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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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추파는 두가지 모두에 거리는 최악에 속한다.

그래도 그 '추파'에 몸을 맡기고 한 키스가 결국 심장을 도려내는 종말로 끝나는,

그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끔찍한 순간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 번째 규칙이 필요하다.

첫째, 입 닥치고 있을 것. 둘째, 지나치게 관심을 쏟지 말 것.

그리고 셋째, 좋아하는 여자에게 절대 키스하지 말 것.

나로서는 '정신 차리고 나도 내 인생 찾아야지'라는 말을 듣고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말을 믿을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내 인생'이라는 것은 가게에 가면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우리의 10대는 늘 멋지지 않다. 누구나 빛날 수 없고 누구나 인정받을 수 없다. 의대 캠프에 가라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윌에게, 상황에 떠밀려버리는 윌에게 그래서 나는 무한공감한다. 나의 하루하루 또한 매일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내 청춘은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는다. 윌 그레이슨과 윌 그레이슨의 상황 또한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함께 답답해하고 함께 슬퍼한다.

 

 책 도입부에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무런 교차점이 없는 윌 그레이슨과 윌 그레이슨의 이야기가 교대로 그려지고 각자의 스토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썩 친절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이 중간까지는 지나가야 두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그 만남까지만 읽어나가보자고 생각했다. 둘은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장소에서 만났고, 내 예상을 끝내 모두 비웃었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넌 도대체 정체가 뭐니?

-타이니 쿠퍼!

-'타이니'란 이름, 너랑은 안 어울리지 않니?

-나도 알아. 아이러니라는 것도 있잖아.

-.

-''라고 할 필요 없어. 난 괜찮으니까. 내가 뼈대가 좀 크긴 하지.

-, 뼈대만 큰 거 아니거든.

-그만큼 사랑할 데가 많다는 거 아니겠어!

-그러려면 장난 아니게 힘이 들 텐데.

-친구, 난 그만한 가치가 있어.

 

 어쩜 이렇게 바로 옆에 있던 친구가 하나같이 골 때리는 사람들인지. 하필 유일하게 있는 친구들의 무대뽀 기질에 막무가내식인지. 주인공들은 거기에 힘도 못 쓰고 끌려가는 꼴이 어찌나 답답하던지. 특히 설마설마 했던 마우라의 뒤통수(!)와 멋대로 자신의 뮤지컬에 이름을 올려버리는 타이니 쿠퍼의 행동들에 욕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결국은 그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일 뿐이고 그들과 평생함께 하는 순간도 다시는 보지 않을 순간도 스쳐지나갈 뿐이다.

 

  타이니 쿠퍼는 계속해서 말한다. 자신은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그와 친구가 아닌) 그와 며칠 알았을 뿐인 윌 그레이슨은 그가 있었다면 당연히 학교에 게이클럽이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그 회장을 맡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타이니 쿠퍼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늘 그 사랑과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다. 설사 그가 떨고 있고 그의 어두운 마음들이 나오는 순간에도 그는, 주었던 만큼의 사랑을 다시 받는다. 수많은 윌그레이슨들에게. 이 책의 주인공은 타이니 쿠퍼가 아닌가 싶을만큼 그는 충분히 아름답다.

 

 외국 작가들의 재치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농담을 알아듣기도 힘들뿐더러 국내정서에 완전히 세뇌되어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생각들에 좀처럼 녹아들지 않는다. 하지만 긴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나도 점점 그들의 재치에 젖어든다. 윌 그레이슨과 윌 그레이슨이 주고 받는 이야기에 함께 담기고 타이니 쿠퍼의 뮤지컬을 함께 신나게 즐긴다. 긴 여정을 함께 그리고 홀로 걸어가며 성장한 두 윌 그레이슨의 사랑과 우정이 찬란하게 빛나길.

 

 

 

-그런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그게 그거였잖아. 맞지? 시행착오 말이야.

'시행성공'이라는 말이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시도를 하면 실수를 하게 되어 있는 거야. 시도하고 실수하고.

...

-, '시행착오'란 말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데는 동감이야.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내 생각에는 시도하고 실수하고. 그걸로 끝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은 시도하고 실수하고 또 시도를 하지.

시도하고 실수하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실수하고 시도하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얻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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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소울 스키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5
박은몽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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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심아경은 잠시 고개를 들고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를 어째, 쯧쯧.’

그것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조금도 익숙해지지 못한,

전혀 편안해지지 않는 말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하는 이를 어째, 쯧쯧은 다른 사람들이 이때까지 해온

이를 어째, 쯧쯧보다 조금도 더 따뜻하거나 편안하지 않았다.

 

  가족과 세상에 상처입은 소년과 소녀가 만난다.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천천히 치유해 나간다. 그 과정은 타인이 보기에 때로는 어지럽고 때로는 함께 고통스러우며 자칫하면 공감하지 못한 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굳이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후자에 가깝기도 하다. 성까지 붙이며 지칭하고 때로는 호칭이 바뀌는 면도 어느정도 기여했을 테지만 두 사람의 마음을 어루어만져 주기에 문장들이 조금, 딱딱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보기에 더 좋을 책일 듯 싶다. 어른과 아이는 불과 몇 년의 텀을 두고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로의 세계를 너무나 모른다. 누군가는 이 책을 그저 소설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로 일어나기에 잔인한 일이라서. 하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상상 이상으로 살벌하다. 그저 웃음으로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언제나 어려웠다.

다만 그녀가 알고 있는 것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바보처럼

타인에 의해 자신의 인생을 난도질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더 힘든 일을 당하게 되더라도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였다.

 

분명 세상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그들을 보듬는 문장이 따뜻하고 힘든 이야기는 부드러워지기를 바란 것일지도. 그녀의 마음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다는,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를 날리던 강아경이 (그 자신감으로(!)) 자신의 옥상을 뛰어넘어 훨훨 날아가기를. 우리 아경이들의 헤어짐이 다시 만남이 되는 날까지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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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난 길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6
현길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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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와 미국에 가서도 학생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만났던 세철의 이야기를 하거든.

너는 참 착하고 영리하고 순수하고, 그리고 뭐랄까.

인정이 많고, 자기 욕심을 채우지 않고, 그런 소년으로 내 가슴에 깊숙하게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요. 욕심이 많고, 공연히 헛된 자존심이 세고,

경쟁심이 강해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고집이 세어 남과 타협하지 않으려 하고,

그런 안 좋은 점이 너무 많은 아이에요.

 

 

  다른 등장인물들의 생각도 분명 등장하지만 거의 세철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소설인 듯 싶다. 지방(그것도 제주라니!)에서 올라와 서울을 보는 소년의 시선은 걱정만큼 의기소침하고, 귀여울만큼 순진하고, 비슷한 처지의 나로서는 슬프게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1956년의 서울을 고등학생 소년의 눈으로 솔직하게 담은 이야기로 보면 좋을 것이다. 다만 문장이 투박하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뚝 떨어뜨린 채로 보는 듯한 방식에 점차 적응이 될 것 같다면 별 문제 없고.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는, (결정적으로 내가 결핍을 절절히 느끼는 소년이 아니기 때문일 듯 하지만) 욕망인지 연민인지 모를 옥자에 대한 마음이다. 그렇게 호되게 다한 뒤로 두 번째로 찾아간 일은 순수한 억울함과 궁금증 덕분이라고 해도 그 다음에도 종종 그녀를 떠올리고, 서울을 떠나려 했던 그 날에도 그녀를 찾아갔던 이유를 글로는 대충 알겠지만 백퍼센트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냥 마지막에, 세철이 그녀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너를 잊지 못할 거야.

왜냐면 우리 앞에 흘렀던 탁한 강물을 함께 건넜기 때문이야.

우리 인생의 한복판을 흘렀던 전쟁이라는 시간의 강물을 온몸으로 헤엄쳐 건너지 않았니?

그 강물이 우리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피도 되고, 살도 되고, 생각도 되었거든.

그것을 우리는 같이 지니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잊을 수 없지.

 

 

  전편을 읽지 못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아 할지 모를 유원과 규석, 그리고 세민과 정선생의 관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다만 유원이 아주 똑부러지는 여자아이라서 세철의 첫사랑의 열병 또한 현명하게 맺어줄 줄 알았다는 것과 (매우) 딱딱하게 말하지만 변하는 것에 익숙지 못한 동생에게 진심으로 충고하는 형 세민의 마음이다. 많은 이들의 대견함이 반복되는 데 나도 가끔은 부끄러워지지만 분명한 건, 정 선생부터 얀드레 소령까지 세철의 인복은 엄청나게 좋다는 것!

 

그의 성장이 무조건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그의 순수함과 정직함이 여전하기를, 동화같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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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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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가 간다. 내일은 또 올 것이다.

그 내일은 또 오늘이 될 것이고 그 오늘이 지나면 또 내일이 올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면 된다. 사고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평범함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죽어라 말 안 듣는 아이들과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선생님의 사투가 눈물겨운 이야기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신나게 튀어버리고 그들을 잡아야하는 선생님의 하루는 지겹도록 길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로 도서관에서 독서활동을 진행하려고 하지만 예상 밖의 난관에 부딪히고, 자신의 이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과 작은 일로 피곤한 밀당을 하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수인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양희순과 같은 교사가 곁에 있어 다행이고, 말썽만 부리는 아이들이 그녀의 성장을 함께 했다는 것에 다시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등장하는 이름들이 참 예쁘다는 것이다. 수인이 전에 있던 학교의 이름인 수산나라는 말도 참 예쁜데 아이들이 꿈과 현실사이의 고리삼아 만들었던 독서동아리의 이름, ‘호접몽도 묘하고 신비로운 이름이다. 수인이 자주 들렀던 헌책방, ‘자작나무 사이로도 그렇고 도범이의 새 이름 은탁또한 그렇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모습들이 예쁘고 오래된 책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고성같은 도서관이 그러하다.

주체할 수 없는 흥이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 왔다는 것을 안다.

그 흥이 사라지기 전에 그 자리를 메울 또 다른 흥을 좇아 여기까지 왔다.

그 흥 때문에 자신의 발등을 깰 때도 많았다.

고만한 용기와 고만한 소심함, 고만한 머뭇거림,

고만한 두려움과 고만한 후회로 밤잠을 설치며 잠을 이루지 못한 다음 날,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려 하거나 포기하려 한 날이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갔다.

늘 불안했고 그보다 더 큰 불안이 잠재우거나 잊게 만들었으며

겪은 불안만큼 용기도 가질 수 있었다.

 

 

  망치를 가방에 넣고 다니고, 선생님에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쉴새 없이 떠들고, 때로는 절도와 폭력도 서슴치 않는 아이들. 책 내내 이어지는 긴긴 싸움에 수인도 지치고, 아이들도 지치고 이미 오래전에 지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사실 그들의 가려운 부분들이 시원하게 긁어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들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지켜보고 싶은 독자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수인은 또다시 달릴 것이고, 아이들은 조금 느리더라도 그녀의 손을 쉽게 놓지 않을 것이고 더 느리더라도 어쩌면 다른 교사들도 아이들을 다시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수인의 프로젝트가 꼭 성공하길.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즐길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길.

그들의 도서관이 그들이 이름들 만큼이나 어여쁘고 좀 더 따뜻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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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있나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2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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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은 내게 누구와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고아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 약간 헷갈렸다.

열여덟 살도 고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열여덟 살은 고아라고 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지 말이다.

 

엄마가 죽은 후 홀로 지내던 재규의 앞에 엄마와 싸우고 고시원으로 나가있던 누나 재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식당으로 돌아와 다시 행복식당을 운영해 보겠다고 낑낑댄다. 은아이모까지 돕겠다고 나서지만 나, 재규는 그런 누나의 모습이 썩 탐탁치 않다. 멋대로 메뉴를 바꾸고 일을 진행하고, 자기 말은 듣는 족족 무시해버리는 데다가 사기까지 당해버리는 재연에게 화가 나기까지 한다. 서로에게 서툴고, 살갑지 못하던 두 남매는 오히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엄마를 머물게 하고 또 떠나보내며 식당 문을 연다.

 

 

우리는, 그리고 종종 청소년 소설에서는 고아라는 모습을 한없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반항의 이유로, 또는 꼭 극복해야할 편견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어른과 아이의 어중간한 경계에 서있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두 남매에게 고아라는 단어는 그저 낯설고, 이 세상에 없는 엄마를 어느 순간 잊기도 하며, 때때로 사무치게 그리워하기도 하며 묵묵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 소설에서 틀에 박힌 또다른 이름은 부모다. 부모님은 늘 살갑게, 때로는 묵묵히 자식을 챙겨주며 모든 자식들은 결국 부모님들의 사랑을 깨닫고 그 품으로 돌아간다는 그 흔한 클리셰를 이 소설에서는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는 재연재규 남매에게 빛이기도 했지만 그늘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대화가 부족했고 엄마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던 철없는 남매 스스로의 탓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고생을 고스란히 보고 자라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말하지 못하고 엄마의 기대에 한없이 무거워만 하던 두사람이 짐을 훌훌 털어내고 제 길을 찾아가는 것이 기특했다.

 

 

 

누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누나의 몸의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오랫동안 누나의 목을 막고 있던 사탕이 툭 튀어나왔다. 사탕이 떼구루루 굴러간다.

사탕은 구르고 또 굴렀다. 사탕을 잡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사탕을 다시 누나 입에 넣어주어야 누나가 울음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사탕은 잡히지 않았다.

손에 닿을 듯하던 사탕은 내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사탕은 구르면서 작아졌다.

그리고 누나의 울음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아무리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화를 내보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말을 아끼는 남매지만 한번 말이 트였다하면 툭탁거리고 다투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힘들 때 곁에 있는 유일한 존재가 서로에게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실 읽는 내내 마음이 갔던 부분은 너무나 순둥이인 주인공 재규였는데 정말로 세계에 흩어진 고흐를 보는 것이 꿈이라는 이 열여덟 남자아이의 문장인 듯해서 더 재밌게 읽어나간 것 같다.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착한 아들이자 누나를 오히려 챙기는 이 듬직한 남동생도 어쩔수 없는 어리숙한 열여덟 남고생이다. 그 사실이 재규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수지의 마음을 몰라 오랜시간 삽질을 하고, 충동적으로 누군가를 때리기도 하고 꿈을 찾아 훨훨 나는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진모와 성적과 외모는 반비례 한다며 여학생의 외모를 살피는 뜨끔한 일부터 엄마 생각에 펑펑 울기도 하는 그런 아이다. 결국 자신이 즐거워하던 미술을 다시 한번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재규뿐만이 아니다. 우리 또래의 모든 아이들이 하는 걱정을 재규는 좀더 특별했던 상황 속에서 한 것 뿐이다.

 

 

 

인마, 원래 그래. 딱 부러지는 건 없다.

수학이라고 딱 정해지냐? 그 뭐냐, 파이. 3.14.

그 뒤로도 계속 줄줄이 따라오잖아. 인생은 원래 애매한 거다.

그러니까 결단력이 필요해. 3.14 뒤를 딱 잘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재연과 재규 남매의 앞에는 너무나 긴 길이 있고 그 방향과 가는 법을 알려줄 중요한 사람이 한명 사라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혼란이 줄어들었고 자신을 솔직히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고, 문을 열어야 할 행복식당이 문이 있고, 지켜봐 줄 많은 사람들이 있고, 엄마가 맺어준 서로가 있다. 자신의 인생의 첫발을 내딛은 두 남매의 행복식당에서 나도 한끼 싹싹 비우면서 잘 먹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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