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책할까요 - 내 인생에 들어온 네 마리 강아지
임정아 지음, 낭소(이은혜) 그림 / 한길사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강아지 네 마리가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생겨난 '성가심'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강아지들과 함께 웃고, 울고, 뒹굴며 지내는,

성가셔 죽겠지만 그 성가심을 기꺼이 껴안으면서 날이면 날마다 좌충우돌하며

강아지 일기를 써 나가고 있는 모든 이웃의 이야기다.

또한 평생을 혹은 아주 짧은 순간을 함께한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후

그 막막하고 아득한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나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8-9p)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귀여운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 정도의 애정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겁먹을 때도 많다. 물론 그 이유의 팔할 이상은 과거에 운 나쁘게도 여러번 마주친 제 강아지가 어딜 가나 우선인 무개념 견주들 탓이다. 그 후로 알아서 피하다 보니 별다른 애정도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한 강아지와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묘한 따뜻함을 채운다. 그것도 오랜 시간 함께한 강아지들을 보낸, 남겨진 사람이 쓰는 기억.

순종파인 까미도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대문을 나서면

계곡길 반대쪽으로 슬금슬금 올라갔다.

내가 자신을 목욕시킬 때 고무장갑을 낀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반대쪽으로 올라가봤자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돌담 아래만 왔다 갔다 하다가

"까미야, 까미야"하고 내가 큰 소리로 두 번만 부르면 마지못해 느릿느릿 내려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74-75p)

저자는 이런 면에서 나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사람이다. 국어선생님으로 일하면서 강아지를 몇마리씩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잠깐씩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만으로도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런 애정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큰 애정을 준 첫 강아지 까미부터 샘이, 바람이, 별이, 그리고 곁을 스쳐간 하늘이나 다른 강아지들까지. 오랜 기간 서로를 애정으로 지켜온 강아지와 견주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한 모든 기억들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애정에 서서히 빠져든다.

까미를 보내고 얻은 슬픔과 상실감이 큰 만큼 새롭게 깨우친 사랑의 깊이 또한 크고 깊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비밀인 것 같다.

끝없는 상처와 고통의 연속인데도 인생은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푸는 비밀의 열쇠,

무심한 바람결에 어디선가 휙 스쳐오는 꽃향기 같은 것.

그래서 삶은 아프고도 아름답다.(115p)

개도 생명이라서 그네들의 작은 행동들이 한번도 가까이서 살펴본적 없는 나에게는 기특하고 신기했다. 새끼를 나은 샘이 주인이 계속 새끼들을 확인하자 보이지 않는 곳에 물어다놓았던 샘이의 행동이나 주인 목소리를 거부하지 못했던 어느 강아지, 새끼를 낳겠다고 따뜻한 방안으로 문살을 뚫고 들어간 까미의 모습까지 개보다 사람이 낫다, 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거실로 나가서 자게 되었을까요?

이제 그 아이들은 침대 발치가 아니라 침대 위로 올라오겠다고

밤마다 침대를 낑낑, 캉캉, 박박 긁어대며 시위를 벌이는 중입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시위대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133-134p)

책의 모든 내용은 강아지와 함께한 저자의 추억에 고스란히 초점을 맞춘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과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애정과 슬픔으로 가득한 동시에 솔직한 고백도 망설이지 않는다. 저자가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과 잘못했던 행동들까지. 아무래도 오래 전부터 강아지를 길러오다 보니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용납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애써 숨기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짖음 방지기 목줄과 성대 제거 수술까지 고민했던 모습들까지 털어놓는 그녀의 후회조차 좌충우돌 많았던 그들의 시간들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들과 산책하려고 목줄을 찾으면 어느 틈에 알아차린 바람이는

현관으로 가서 1초쯤 기다리다가 나를 향해 짖기 시작한다.

나는 세 마리 강아지의 목줄 챙기랴, 휴지와 비닐봉지 챙기랴,

모자 쓰고 휴대전화까지 챙기랴 부산스러운데 바람이는 그 틈을 못 참고

"산책 안 갈 거야?"라며 발을 한 번 구르고는 캉 하고 신호를 보낸다.

샘이와 별이는 엄마가 산책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보고 있기에 짖지 않고 기다리는데

그걸 알 리 없는 앞 못 보는 바람이에게 '기다림'이라는 것은 없었다. (195p)

그리고 놀랄만큼 순수한 강아지들과 별개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습이 나올 때는 철렁한다. 믿고 맡겼던 하늘이의 새주인이 이빨이 날 시기 동안 허브를 뜯은 행동들로 불만을 표하다가 이내 시골로 보내버렸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그럼에도 저자의 가족들부터 팔랑이 엄마, 그녀가 맡은 학생들까지 따뜻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특히 바람이의 시체를 저자 대신 여동생이 집으로 데려오고 그 조카가 바람이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들은 뭉클했다. 이토록 순수한 사람들을 만난 강아지들도 그리고 주인들도 참으로 행운인 시간이었다.

운식이는 그런 아이였다.

20년도 더 지난 그 일화를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소년이 자라 아름다운 청년이 된 지금,

자기 집 냉동실에 있는 이모네 죽은 강아지에게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유쾌한 어조, 멋진 음성으로.

'바람아, 안녕?'이라고.(262p)

덧붙이자면, 영월과 단양처럼 시골에서 지냈던 작은 일상들이 읽는 나에게도 정말 소중하게 다가온다. 특히 초반에 시골에서 까미와 홀로 지냈던 작가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고 영화같이 그려졌는데 공중보건의였던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책장을 넘기자마자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죽음까지. 나는 차마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개나리색의 표지와 몽글몽글한 그림체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책의 풍경들과 마주할 때마다 문득 기억날 것 같다.




+)

이건 그냥 덧붙이는 건데 낭소 작가 삽화가 정말 귀엽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동화책 같은 느낌.

특히 삼총사 그림은 푸들인 아이들 털 느낌이 고대로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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