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영국의 소설가인 책의 주인공이 글쓰기 강좌를 위해 몇 주간 아테네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테네라는 배경 외에 그 이전과 이후에 속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놀랄만큼 화자는, 이야기 내내 별말이 없다. 때때로 화자의 반박이, 현실이 잠시 치고 들어오지만 이내 타자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첫인상과 다르게 눈살 찌푸려졌던 비행기 옆자리 남자로 시작해 동료, 편집자, 수강생 등 그들의 이야기에 그저 귀기울일 뿐이다.
중반부쯤 책을 읽었을 때의 인상은 어쨌거나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르는 소설 (그것도 장편)이나 묘사가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서사로 몰입도를 높이지는 않는다. 중심이 없거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에 별로 끌리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로드무비 같았다. 말하는 이들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적고 독백같기도 해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하다.
후반부까지 일관되게 지속되는 이러한 흐름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화자가 된 것 처럼 그들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그저 듣게 (아니 읽게) 된다. 어디서 태어났으며 직업은 무엇이고 현재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상대의 상당히 부분적인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뚜렷한 답이 없는 자신만의 윤곽을 완성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