식 기술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 P40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허허벌판에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벽 속에서는, 감옥이나 동굴에서처럼 살아갈 수 없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화가 생겨난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 P69

아이들은 자기 발에 안 맞는 어른 신발을 왜 굳이 신고 다니려고 하는 것일까.
잘못하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걷기에도 거북한 신발을 질질 끌면서 왜 그렇게 흡족한 웃음을 지었던 것일까.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신발에는 자신의 작은 발로는 결코 다 채울 수 없는 헐렁한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이야말로 땅의 현실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하늘의 공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발을 잃어버린 가위눌림 같은 그런 악몽이 아니다.
미키마우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꿈과 창조적 사고를 그 공백 속에 숨겨두고 있다. - P106

···우리만 빼고 닫는 서랍의 쌍방향성, 그래서 ‘빼닫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학교를 ‘배움집‘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요
순수한 우리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거북선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그와 싸운 일본 배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려 하지 않는가.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다시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대가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 P127

도시의 경우, 서양은 체계화된 바둑판처럼 되어 있지만,
동양의 도시는 인간들을 싼다고 생각한다.
도시가 보자기처럼 사람들을 싼다.
그래서 거기에 집이 먼저 있고, 그리고 길이 생기게 된다.
서양은 길이 있은 다음 길거리에 집을 넣는다.
넣느냐 또는 싸느냐의 관계에서 볼 때, 서양은 넣는 문화고 우리는 싸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 P154

반찬은 밥의 텅 빈 맛 때문에, 그리고 밥은 반찬의 맵고 짠 자극적인 맛 때문에 싱싱하게 살아난다.
···밥 없이 김치만 먹어보면 그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너무 짜고 매워서 어떤 음식이 들어와도 입안이 얼얼하고 감각이 마비되고 만다.
시詩를 아는 사람만이 반복되는 운율의 맛-동질성 안에 있는 차이의 맛을 알 듯이,
밥을 아는 사람만이 김치 맛의 절묘한 운율을 듣고 맛볼 수 있다. - P186

한마디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보다 그 기계를 어디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에 더 많은 힘이 실려 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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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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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이 정치, 사업, 경제 분야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는

종종 '보호'나 '혜택'이라는 설명이 딸려 있었다.

인종적, 민족적 소수집다에 그런 법을 적용한다면

부당하고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될 것이다.

여성을 특별 대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유를 빼앗는 새장인 경우가 매우 많다.

우리는 성별 분류가 채용 같은 근본적인 이해관계에 관련해 이루어지는 경우,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3p

수정 결정은 헌법 위반 사항을 매우 적절하게 보완해야 한다.

'차별이 없으면 가질 수 없었던' 기회나 혜택을 거부당한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법에 위배되는 것은 남성에게 제공하는 특별 교육 기회를

여성에게 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수정책은 '과거의 차별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고

'미래의 유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57p

레드베터가 경험한 것과 같은 임금 차는

단일 차별 건보다는 적대적 작업 환경 주장과 유사하다.

모건과 유사한 레드베터의 주장은 특정 임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별 행위가 축적되어 나타난 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레드베터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축적된 차별을 고발했다.

···

각 행위가 일어난 시기는 고소 기한에 속하지 않지만,

굳이어는 매회 임금을 지불하면서 레드베터에게 점점 더 큰 손해를 안겨주었다.

69-70p

대법원도 결국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종교 자유 회복법을 적용함으로써

'협상이 이루어지는 경우 비수혜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어떤 전통도, 종교 자유 회복법에 따라 내린 어떤 이전 판결도

그 협상이 타인-즉 피임 보장 요건이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때는 종교에 근거한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116p

대법원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쟁점에 대해서도 정연한 사법적 검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의 선거 관리인과 본 논란의 모든 편에 선 대리인,

법원의 신의를 지키며 근면하게 의무를 다했음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29시간 내에 두 가지 중요한 의견을 내놓았다.

종합적으로 합법적 재검표가 비실용적이라는 대법원의 결론은

대법원의 판단이 시험받도록 하지 않겠다는 예언인 셈이다.

이처럼 검증받지 못한 예언이 미국 대통령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본인은 반대하는 바다.

155p

뉴헤이븐시의 비인증 결정으로

승진 후보들이 다시 한번 선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결함 있는 시험으로 지휘관이나 소방관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춘 후보를 배제한다면 더욱 유감일 것이다.

오늘 대법원은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오랫동안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 집단은

'형식 면에서 공정하나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시험을 통해 차단당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그릭스 재판의 약속을 깨는 선택이다.

···본인은 피항소인들이 '상당한 통계적 불균형'을 보여주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한다.

169p

이미 있던 것과 싸우는 사람, 긴즈버그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타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그의 기록. 그녀는 재판의 다수 의견과 반대되는 소수 의견을 자주 내기도 했고, 다수 의견에 첨언한 동의 의견도 냈으며 대법관 이전 시절에도 수차례 의견서를 제출했다. 긴즈버그의 원칙은 단 하나다. '타고난 것에 대한 차별의 부재'. 주류에서 벗어난 집단도 사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선례도 없고, 헌법상 문제없는 판결이라도 자신의 원칙을 지켜 논리정연한 글을 작성한다.

제 1부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제 2부 임신출산의 자유

제 3부 선거권과 시민권

<리드 대 리드> 사건의 항소 의견서로 시작해 여러 조언자 의견서,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동의 의견으로 이루어진 3부의 구성. 긴즈버그는 몇 십년간 치열하게 법 앞에서 '시대의 차별'을 정의한다. '부분 출산 임신 중지 금지법'을 지지한 곤잘러스 대 카하트 소수의견, 장애인법의 법적 근거에 따라 판결난 옴스테드 대 L.C. 다수 의견, 버지니아 사관학교 사건은 특히 인상깊다. 차별의 정의에 대해 그만큼 심도높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대체로 수정헌법 5조 또는 14조 평등보호조항에 반한 차별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때로는 '약자 우대' 또는 '평등 보호'로 보이는 판결에 반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차별이 차별인지도 모르던 때, 정확히 그 사실을 집어내는 그의 시선은 올곧다.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해설과 함께 읽기 쉽도록 편집된 책은 안 그래도 논리정연한 그의 주장을 깔끔하게 되짚도록 만든다. 특히 3부에 등장하는 판례들의 경우 현재의 역차별 논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여러 판결들을 보고, 입법과 개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패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이걸 대체, 왜,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은 상황이 많다. 긴즈버그는 얼마나 그런 상황을 많이 맞딱뜨렸을까. 그럼에도 긴즈버그는 '법'의 정의를 위해 말과 글로 지치지 않고 싸웠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올바른 선례를 남기고자 한 그의 노력이 조금도 헛되지 않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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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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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영국의 소설가인 책의 주인공이 글쓰기 강좌를 위해 몇 주간 아테네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테네라는 배경 외에 그 이전과 이후에 속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놀랄만큼 화자는, 이야기 내내 별말이 없다. 때때로 화자의 반박이, 현실이 잠시 치고 들어오지만 이내 타자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첫인상과 다르게 눈살 찌푸려졌던 비행기 옆자리 남자로 시작해 동료, 편집자, 수강생 등 그들의 이야기에 그저 귀기울일 뿐이다.

중반부쯤 책을 읽었을 때의 인상은 어쨌거나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르는 소설 (그것도 장편)이나 묘사가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서사로 몰입도를 높이지는 않는다. 중심이 없거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에 별로 끌리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로드무비 같았다. 말하는 이들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적고 독백같기도 해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하다.

후반부까지 일관되게 지속되는 이러한 흐름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화자가 된 것 처럼 그들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그저 듣게 (아니 읽게) 된다. 어디서 태어났으며 직업은 무엇이고 현재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상대의 상당히 부분적인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뚜렷한 답이 없는 자신만의 윤곽을 완성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아내는 10대 때 만나서 약혼했다.
한 번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지만, 딱 한 번 말다툼을 했을 때 둘 사이의 모든 것이 깨지고 말았다.
아이는 둘이었고 부부는 함께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아테네 근교에 저택을 마련했고, 런던에 아파트가 있고, 제네바에도 집이 한 채 있었다.
말을 샀고, 스키 여행을 다녔으며, 에게해에 정박해둔 약 12미터짜리 요트도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젊었고, 덕분에 재산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거라고,
삶이란 그렇게 확장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삶이 더 커질 때마다 그것을 담기 위해 이전의 그릇들을 하나씩 깨나갔다. - P17

그 만남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물질적인, 지상을 벗어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물건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의 차이도 드러나지 않았다. 옆자리 남자의 물질적인 실체, 하늘 위에서는 그렇게 가벼워 보였던 그 실체가 지상에서는 구체화되어 있었고, 그 결과 그가 더 낯설어 보였다. 마치 그를 만나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구속이 되는 것처럼. - P71

가끔은 제가 베를린에서 돌아와 느꼈던 피로감이 사실은, 그 여성들 모두가 느끼고 있던 집단적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여자들 본인은 피로감을 느끼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저한테 떠넘긴 게 아닐까 하고요.
···신호등 같은 데 걸려서 달리기를 멈춰야 할 때면, 새하얗고 커다란 운동화를 신은 채 제자리에서 계속 뛰다가, 신호가 바뀌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면 고무 밑창을 댄 굽 없는 신발을 신었는데, 아주 실용적이면서 아주 못생긴 신발이었죠.그 여자들 몸에서 제일 덜 우아한 게 바로 그 신발이었어요. - P135

사람들이 본인들이라면 절대 꿈도 꾸지 않을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권하는 것이 재미있었다.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가장 친절한 사람들,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도그의 관심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속박이 심한 곳, 탈출이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그저 가끔씩 꿈꿔보는 그런 것에 불과한 자리에서 그에게 조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88

그녀 본인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런 식으로 솔직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깨고 바닥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들이 바로 다음 순간 대놓고 그녀를 모욕하곤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렇게 서로 솔직해지는 순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어떤 종류의 가식, 마치 실제로는 단지 그 순간에 그녀를 이용하고 싶을 뿐인 어떤 남자가, 마치 그녀를 온전히 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라고 했다. 그녀 본인도 기꺼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할 때가 있지만, 서로 그런 의도를 인정한 후에만 그렇게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 P218

하지만 스타브로 씨의 어미 개, 덩치카 크고 비호감인 그 개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어요. 그래서 ‘안 되겠어요. 저희는 개를 키울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죠. 아무튼 개를 보여준 건 감사하다고 말했고, 그는 그대로 돌아갔어요. 아이들은 아주 실망했죠. ‘엄마는 늘 일을 망치기만해‘라고 아들이 말하더군요. 바로 그 순간, 강아지가 아이들에게 부렸던 마법이 완전히 풀렸을 때 저도 이성을 되찾았고, 그와 함께 현실 감각도 되돌아왔어요. 그 느낌이 어찌나 냉혹하고 강력하던지 우리가 서 있는 집의 지붕이 날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 P251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가들의 작품,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았던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요약이 가능했다. 심지어 그녀가 신처럼 모시는 베케트의 작품들도 의미 없음이라는 단어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본인도 그것이 일종의 문화병임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 병은 자신의 내면을 장악해 심지어 스스로에 대해서도 요약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차피 앤의 삶이라는 표현으로 다 정리가 될 텐데,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실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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