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 이수네 집 와글와글 행복 탐험기
김나윤 지음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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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다.

욕심내지 말라고, 나누라고, 싸우지 말라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어질러놓은 것을 정리하고, 인사 똑바로 하고, 소리 지르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른인 나도 세상 밖으로 나가면 잘못하고 있다.

나도 못하는 이 이려운 것들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말하지 않아도 차츰차츰 알게 되는 것들은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17p

그저 흔한 육아서라고 생각했다. 방송분을 전혀 본 적이 없어서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다고 하니 똑똑한 아이를 기른 양육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젊고, 아이도 없는 나는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짧은 글로 이루어져 다소 두서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감정, 행복과 외로움, 소룩도에서의 경험, 제주도의 자연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젊은 시절의 고생, 그리고 저자의 엄마에 대한 느낌까지. 솔직하게 담아낸 글들이 어떤 예쁜 포장같은 글들보다 짙게 다가왔다.

잠시 말없이 레미콘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이수의 뒷모습은 참으로 작아 보였다.

난 읽던 책을 이어 보려고 다시 책장을 펼치는데 갑자기 이수가 입을 열었다.

"엄마! 그러면 지구도 사람이 굳지 말라고 돌아가는 거야?"

44p

대다수의 우리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해왔을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면,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이러지 말아야지. 내가 이렇게 싫어했던 행동과 말들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그러나 그걸 기억하고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역지사지의 논리는 내가 어른과 부모라는 강자의 위치로 갔을 때 당연히 희미한 기억들로도 남기 어렵다. 이수 엄마는 그것들을 최대한 기억하고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슈퍼맘처럼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눈높이를 맞추고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려 늘 생각한다. 이런 점들이 정말 인상깊었다.

이수야, 엄마는 이수가 인사를 하지 않게 된 점에 대해 조금 슬픈 생각이 들어.

왜냐하면 너의 인사가 누군가에겐 하루 동안 행복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 일이거든.

그 작은 일 하나가 큰 선물이 되는 거야.

친구들이 매일매일 인사를 받아주지 않아서 마음이 상했을지도 몰라.

엄마라도 그럴 것 같아.

그렇지만 그것으로 네가 금방 변했어.

반대로 친구들이 변화가 된다면 어떨까.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너에겐 큰 경험이 될 것 같아.

너 혼자라 할지라도, 좋은 일이라면 네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켜보는 거야.

그러면 세상도 바뀔 수가 있어. 아주 천천히 변화가 오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틀림없이 넌 후회하지 않을 거야."

111p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4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만 들어도 정말 쉽지 않다. 책에 묘사된 것의 몇천배는 더 힘들고 아팠을 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모습을 이렇게 담았지만 말미에 마음의 병이 있다는 점까지 고백할 만큼. 그러나 그것들까지 저자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저렇게 어려운 말들을 다 이해할까,하고 나는 참 내 입장으로만 생각했다. 아이들은 최소한 그 느낌을 이해한다. 그리고 어른보다 더 따뜻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이렇게 빨리 만나서 이들 가족은 참 행운이고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엄마, 얼마 전에 학교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 친구 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굉장한 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것저것 자랑을 하는데 부럽더라구.

그렇게 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상상해 봤어.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좋은 우리 엄마, 아빠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큰 집도 소용없다는 생각 말이야.

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런 큰 집보단 내 마음에 큰 집을 짓고 살 거야."

181p

남편과 1년이나 떨어져 네아이를 혼자 키울 결심을 하다니 인간적으로 존경심도 들 정도인데 이 부부가 서로에게 하는 말들도 참 따뜻하다. 물론 결혼 후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아내를 존중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당신이 리더라고 해준다니. 다름을 이렇게 대해주는 사람이라면 정말 결혼하고 싶다(...) 갑자기 유정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예전의 입양 약속을 상기시켜주고, 말을 잘못하는거같다고하자 수화를 배우면 되겠다는 답변에서 또 한번 울컥했다.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이들은 더 잘 자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화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수가 유치원에서 두달 간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이년간 괴로워 했다는 단락을 읽을 때쯤 화가 나고 안타까워서 울컥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이 있더라도 보듬어줄 누군가가 늘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어렵고 비현실적인 꿈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수, 우태, 유정, 유담이도 모두 지금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엄마를 꺼내어 생각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져.

엄마가 되는 것은 쉽다지만 아이가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웃음 짓게 하는 엄마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엄마를 하루에 천 번을 생각해도 지겹지 않아.

언제나 나를 웃게 해줘. 난 엄마가 정말 좋아.

275p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고, 나의 행동들을 이해해주고 모르는 것들은 알려주는, 내 첫 책을 함께 만들어주고 천 권이나 인쇄해준 부모님이 있으니깐. 사실은 저자처럼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은 세상이 처음인데 오히려 더 유연하고 때로는 곧다. 마지막에 실린 편지와 에필로그에서 진짜 펑펑 울고 말았다. 이수의 말들 중 그 어느것 하나 그냥 흘려보낼게 없었지만, 그래서 자주 눈시울이 시큰했지만 엄마에게 보낸 편지는 정말... 얘는 어떻게 이렇게 예쁜 말을 할까. 이수의 말로 인해 부끄러웠고, 감사했고, 슬펐고, 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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