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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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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영국의 소설가인 책의 주인공이 글쓰기 강좌를 위해 몇 주간 아테네로 떠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테네라는 배경 외에 그 이전과 이후에 속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놀랄만큼 화자는, 이야기 내내 별말이 없다. 때때로 화자의 반박이, 현실이 잠시 치고 들어오지만 이내 타자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첫인상과 다르게 눈살 찌푸려졌던 비행기 옆자리 남자로 시작해 동료, 편집자, 수강생 등 그들의 이야기에 그저 귀기울일 뿐이다.

중반부쯤 책을 읽었을 때의 인상은 어쨌거나 내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르는 소설 (그것도 장편)이나 묘사가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서사로 몰입도를 높이지는 않는다. 중심이 없거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에 별로 끌리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로드무비 같았다. 말하는 이들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전달되는 부분이 적고 독백같기도 해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하다.

후반부까지 일관되게 지속되는 이러한 흐름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화자가 된 것 처럼 그들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그저 듣게 (아니 읽게) 된다. 어디서 태어났으며 직업은 무엇이고 현재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상대의 상당히 부분적인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뚜렷한 답이 없는 자신만의 윤곽을 완성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아내는 10대 때 만나서 약혼했다.
한 번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지만, 딱 한 번 말다툼을 했을 때 둘 사이의 모든 것이 깨지고 말았다.
아이는 둘이었고 부부는 함께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아테네 근교에 저택을 마련했고, 런던에 아파트가 있고, 제네바에도 집이 한 채 있었다.
말을 샀고, 스키 여행을 다녔으며, 에게해에 정박해둔 약 12미터짜리 요트도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젊었고, 덕분에 재산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거라고,
삶이란 그렇게 확장되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삶이 더 커질 때마다 그것을 담기 위해 이전의 그릇들을 하나씩 깨나갔다. - P17

그 만남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물질적인, 지상을 벗어난 곳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물건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의 차이도 드러나지 않았다. 옆자리 남자의 물질적인 실체, 하늘 위에서는 그렇게 가벼워 보였던 그 실체가 지상에서는 구체화되어 있었고, 그 결과 그가 더 낯설어 보였다. 마치 그를 만나는 상황 자체가 일종의 구속이 되는 것처럼. - P71

가끔은 제가 베를린에서 돌아와 느꼈던 피로감이 사실은, 그 여성들 모두가 느끼고 있던 집단적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여자들 본인은 피로감을 느끼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저한테 떠넘긴 게 아닐까 하고요.
···신호등 같은 데 걸려서 달리기를 멈춰야 할 때면, 새하얗고 커다란 운동화를 신은 채 제자리에서 계속 뛰다가, 신호가 바뀌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면 고무 밑창을 댄 굽 없는 신발을 신었는데, 아주 실용적이면서 아주 못생긴 신발이었죠.그 여자들 몸에서 제일 덜 우아한 게 바로 그 신발이었어요. - P135

사람들이 본인들이라면 절대 꿈도 꾸지 않을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열심히 권하는 것이 재미있었다.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가장 친절한 사람들,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도그의 관심사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속박이 심한 곳, 탈출이란 것이 현실이 아니라 그저 가끔씩 꿈꿔보는 그런 것에 불과한 자리에서 그에게 조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88

그녀 본인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런 식으로 솔직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깨고 바닥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들이 바로 다음 순간 대놓고 그녀를 모욕하곤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그렇게 서로 솔직해지는 순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어떤 종류의 가식, 마치 실제로는 단지 그 순간에 그녀를 이용하고 싶을 뿐인 어떤 남자가, 마치 그녀를 온전히 원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라고 했다. 그녀 본인도 기꺼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할 때가 있지만, 서로 그런 의도를 인정한 후에만 그렇게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 P218

하지만 스타브로 씨의 어미 개, 덩치카 크고 비호감인 그 개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어요. 그래서 ‘안 되겠어요. 저희는 개를 키울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죠. 아무튼 개를 보여준 건 감사하다고 말했고, 그는 그대로 돌아갔어요. 아이들은 아주 실망했죠. ‘엄마는 늘 일을 망치기만해‘라고 아들이 말하더군요. 바로 그 순간, 강아지가 아이들에게 부렸던 마법이 완전히 풀렸을 때 저도 이성을 되찾았고, 그와 함께 현실 감각도 되돌아왔어요. 그 느낌이 어찌나 냉혹하고 강력하던지 우리가 서 있는 집의 지붕이 날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 P251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느새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가들의 작품,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았던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요약이 가능했다. 심지어 그녀가 신처럼 모시는 베케트의 작품들도 의미 없음이라는 단어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본인도 그것이 일종의 문화병임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 병은 자신의 내면을 장악해 심지어 스스로에 대해서도 요약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차피 앤의 삶이라는 표현으로 다 정리가 될 텐데,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실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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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한길그레이트북스 161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한길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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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은 모두 공적으로 발생했을 때 분명히 현실적이었다.

여기에는 비밀이나 신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모두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간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파국이 갑작스레 모든 사물과 사람을 덮쳤지만, 이전까지는 실체가 아니라

모든 공적인 대변자들의 매우 효과적인 빈말과 허튼 소리가 파국을 은폐하는 기능을 했다.

···그런데 공공영역이 "신뢰성 상실"과 "보이지 않는 통치", 그리고 존재하는 것을 노출시키지 않고

은폐하는 언어, 오래된 진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진실을 무의미한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는 도덕적인 또는 다른 형태의 권고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될 때 어두움은 찾아왔다. 60-61p

한나 아렌트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 어렵다. 정리해놓은 요약본이나 개념만 볼 때는 오히려 뚜렷하게 다가오는데 막상 그녀의 저술을 읽고 있으면 방대한 지식의 양과 영역, 그리고 수많은 부사에 침몰당하는 기분이 든다. 단순히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가 남긴 수많은 표현들은 주술이 일치가 되나 싶을만큼 어렵고 길다. 그래서 이 책 자체도 한 번 읽은 자체만으로 오롯이 이해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녀의 책을 또 읽고 있을 나의 다음을 위해 남겨놓는 요약본 정도로 하겠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유럽국가의 어두운 시대(1차 세계대전 전후)를 살아낸 사람들이지만 한나 아렌트와 역자가 모두 언급하듯 어두운 시대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과의 우정, 그들의 정치적 사유, 그리고 휴마니타스(인간애)에 대해 전기에 가까운 평론, 에세이, 강연 등을 통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의미하는 휴마니타스는 "자신의 삶과 인격을 공공영역으로의 모헝에 바치면서 획득할 수 있는 것(161p)"으로 정의되며 주관적인 생각이나 사적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닌, 책임을 증명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나 아렌트의 책인만큼,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유대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아렌트가 느끼기에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특히 발터 베냐민의 생의 마지막에 대한 묘사는 19c 유대계 지식인이 처한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어두운 시대를 살아낸 그들에게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열다섯명의 인물을 소개하지만, 사실 전기를 가장한 그녀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이를 고려해 공공영역에서의 정치적 사유, 예술과 문학, 그리고 우정과 휴마니타스라는 세가지 분류로 인물들의 설명을 구분해서 살펴봤다. 물론 겹치는 영역이 아주 많아서 뚜렷한 구분은 아니지만 읽는 나의 편의를 위해서 카테고리화가 필요했다.

그는 강제력이나 증거로 누군가 자신을 강요하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강요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추론이나 궤변 또는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사유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폭정이

정통 학설의 고수보다 자유에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일관된 체계를 지닌 역사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은 채

자신을 알고 있는 바대로 인식의 효모(fermenta cognitionis)를 세상에 유포시켰습니다. 73p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과 행위-사유의 정확한 연결을 언급했던 레싱에 관한 글로 책은 시작한다. 결론보다는 사유 자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히틀러 시대의 정신적 망명은 시대의식을 상실한 모습을 다소 띄고 있다는 점까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우정의 정치적 중요성은 뜻밖의 표현으로 그 특유의 인간성은 대화 안에서 발현되며 진리가 존재하는 것은 대화 가능성에 있어 그닥 필요한 점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런가 하면 친구는 될 수 있어도 형제는 아니라는 말로 그의 사유에서와 자신의 차이를 구분짓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의 수확은 2장에서 나온 로자 룩셈부르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었는데 네틀이 쓴 그녀의 전기를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전기의 위험성으로 시작해 "네틀은 로자와 같은 능력과 기회를 가진 남성에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로자에게 그것을 부여하지 않았(123p)"다고 표현하면서 잘못된 표현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단순히 정의내리기에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현실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한 사람에 불과했던 그녀의 삶은 공적 자유의 절대성 필요성을 다시 한번 주의시킨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성인전은 온 세계가 왜 이분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성인전은 '비난받지' 않기 위하여 교회를 포함한 세계 일반의 기준이

예수의 설교에 포함된 판단이나 행동의 원칙과 대립되는 것을 어느정도 교묘하게 피하면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이분에 관한 위대하고 대담한 이야기들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

나는 이들 가운데 일부를 기억하여 명료하게 드러내고 싶다. 144-145p

그런가 하면 (글을 쓴 시점에서) 최근의 교황이던 요한 23세, 론칼리에 대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 이가 선출되어 대담한 단순성을 선보였다고 표현한다. 그녀의 특수한 유대적 기질을 생각해보아도 이는 매우 거침없는 표현이다. 그의 덕목에 대한 존경은 표하되, 성서적 믿음의 천명과 공공영역에서 기독교적 삶이 출현했을 때 보이는 위험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의 신앙에 대해서도 겸손보다는 자기확신이라고 꿰뚫어보는 그녀라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도 써내지 않았나 싶다.

전 지구의 파멸이라는 공포에 기초를 둔 소극적 연대는 명료하지 않지만

적잖이 중요한 이해에 그 대응 방안을 지니고 있다.

즉 인류의 연대는 정치적 책임을 동반할 경우에만 그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관념에 따라 개인적 '죄책'과 관계없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모든 공적인 문제에 책임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부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하여 우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전 지구적 책임상황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시민으로서 책임지기 때문이다.

인류의 연대는 결국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일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부담에 대한 공통된 반발은 정치적 무감각과 고립주의적 민족주의,

즉 인간주의의 회복에 대한 열정이나 욕구라기보다 현존하는 모든 권력에 대한 필사적인 저항이다. 176p

친구이자 스승인 카를 야스퍼스가 평화상을 수여받은 뒤의 연설문에서는 공공영역에서 찬사의 의미를 밝히며 대놓고 마음껏 찬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정치문제란 너무 중요해서 정치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독일 속의 '휴마니타스'를 지키기 위해 지켜야 할 자세를 언급한다. '세계시민'에 대해서, 단일주권을 보유한 세계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오히려 이건 위험하다) 획일성과는 다른, 전세계 인류의 동일함을 통한 인류의 세계역사 참여를 강조한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어떤 것도 불가하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잊고 있거나, 모르는체 하는게 분명한데, 그런 자세는 결국 무지에 불과하므로 늘 생각해야 할 정의라고 본다.

확실히 그는 이 마지막 것(자기 품성의 근본적 요구조건)에 대해서 한 번도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이는 아마도 그가 명백하게 개인적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특징적으로 유보하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자체는 우리 시대의 문제다. 그러나 개개인의 문제들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있고,

심지어 거의 허용되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허용되지도 않는다.

개인의 사적인 관심사는 신들에게 웃음거리의 주제가 되고 있으며,

신들은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 226p

1940년대 자신들의 오랜 신념에 등을 돌린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신념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았던 사람들은 소수였다.

그들은 역사적 성공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채 대상(열차)만을 바꾸었을 뿐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열차는 잘못되었으며, 그들은 자본주의나 프로이트주의

또는 약간 세련된 마르크스주의의 열차, 아니면 정제된 세 가지 혼합물의 열차로 바꾸었다.

오든은 대신 기독교인이 되었다.

즉 그는 역사라는 열차를 완전히 떠났다. 494p

헤르만 보르흐, 발터 베냐민, 브레톨트 브레히트 등 이후 이어지는 소설가, 수필가, 시인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개인의 사적인 관심사보다 미적인 것을 윤리와 지식으로 다룬 태도에는 긍정적이지만 왜 문학은 불충분한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언급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이미 저속한 것이다. 생애에 있어 분명히 지적할 점은 하되, 그들의 저작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순수하게 바라본다는게 조금 놀랍기도 하다.

랜달 쟈넬에 대해서는, 세계를 정면으로 맞은 시인으로 표현하며 시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분석하는 것에 가깝다. 반소설anti-novel을 들고 나온 나탈리 사로트는 시대와 친밀한 인물을 등장시킨 신소설의 선두주자로보면서 그동안의 잘못된 평가를 지적한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위스턴 휴 오든의 경우 허영심이 너무 없던 말년의 빈곤을 묘사하면서 어느정도의 애정과 함께 그의 시가 가지는 번역불가능성에서 발견하는 위대성에 대한 존중을 표현한다.

이렇듯 관습적인 규범을 멸시하면서 냉정하게 대처하는, "지극히 탈정치적인 시인들(492p)"에 대해 그녀는 찬사와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그녀에게 찬사란 '좋은 것'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가장 불만족 스러운 모든 것에 맞서 이야기하고 상처를 빨아들이려는' 것이다. 이는 첫번째 남편의 사촌으로 만나 두번재 남편과도 친구를 먹었던(...) 발터 베냐민을 이야기할 때도 적용되는 태도다. 그가 받고 있는 '사후의 명성'을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보상(273p)"으로 표현하며 그를 주시했던 불행, '작은 곱사등이'를 설명한다. 결국 책에 등장하는 모두가 받아들였건 몰랐건 느껴야만 했던 시대의 무게가 아니었을가. 프랑스 정부에서 환영받지 못했음에도 파리의 경험을 소중히 했던 그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따라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례는 위대한 시인이면서 극작가와 병행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시인들과 세계를 공유하려는 모든 시민에 중요하다.

우리는 이 문제를 문학 분야에만 맡길 수 없다.

이 문제는 정치학자들의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첫째, 괴테는 일반적으로 옳았으며 평범한 사람들보다 시인들로부터 더 많이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시인들도 중대한 죄를 범할 수 있으므로 죄책감과 책임감이라는 부담을 완전히 짊어져야 한다.

둘째, 그들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 분명하게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즉 좋은 시행을 쓰는 능력은 시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능력을 부여받았어도 그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363p

자만과 명성이 아닌, 재능의 객관적 표출을 원했다고 평가하는 브레톨트 브레히트는 그녀의 짐작대로 만년에 동베를린에 정착해 눈앞의 공산주의를 보고나서야 상실감을 깨달았을까. 시인과 예술가도 죄책감과 책임감이라는 부담을 완전히 짊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망명 시절 나치 독일에 관한 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평가를 대부분 유지한다. 그의 가장 근원적인 정념은 '동정'이었으나 로베스피에르나 레닌처럼 단지 동정심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선해질 수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진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덧붙여진 모욕과 고통'을 어느정도 실천적으로 본 사람이라고 본다. 민중의 시인이길 바랐던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면서도, 용서는 사람에 대한 것이고 어떤 소행에 관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이러한 사유는 단독으로 임무를 설정할 수 있으며 '문제'를 취급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실제로 항상 자신이 특별히 점유한 특별한 무엇,

더 정확히 표현하여 자신을 특별하게 분리시킨 무엇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유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사유는 부단히 활동적이고, 심지어 오솔길 자체를 놓는 것도 이전에 드러났으며,

그것으로 인도된 목표에 도달하기보다 오히려 사유의 새로운 차원을 개방하는 데 기여한다.441p

러시아 출신 유대인이라는 '혈통' 자체가 정치적인 문제가 되던 곳에서 발데마르 구리안이 보여준 묵직한 태도와 용감함에 그녀는 찬사를 보낸다. 정치를 일종의 '구체화'로 인식하고 사람들의 드라마를 듣고자 했던 그의 태도에도.하에데거 또한 탄생 80주년 기념 원고를 통해 철학자 자체의 모습보다 교수로서의 '공적인 삶'에 충실했음을 언급한다. '대학에서 따분함의 대양(438p);으로 익사하고 있었던 철학의 영역을 끌어올린 그가 발휘한 사유의 영향력과 형이상학의 종말, '학문의 대상과 사유의 대상'을 구별하는 태도가 그녀에게는 인상깊었던 것 같다. 사유는 경이에서 발전해 직접 자각되는 동안 멀리 있는 것으로 의지의 본질은 사유와 대립한다는 개념 정도로 한나 아렌트의 설명을 이해했다.

본인은 평론가가 아니라고 하지만, 각 인물들의 생애와 작품을 바라보는 한나 아렌트의 자세는 누구보다도 치밀하다. 굉장히 철학적이여서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며 기본적으로 한 문장이 굉장히 긴 편이다. 사실 그녀가 쓴 글이 대부분 그렇다(...) 번역의 문제라기 보다는 문장 구조 자체에 이상이 없어서 찬찬히 뜯어봐도 복잡하다. 부사가 많은게 문장 구조의 특징이기도 한데 표현 자체는 새로워서 재밌는 것들이 많다. '동시성의 초시간성' 같은. 특히 '단지', '오히려' 같은 부사도 굉장히 많이 등장하며 "가장 폐해가 적었던 과오", "마지못한 시인", "거짓말을 파는 시장"으로 묘사된 할리우드처럼 독특한 표현들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책들에 비하면 챕터 하나하나의 길이가 짧은 편이라 흐름이 끊겨도 넘길 수 있고 때때로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로 숨쉴틈(...)이 있다는 점, 한나 아렌트가 동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어떤 태도를 지녔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기 수월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그녀의 분명한 애정 또는 존중에도 불구하고 이게 긍정적인 평가인지 부정적인 평가인지 헷갈리는 문단들을 펼쳐질 때도 많다. 그녀의 유대인성과 '공적인 영역'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운 철학적 개념과 문학 평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느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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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페미니즘 My Little Library 8
박준우 지음 / 한길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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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녹음한 작품으로는 1997년에 발표된 앨범 <A Story>도 있는데,

이 앨범에는 당시 비틀스 팬들에게 들었던 야유와 비난을 언급하는

<Yes, I'm a Witch>도 수록되어 있다.

작품은 "너희들이 이야기하듯 나는 죽여야 하는 마녀가 맞다.

난 당신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안 쓴다.

내 목소리는 진실이며 당신들을 위해 죽지 않는다"라는 가사로 채워져 있다.

43p

나는 참, 팝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이다. 저자가 이쯤이면 알겠지, 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조차도 사실 잘 모른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노래 중에 아는게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전해졌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팝의 메시지는 페미니즘, 다양성, 상상력, 관용에 대한 것이다. 재즈부터 자넷 잭슨, 힙합과 마돈나, 비욘세까지. 팝의 가사와 역사에 그들이 늘 전달하고자 했던 페미니즘,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페미니즘에 대해 애야기한다. 샤니아 트웨인이 20c 부터 미러링이라는 방법을 통해 맨스플레인을 비판했다는 점을 비롯해서 꽤 오래전부터 남성중심의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가수들이 있었다는 점이 나는 무척이나 새롭고 흥미롭게 여겨졌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연 여성의 재력이 현실적인지,

또는 애인을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지를 묻는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위의 작품은 이성애 관계에 한정된 가사다.

따라서 이성애를 중심으로 관계를 상정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야기할 주제는 이성애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구조적 문제다.

98p

이 부분을 읽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마치 '여경'이 어떻게 저렇게 범인을 때려잡냐며 액션/오락 영화를 깎아내리던 최근의 일부 평가가 떠올라서이다.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최 작품을 왜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느냔 말이다. 온갖 판타지부터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등장하는 판국에 가당키나 한 비난인가. 흠집을 찾아내려고, '페미니즘' 안에서 뭐뭐의 한계에 부딪힌다는 말이 참 많다.

유독 여성이 말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가능성보다 한계를 찾으려는 시도가 많다. 팝도 마찬가지. 정체성에 대한 지적부터 이성에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있다는 지적까지. 그러나, 이는 그 강도가 어찌됐든 필요한 논의다. 한계를 제기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너무 이르고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해야할 뿐. 이외에도 인종차별과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까지 고발하는 다양한 범주의 팝들을 저자는 소개한다.

물론 팝 음악시장은 굉장히 상업적이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 시스템화되어 있으며 작품 하나를 만들 때도 각종 요소를 배치한다.

하지만 성숙한 팝 음악시장은 인간을 그러한 산업구조의 일부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가수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리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모습을 많이 고민하는 것이

팝 음악시장의 매력이다.

퍼포머performer의 역할도 단순히 누군가 만들어준 것을 프론트맨으로서 선보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책임의식을 지닌 채 대중 앞에 서서 스스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팝 음악가다.

69p

'화두'를 던지는 마돈나. 우리가 필요한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다. 소말리아 출신 난민인 케이난의 소개도 나에게는 그 자체로 강렬했고 감수성의 부족으로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말했던 아티스트(비욘세)가 새로운 아이콘으로 페미니즘을 알아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보여진다는 점이 단지 그것만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Beychella(코첼라 페스티벌-비욘세)를 보러 가야겠다.

주얼의 데뷔 앨범은 대부분 자작곡으로 채워져 있다.

기타 연주가 바탕이 된 푸크 록 작품들은 그 의미와 분위기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특히 현실적인 가사를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은 포크만이 지닐 수 있는 정서다.

좋은 작품이 미디어의 기획이 아닌 대중의 힘으로 성공했기에

지금도 <Pieces of You>는 큰 의미를 지닌다.

앨범 수록곡 전체의 가사를 천천히 음미하면서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앨범 커버에 적혀 있는 '우리가 인간의 자연이라고부르는 것은 실제로 인간의 습관이다'

what we call human nature in actually is human habit라는 문구가 다시금 눈에 들어올 것이다.

126p

최고의 반전은 저자의 전공이 민속학(!)이라는 점 아닐까. 대부분의 곡들은 미국 시장 안에서의 팝을 다루지만 후반부에 아시아권 곡들과 아티스드도 몇몇 등장한다. 타이완의 '채의림'이라던지. 저자가 어느정도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팝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함께 넓은 범위의 지식들을 잘 알고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언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욘세는 성공한 팝 스타로서 페미니즘을 더욱 많은 이에게 알렸다.

혹자는 비욘세의 페미니즘이 힙하고 쿨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페미니즘은 그렇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비욘세의 페미니즘이 힙하고 쿨하고, 심지어 '소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페미니즘은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며 더 많은 이에게 노출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또는 어떤 형태의 페미니즘만이 옳다고 볼 수 없다.

비욘세가 지금까지 보여준 페미니즘은 중요하고,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190p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욘세 파트에 등장했던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자넬 모네를 보고 간만에(...) 참 반가웠는데 무려 배우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니 당신 커리어 대단...b 그의 소개에서도 저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이자 팝스타로서 자연스럽게 임파워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들의 이상적인 역할이라고 본다. 결국, '연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흐름들이 적극적으로,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인상깊었던 점은 저자가 '노래'나 '곡'이 아닌 "작품"으로 지칭한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모든 곡들의 역사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저자의 진지한 태도가 느껴지는 듯 했고. 그럼에도 팝에 대한 문외한이다 보니 아무래도 단편적인 정보가 대부분인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노래 리스트가 부록으로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쭉 들으면서 다시한번 책을 정독할 수 있도록. 그리고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옆면에서 종이가 일어난다는 제본 자체의 거친 느낌이 있어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담백한 팝 페미니즘의 입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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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책할까요 - 내 인생에 들어온 네 마리 강아지
임정아 지음, 낭소(이은혜) 그림 / 한길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강아지 네 마리가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성가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강아지들과 함께 웃고, 울고, 뒹굴며 지내는,

성가셔 죽겠지만 그 성가심을 기꺼이 껴안으면서 날이면 날마다 좌충우돌하며

강아지 일기를 써 나가고 있는 모든 이웃의 이야기다.

또한 평생을 혹은 아주 짧은 순간을 함께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후

그 막막하고 아득한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나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8-9p)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귀여운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 정도의 애정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겁먹을 때도 많다. 물론 그 이유의 팔할 이상은 과거에 운 나쁘게도 여러번 마주친 제 강아지가 어딜 가나 우선인 무개념 견주들 탓이다. 그 후로 알아서 피하다 보니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한 강아지와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묘한 따뜻함을 채운다. 그것도 오랜 시간 함께한 강아지들을 보낸, 남겨진 사람이 쓰는 기억.

순종파인 까미도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대문을 나서면

계곡길 반대쪽으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내가 자신을 목욕시킬 때 고무장갑을 낀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반대쪽으로 올라가봤자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돌담 아래만 왔다 갔다 하다가

"까미야, 까미야"하고 내가 큰 소리로 두 번만 부르면 마지못해 느릿느릿 내려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74-75p)

저자는 이런 면에서 나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사람이다. 국어선생님으로 일하면서 강아지를 몇마리씩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잠깐씩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런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 애정을 준 첫 강아지 까미부터 샘이, 바람이, 별이, 그리고 곁을 스쳐간 하늘이나 다른 강아지들까지. 오랜 기간 서로를 애정으로 지켜온 강아지와 견주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기억들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애정에 서서히 빠져든다.

까미를 보내고 얻은 슬픔과 상실감이 큰 만큼 새롭게 깨우친 사랑의 깊이 또한 크고 깊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비밀인 것 같다.

끝없는 상처와 고통의 연속인데도 인생은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푸는 비밀의 열쇠,

무심한 바람결에 어디선가 휙 스쳐오는 꽃향기 같은 것.

그래서 삶은 아프고도 아름답다.(115p)

개도 생명이라서 그네들의 작은 행동들이 한번도 가까이서 살펴본적 없는 나에게는 기특하고 신기했다. 새끼를 나은 샘이 주인이 계속 새끼들을 확인하자 보이지 않는 곳에 물어다놓았던 샘이의 행동이나 주인 목소리를 거부하지 못했던 어느 강아지, 새끼를 낳겠다고 따뜻한 방안으로 문살을 뚫고 들어간 까미의 모습까지 개보다 사람이 낫다, 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거실로 나가서 자게 되었을까요?

이제 그 아이들은 침대 발치가 아니라 침대 위로 올라오겠다고

밤마다 침대를 낑낑, 캉캉, 박박 긁어대며 시위를 벌이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시위대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133-134p)

책의 모든 내용은 강아지와 함께한 저자의 추억에 고스란히 초점을 맞춘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과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애정과 슬픔으로 가득한 동시에 솔직한 고백도 망설이지 않는다. 저자가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과 잘못했던 행동들까지. 아무래도 오래 전부터 강아지를 길러오다 보니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용납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애써 숨기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짖음 방지기 목줄과 성대 제거 수술까지 고민했던 모습들까지 털어놓는 그녀의 후회조차 좌충우돌 많았던 그들의 시간들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들과 산책하려고 목줄을 찾으면 어느 틈에 알아차린 바람이는

현관으로 가서 1초쯤 기다리다가 나를 향해 짖기 시작한다.

나는 세 마리 강아지의 목줄 챙기랴, 휴지와 비닐봉지 챙기랴,

모자 쓰고 휴대전화까지 챙기랴 부산스러운데 바람이는 그 틈을 못 참고

"산책 안 갈 거야?"라며 발을 한 번 구르고는 캉 하고 신호를 보낸다.

샘이와 별이는 엄마가 산책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기에 짖지 않고 기다리는데

그걸 알 리 없는 앞 못 보는 바람이에게 '기다림'이라는 것은 없었다. (195p)

그리고 놀랄만큼 순수한 강아지들과 별개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습이 나올 때는 철렁한다. 믿고 맡겼던 하늘이의 새주인이 이빨이 날 시기 동안 허브를 뜯은 행동들로 불만을 표하다가 이내 시골로 보내버렸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그럼에도 저자의 가족들부터 팔랑이 엄마, 그녀가 맡은 학생들까지 따뜻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특히 바람이의 시체를 저자 대신 여동생이 집으로 데려오고 그 조카가 바람이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들은 뭉클했다. 이토록 순수한 사람들을 만난 강아지들도 그리고 주인들도 참으로 행운인 시간이었다.

운식이는 그런 아이였다.

20년도 더 지난 그 일화를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소년이 자라 아름다운 청년이 된 지금,

자기 집 냉동실에 있는 이모네 죽은 강아지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유쾌한 어조, 멋진 음성으로.

'바람아, 안녕?'이라고.(262p)

덧붙이자면, 영월과 단양처럼 시골에서 지냈던 작은 일상들이 읽는 나에게도 정말 소중하게 다가온다. 특히 초반에 시골에서 까미와 홀로 지냈던 작가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고 영화같이 그려졌는데 공중보건의였던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죽음까지. 나는 차마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개나리색의 표지와 몽글몽글한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책의 풍경들과 마주할 때마다 문득 기억날 것 같다.




+)

이건 그냥 덧붙이는 건데 낭소 작가 삽화가 정말 귀엽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동화책 같은 느낌.

특히 삼총사 그림은 푸들인 아이들 털 느낌이 고대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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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 이수네 집 와글와글 행복 탐험기
김나윤 지음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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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다.

욕심내지 말라고, 나누라고, 싸우지 말라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어질러놓은 것을 정리하고, 인사 똑바로 하고, 소리 지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른인 나도 세상 밖으로 나가면 잘못하고 있다.

나도 못하는 이 이려운 것들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말하지 않아도 차츰차츰 알게 되는 것들은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17p

그저 흔한 육아서라고 생각했다. 방송분을 전혀 본 적이 없어서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다고 하니 똑똑한 아이를 기른 양육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젊고, 아이도 없는 나는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짧은 글로 이루어져 다소 두서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감정, 행복과 외로움, 소룩도에서의 경험, 제주도의 자연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젊은 시절의 고생, 그리고 저자의 엄마에 대한 느낌까지. 솔직하게 담아낸 글들이 어떤 예쁜 포장같은 글들보다 짙게 다가왔다.

잠시 말없이 레미콘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이수의 뒷모습은 참으로 작아 보였다.

난 읽던 책을 이어 보려고 다시 책장을 펼치는데 갑자기 이수가 입을 열었다.

"엄마! 그러면 지구도 사람이 굳지 말라고 돌아가는 거야?"

44p

대다수의 우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해왔을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이러지 말아야지. 내가 이렇게 싫어했던 행동과 말들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그러나 그걸 기억하고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역지사지의 논리는 내가 어른과 부모라는 강자의 위치로 갔을 때 당연히 희미한 기억들로도 남기 어렵다. 이수 엄마는 그것들을 최대한 기억하고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슈퍼맘처럼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눈높이를 맞추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려 늘 생각한다. 이런 점들이 정말 인상깊었다.

이수야, 엄마는 이수가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점에 대해 조금 슬픈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너의 인사가 누군가에겐 하루 동안 행복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 일이거든.

그 작은 일 하나가 큰 선물이 되는 거야.

친구들이 매일매일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상했을지도 몰라.

엄마라도 그럴 것 같아.

그렇지만 그것으로 네가 금방 변했어.

반대로 친구들이 변화가 된다면 어떨까.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너에겐 큰 경험이 될 것 같아.

너 혼자라 할지라도, 좋은 일이라면 네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보는 거야.

그러면 세상도 바뀔 수가 있어. 아주 천천히 변화가 오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틀림없이 넌 후회하지 않을 거야."

111p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4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만 들어도 정말 쉽지 않다. 책에 묘사된 것의 몇천배는 더 힘들고 아팠을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모습을 이렇게 담았지만 말미에 마음의 병이 있다는 점까지 고백할 만큼. 그러나 그것들까지 저자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저렇게 어려운 말들을 다 이해할까,하고 나는 참 내 입장으로만 생각했다. 아이들은 최소한 그 느낌을 이해한다. 그리고 어른보다 더 따뜻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이렇게 빨리 만나서 이들 가족은 참 행운이고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엄마, 얼마 전에 학교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친구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굉장한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것저것 자랑을 하는데 부럽더라구.

그렇게 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상상해 봤어.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좋은 우리 엄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큰 집도 소용없다는 생각 말이야.

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큰 집보단 내 마음에 큰 집을 짓고 살 거야."

181p

남편과 1년이나 떨어져 네아이를 혼자 키울 결심을 하다니 인간적으로 존경심도 들 정도인데 이 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말들도 참 따뜻하다. 물론 결혼 후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아내를 존중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당신이 리더라고 해준다니. 다름을 이렇게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정말 결혼하고 싶다(...) 갑자기 유정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예전의 입양 약속을 상기시켜주고, 말을 잘못하는거같다고하자 수화를 배우면 되겠다는 답변에서 또 한번 울컥했다.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이들은 더 잘 자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화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수가 유치원에서 두달 간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이년간 괴로워 했다는 단락을 읽을 때쯤 화가 나고 안타까워서 울컥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이 있더라도 보듬어줄 누군가가 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어렵고 비현실적인 꿈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수, 우태, 유정, 유담이도 모두 지금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엄마를 꺼내어 생각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져.

엄마가 되는 것은 쉽다지만 아이가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웃음 짓게 하는 엄마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엄마를 하루에 천 번을 생각해도 지겹지 않아.

언제나 나를 웃게 해줘. 난 엄마가 정말 좋아.

275p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고, 나의 행동들을 이해해주고 모르는 것들은 알려주는, 내 첫 책을 함께 만들어주고 천 권이나 인쇄해준 부모님이 있으니깐. 사실은 저자처럼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은 세상이 처음인데 오히려 더 유연하고 때로는 곧다. 마지막에 실린 편지와 에필로그에서 진짜 펑펑 울고 말았다. 이수의 말들 중 그 어느것 하나 그냥 흘려보낼게 없었지만, 그래서 자주 눈시울이 시큰했지만 엄마에게 보낸 편지는 정말... 얘는 어떻게 이렇게 예쁜 말을 할까. 이수의 말로 인해 부끄러웠고, 감사했고, 슬펐고, 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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