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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별건가? - 이탈리아를 입고 먹고 마시는 남자 오세호의 쉬운 와인 이야기
오세호 지음 / 책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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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식음 문화에 물 들대로 물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 제대로 이탈리아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카푸치노 한 잔, 오후에 에스프레ㅗ 한 잔,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와인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25p

📚식사 자리와 와인 감별 자리는 구분해야 한다! 향과 맛을 보고 난 후 소믈리에와 긍정의 신호만 주고받으며 일행들에게 안심과 설렘을 주는 절차 정도를 해낸다면 매우 멋질 것이다! 대부분의 책이 분명 '와인 초보자를 위한'이라고 하고는 죄다 와인 전문가가 소믈리에가 하는 절차를 알려 준다. 와인이 우리에게서 항상 저 멀리 높은 곳에 있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65p

📚 기억 속에 없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향과 맛으로 와인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향으로, 또는 함께하는 음식의 마리아주 경험으로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향과 맛을 기억으로 저장해 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인 전문가가 되어 잇을 것이다. 100-101p

📚 우선, 피자와 파스타를 함께 먹는 건, 비빔밥과 김밥을 함께 먹는 것과 같다. 외국인이 항상 여행 중 그런 식으로 먹는다면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거기다 식전 빵까지 나온다면 이건 뭐 밀가루, 밀가루, 밀가루를 모양만 다르게 해서 연거푸 먹는 것이니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그리고 또 하나, 가운데 놓고 다 같이 조금씩 이것저것 먹는 건 한식을 먹는 것이고,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때는 개인 플레이트 위주로 식사를 이어 가길 바란다. 164p




와인을 잘, 깊게 알고 싶은 사람보다는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와인, 그리고 이탈리아 식문화를 즐기면 좋을지 저자 오세호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자신의 다채로운 경험을 곁들여서. 술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공부할 엄두가 안나 기회가 되면 먹고는 잊고 마는 와인... 오프너 없을 때 귀찮아서 스크루 캡 고르는 사람이 여기있어요. '세상에 나쁜 와인은 없다'는 저자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며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좋아하는 것 앞에는 장사 없다. '입는 곳'에서 먹는 곳으로' 이탈리아에 무한 애정을 자랑하는 저자. (몰랐지만) 배우였던 부모님의 세련된 취향과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물려받은 것 같아 부러워지기도 한다. 피클과 피자는 잘못됐고, 이탈리아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동시에 파는 법은 없다. 미국이 문제 다빈치와 로시니를 소개하며 냅킨 접는 법과 포크를 다빈치가 발명(?)했다는 알쓸신잡 모먼트도 있지 않는다. 몇번을 봐도 좀처럼 와닿기 힘든 '바디감'을 크림우유, 일반 우유, 무지방 우유로 쉽게 풀어낸다. 와인뿐만 아니라 올리브오일, 치즈, 커피까지 말미에 등장한다.

가볍고 쉽게, 이탈리아 와인과 가까워 지는 에세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주로 스파클링 레드 와인을 선보인다는 이탈리아 1위 와인 람부르스코를 꼭 먹어봐야겠다. '스파클링'이 아닌 '스푸만테' 종류를 물어보라는 팁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유럽 여행을 한다면 '아페리티보'를 여유롭게 즐겨보고 싶다.



*와인 한잔을 꼭 곁들여 읽을 것!


이탈리아 식음 문화에 물 들대로 물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자 제대로 이탈리아 향수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침에 카푸치노 한 잔, 오후에 에스프레ㅗ 한 잔,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와인 한 잔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 P25

식사 자리와 와인 감별 자리는 구분해야 한다! 향과 맛을 보고 난 후 소믈리에와 긍정의 신호만 주고받으며 일행들에게 안심과 설렘을 주는 절차 정도를 해낸다면 매우 멋질 것이다! 대부분의 책이 분명 ‘와인 초보자를 위한‘이라고 하고는 죄다 와인 전문가가 소믈리에가 하는 절차를 알려 준다. 와인이 우리에게서 항상 저 멀리 높은 곳에 있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 P65

기억 속에 없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향과 맛으로 와인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누구나 경험하기 쉬운 향으로, 또는 함께하는 음식의 마리아주 경험으로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향과 맛을 기억으로 저장해 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인 전문가가 되어 잇을 것이다. - P101

우선, 피자와 파스타를 함께 먹는 건, 비빔밥과 김밥을 함께 먹는 것과 같다. 외국인이 항상 여행 중 그런 식으로 먹는다면 옆에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거기다 식전 빵까지 나온다면 이건 뭐 밀가루, 밀가루, 밀가루를 모양만 다르게 해서 연거푸 먹는 것이니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그리고 또 하나, 가운데 놓고 다 같이 조금씩 이것저것 먹는 건 한식을 먹는 것이고, 이탈리아식 식사를 할 때는 개인 플레이트 위주로 식사를 이어 가길 바란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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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로절린드 스톱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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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던 남편 헨리가 죽고도 그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조용하고 심약한 메그, 화려한 패션감각의 소유자이자 남모를 비밀을 갖고 있는 대프니, 호탕한 웃음소리과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만 자메이카에 두고온 딸과 교사 시절 만난 학생과 관련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그레이스. 그동안의 인생에 접점이 없어 보이던 일흔이 넓은 세 여자. 그저 필라테스 강좌를 함께 듣는 사이였던 이들은 카페에 모여 있다가 니나라는 아이를 만난다.

한눈에 니나를 구해야 한다는 걸 알아본 세 사람. 아이가 숨자마자 카페로 들어와 '딸'을 찾던 험악한 남자로부터 할머니들은 거짓말로 니나를 지켜낸다. 그리고 가까운 메그네 집에서 아이를 보살피려고 한다. 니나를 보호하려는 마음 하나로 움직이지만, 니나는 이 험악한 남자 '두꺼비'에게 다시 잡혀가고 말고, 이 온순한 세 할머니는 니나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선, 두꺼비를 죽여야한다. 살인에는 초보지만, 인생에선 초보가 아닌 할머니들의 대담한 선택이다.

니나를 구하는 여정에서, 네그와 그레이스, 대프니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게 된다. 일흔이 넘은 여자들이 겪는 공감대부터 각자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까지. 스스로의 속도로 말하고 또는 기다려주며 발을 맞춰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레그, 수재나, 데스 등이 합류하며 "늙은 흑인 여자 두 명, 노숙인 두 명, 전과자 한 명"은 제각각의 형태로 용기를 보여준다. 아주 작고 사소한 용기라도 낼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후반부에 메그가 납치됐을 때는 살짝 늘어지는 감이 들긴 했다. 이미 두번이나 니나를 구하기 위해 시도했고, 마무리되려던 찰나 굳이 메그가 그곳에 잡혀가서 나오는게 필요했을까? 싶었던...그냥 안전한 곳에서 네 사람의 대화도 보고 많이 보고 싶었는데. 물론, 말이 아니라도 설명되는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마치 드라마처럼 세사람, 그리고 니나까지 과거와 트라우마가 반복되어 조금씩 나오기 때문에 한번씩 곱씹어야 온전히 이해가 가능할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호'라고 느낀 것은 이들이 겪은 일들을 말할 때 직접적인 묘사를 최대한 자제한다는 점(그래서 말이 길어질수도 있다). +나무를 보고 추리하는 부분이 특히 좋아서, 더 부각되지 않은게 아쉬울 정도.



그래서 나는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삐끗하는 음이 들리는지,
누가 해선 안 될 말을 꺼내는지, 이탈하는 음은 없는지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런 음은 들리지 않았다.
셋이 모두 동의했고 그건 좋은 일이었다.
사소한 내 불안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는 모두 준법적인 사람들이었다.
다들 일흔이 넘었지만 선량한 시민이었고, 분리수거도 잘하고,
임산부에게 버스 좌석도 양보하는 사람들이었다. - P15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 늙은이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 모든 건 변한단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들은 우리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건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믿는 것 같은 일이니까.
자기는 다를 거라 믿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내버려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옛날이 떠오르므로. - P84

니나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사랑 같은 건 없어, 그건 그냥 사회적 구조야.
헨리는 말하곤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생각하면 할수록
헨리 역시 모르긴 마찬가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간지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겠지.
나는 사랑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니나를 거의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사랑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요.
니나는 그렇게 말한다.
나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렇게나 확신에 차서 말을 한다.
나는 니나의 말을 듣는 게 좋다. - P146

사건의 냄새 때문에 나는 코가 간지러웠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이 문제를 모두 함께한다는 게 진정 도움이 되었다.
진부한 표현이 아니었다.
함께할수록 강해진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더라도,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우리는 함께할 때 강해진다.
나이도 많고 배짱도 많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이와 배짱. 이상한 날에 하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이기로 서약했다는 사실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예전에는 왜 이런 해결책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못 이상했다.
주님은 아신다. 내 인생에는 죽이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 P167

각자의 사연을 서로에게 짐 지우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여성들이 짐을 이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사연의 무게를 함께 견딘다.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말했다.
"우리는 승리할 거야." - P278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그냥 가지 왜 안 갔어요?"라고 물을 것이다.
당신들은 헨리 같은 사람과 살아본 적이 없잖아요.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처럼 결과를 감당할 게 아니라면, 누군가를 굳이 화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푸라기 한 올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고 한다.
별생각 없이 쓰는 표현이지만 그건 정말 존재하는 일이며 바로 그날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야유하며 말하는 바람에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 P360

"어떤 일들은 할 만한 가치가 있지." 그레이스가 말했다.
대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일을 넘어섰으면 좋겠어.
그 사건의 어떤 부분에도 머물지 말고.
그 일들은 나를 정의하지 못해. 두려움과 경험에 질식당해선 안 돼."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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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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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시'라는 표지에 쓰인 말 때문에 생전에 이어령이 쓴 시들을 묶었겠거니, 했다. 진지하고, 어려운 글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어령의 글은 역시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다. 그의 글은 내 무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수에서 비롯됐지만 고전(?)이 된 뽀빠이와 낙타, 지하실과 개구멍으로 보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 거북선의 승리를 관계론적 사고 덕분이라고 보는 것. 그가 말한대로 머리로 생각한 것을 얘기하는 '온리원의 사고'를 실현한 사람이 바로 이어령이 아닐까. 장의 구분을 두지 않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고, 기존에 알던 이야기도 그가 하면 새롭고 재밌다. 무엇보다 '국물문화'와 '게구멍'을 어떻게 한국적인 것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지 말이다. 성이 아니라 길이 필요하다는 그의 마지막 말은 현 시점에서 곱씹어볼만하다.



빨강색 연필로 토끼를 그린 톨스토이의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놀렸다.
"얘야, 세상에 빨간 토끼가 어디 있니?"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있어요."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이어령이 발견한 문학예술의 창조적 세계다. - P17

한마디로 건물이나 교량 같은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보기술은 상상을 초월한 만큼 발전한 데 비해
모슬렘 문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었다.
후세인을 체포하는 데 실패한 이라크전에서도
사람을 잡는 데 정밀하다는 유도탄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정보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도탄같이 기계를 다루는 하드웨어의 정보기술이요,
또 하나는 상대방의 문화나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전자를 기계 기술, 후자를 지식 기술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 P40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허허벌판에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벽 속에서는, 감옥이나 동굴에서처럼 살아갈 수 없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화가 생겨난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 P69

아이들은 자기 발에 안 맞는 어른 신발을 왜 굳이 신고 다니려고 하는 것일까.
잘못하면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걷기에도 거북한 신발을 질질 끌면서 왜 그렇게 흡족한 웃음을 지었던 것일까.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신발에는 자신의 작은 발로는 결코 다 채울 수 없는 헐렁한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이야말로 땅의 현실로는 다 채울 수 없는 하늘의 공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발을 잃어버린 가위눌림 같은 그런 악몽이 아니다.
미키마우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꿈과 창조적 사고를 그 공백 속에 숨겨두고 있다. - P106

···우리만 빼고 닫는 서랍의 쌍방향성, 그래서 ‘빼닫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학교를 ‘배움집‘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요
순수한 우리 생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거북선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그와 싸운 일본 배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배우려 하지 않는가.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다시 생각을 바꿔야 하는 시대가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 P127

도시의 경우, 서양은 체계화된 바둑판처럼 되어 있지만,
동양의 도시는 인간들을 싼다고 생각한다.
도시가 보자기처럼 사람들을 싼다.
그래서 거기에 집이 먼저 있고, 그리고 길이 생기게 된다.
서양은 길이 있은 다음 길거리에 집을 넣는다.
넣느냐 또는 싸느냐의 관계에서 볼 때, 서양은 넣는 문화고 우리는 싸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 P154

반찬은 밥의 텅 빈 맛 때문에, 그리고 밥은 반찬의 맵고 짠 자극적인 맛 때문에 싱싱하게 살아난다.
···밥 없이 김치만 먹어보면 그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너무 짜고 매워서 어떤 음식이 들어와도 입안이 얼얼하고 감각이 마비되고 만다.
시詩를 아는 사람만이 반복되는 운율의 맛-동질성 안에 있는 차이의 맛을 알 듯이,
밥을 아는 사람만이 김치 맛의 절묘한 운율을 듣고 맛볼 수 있다. - P186

한마디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보다 그 기계를 어디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에 더 많은 힘이 실려 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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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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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이 정치, 사업, 경제 분야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는

종종 '보호'나 '혜택'이라는 설명이 딸려 있었다.

인종적, 민족적 소수집다에 그런 법을 적용한다면

부당하고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될 것이다.

여성을 특별 대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자유를 빼앗는 새장인 경우가 매우 많다.

우리는 성별 분류가 채용 같은 근본적인 이해관계에 관련해 이루어지는 경우,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3p

수정 결정은 헌법 위반 사항을 매우 적절하게 보완해야 한다.

'차별이 없으면 가질 수 없었던' 기회나 혜택을 거부당한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법에 위배되는 것은 남성에게 제공하는 특별 교육 기회를

여성에게 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수정책은 '과거의 차별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이고

'미래의 유사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57p

레드베터가 경험한 것과 같은 임금 차는

단일 차별 건보다는 적대적 작업 환경 주장과 유사하다.

모건과 유사한 레드베터의 주장은 특정 임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별 행위가 축적되어 나타난 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레드베터는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축적된 차별을 고발했다.

···

각 행위가 일어난 시기는 고소 기한에 속하지 않지만,

굳이어는 매회 임금을 지불하면서 레드베터에게 점점 더 큰 손해를 안겨주었다.

69-70p

대법원도 결국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종교 자유 회복법을 적용함으로써

'협상이 이루어지는 경우 비수혜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어떤 전통도, 종교 자유 회복법에 따라 내린 어떤 이전 판결도

그 협상이 타인-즉 피임 보장 요건이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때는 종교에 근거한 배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116p

대법원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쟁점에 대해서도 정연한 사법적 검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의 선거 관리인과 본 논란의 모든 편에 선 대리인,

법원의 신의를 지키며 근면하게 의무를 다했음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29시간 내에 두 가지 중요한 의견을 내놓았다.

종합적으로 합법적 재검표가 비실용적이라는 대법원의 결론은

대법원의 판단이 시험받도록 하지 않겠다는 예언인 셈이다.

이처럼 검증받지 못한 예언이 미국 대통령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본인은 반대하는 바다.

155p

뉴헤이븐시의 비인증 결정으로

승진 후보들이 다시 한번 선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결함 있는 시험으로 지휘관이나 소방관에게

필요한 자질을 갖춘 후보를 배제한다면 더욱 유감일 것이다.

오늘 대법원은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오랫동안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한 집단은

'형식 면에서 공정하나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시험을 통해 차단당하는 일이 없으리라는

그릭스 재판의 약속을 깨는 선택이다.

···본인은 피항소인들이 '상당한 통계적 불균형'을 보여주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한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한다.

169p

이미 있던 것과 싸우는 사람, 긴즈버그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타계 1주기에 맞춰 출간된 그의 기록. 그녀는 재판의 다수 의견과 반대되는 소수 의견을 자주 내기도 했고, 다수 의견에 첨언한 동의 의견도 냈으며 대법관 이전 시절에도 수차례 의견서를 제출했다. 긴즈버그의 원칙은 단 하나다. '타고난 것에 대한 차별의 부재'. 주류에서 벗어난 집단도 사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선례도 없고, 헌법상 문제없는 판결이라도 자신의 원칙을 지켜 논리정연한 글을 작성한다.

제 1부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제 2부 임신출산의 자유

제 3부 선거권과 시민권

<리드 대 리드> 사건의 항소 의견서로 시작해 여러 조언자 의견서,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동의 의견으로 이루어진 3부의 구성. 긴즈버그는 몇 십년간 치열하게 법 앞에서 '시대의 차별'을 정의한다. '부분 출산 임신 중지 금지법'을 지지한 곤잘러스 대 카하트 소수의견, 장애인법의 법적 근거에 따라 판결난 옴스테드 대 L.C. 다수 의견, 버지니아 사관학교 사건은 특히 인상깊다. 차별의 정의에 대해 그만큼 심도높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대체로 수정헌법 5조 또는 14조 평등보호조항에 반한 차별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때로는 '약자 우대' 또는 '평등 보호'로 보이는 판결에 반대하기도 한다.

심지어 차별이 차별인지도 모르던 때, 정확히 그 사실을 집어내는 그의 시선은 올곧다.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해설과 함께 읽기 쉽도록 편집된 책은 안 그래도 논리정연한 그의 주장을 깔끔하게 되짚도록 만든다. 특히 3부에 등장하는 판례들의 경우 현재의 역차별 논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여러 판결들을 보고, 입법과 개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패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이걸 대체, 왜, 굳이, 설명해야 하나 싶은 상황이 많다. 긴즈버그는 얼마나 그런 상황을 많이 맞딱뜨렸을까. 그럼에도 긴즈버그는 '법'의 정의를 위해 말과 글로 지치지 않고 싸웠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 올바른 선례를 남기고자 한 그의 노력이 조금도 헛되지 않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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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 대구에서 맞선 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회사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히 괴롭히고 싶으 마음까지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치사한 방식으로 그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렸다.
그런 악취미들울 보고 있으면 유정은 인간의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그 나쁨도 그러데이션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두 사람, 경애와 상수. 어딘가 비어있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 만났고, 또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이들을 따라간다. 또한 늘 둘과 함께 있는 은총, 셋의 이야기가 천천히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진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 또한 이야기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 자자고?
-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 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 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아직 나는 제대로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 두번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거나 서서히 연락이 끊겨 보지 않는 그런 이유와는 달리 영영 볼 수 없을만큼 멀리 간 사람이. 은총을 잃은 두 사람에게 은총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조용하고도 절절히 다가와서 모두 짐작할 수 없지만 나는 슬퍼졌다.


  현실에는 불안의 전조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불행이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도 불안의 전조는 등장한다. '공'이 들어가는 말장난으로 시작하는 상수의 이름이, 과장보니 팀장대리니 구구절절한 이름으로 나타는 회사 안의 수많은 관계들이. 모든 피조들은 각자 그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뿐.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생의 통제할 수 없는 손에 있어서 그 '사이의 감각'은 발현되지 않을까.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로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메뉴얼이에요.


 우리는 왜 이렇게 주제넘게 서로를 궁금해할까. 나에게 설명시키고 이해하길 바랄까. 박경애와 공상수에게 그렇게 무신경하고 잔인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찔렸다. 나는 쉽게 상처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올바른 메뉴얼이 있고 모두가 그걸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하지만 늘 생각하는 지점이다.



경애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다.
그러면 경애는 그 순간, "오두막이 무너진 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 다친 줄도 모르고 웃고"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자기가 원하는 필기구를 정확히 적어
골머리를 앓게 하는 상수가 없고 갑자기 한팀이 되어서 필요 이상으로 연대감을 요구하는 상수가 없고
전철을 타고 가면서 피조라는 아이디의 어린 경애를 상상하는 상수가,
경애가 손을 맞잡았을 때 조용히 마음을 떨던 상수가 없을 것이었다.
상수는 그간 수많은 수학선생들의 관심을 받아온 것처럼, 늘 성립하는 상수가 아니라
이제 경애의 삶에 없는 공동, 제로, 허수가 되는 셈이었다. 


  은총과 산주와 헤어진, 또는 헤어지는 과정인 경애와 그리고 언니를 떠나보내는, 또는 떠나보내는 중인 상수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까. 굳이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상수가 형의 세계와 결별하려고 노력했듯이 경애가 모든 무례함에도 자리를 지켜내며 담배를 피웠듯이 그렇게 조금은 달라지고 또 조금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비어가는 피조에게, 은총을.  



물론 그런 호의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애를 좀 아는 직원들이 더더욱 경애가 있다는 것을 고역으로 여기며 외면한 채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찬 기운이란 어떤 공격성이나 냉소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불가피한 온도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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