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 대구에서 맞선 본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회사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상수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근히 괴롭히고 싶으 마음까지 참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치사한 방식으로 그의 불안과 공포를 건드렸다.
그런 악취미들울 보고 있으면 유정은 인간의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그 나쁨도 그러데이션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두 사람, 경애와 상수. 어딘가 비어있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 만났고, 또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이들을 따라간다. 또한 늘 둘과 함께 있는 은총, 셋의 이야기가 천천히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진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고 또 누군가를 만나면서 살아간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 또한 이야기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 자자고?
-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 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 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심리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아직 나는 제대로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다. 두번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거나 서서히 연락이 끊겨 보지 않는 그런 이유와는 달리 영영 볼 수 없을만큼 멀리 간 사람이. 은총을 잃은 두 사람에게 은총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조용하고도 절절히 다가와서 모두 짐작할 수 없지만 나는 슬퍼졌다.
현실에는 불안의 전조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불행이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도 불안의 전조는 등장한다. '공'이 들어가는 말장난으로 시작하는 상수의 이름이, 과장보니 팀장대리니 구구절절한 이름으로 나타는 회사 안의 수많은 관계들이. 모든 피조들은 각자 그들의 불안을 안고 살아갈 뿐.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생의 통제할 수 없는 손에 있어서 그 '사이의 감각'은 발현되지 않을까.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로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메뉴얼이에요.
우리는 왜 이렇게 주제넘게 서로를 궁금해할까. 나에게 설명시키고 이해하길 바랄까. 박경애와 공상수에게 그렇게 무신경하고 잔인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찔렸다. 나는 쉽게 상처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올바른 메뉴얼이 있고 모두가 그걸 따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하지만 늘 생각하는 지점이다.
경애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다.
그러면 경애는 그 순간, "오두막이 무너진 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 다친 줄도 모르고 웃고"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자기가 원하는 필기구를 정확히 적어
골머리를 앓게 하는 상수가 없고 갑자기 한팀이 되어서 필요 이상으로 연대감을 요구하는 상수가 없고
전철을 타고 가면서 피조라는 아이디의 어린 경애를 상상하는 상수가,
경애가 손을 맞잡았을 때 조용히 마음을 떨던 상수가 없을 것이었다.
상수는 그간 수많은 수학선생들의 관심을 받아온 것처럼, 늘 성립하는 상수가 아니라
이제 경애의 삶에 없는 공동, 제로, 허수가 되는 셈이었다.
은총과 산주와 헤어진, 또는 헤어지는 과정인 경애와 그리고 언니를 떠나보내는, 또는 떠나보내는 중인 상수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까. 굳이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겠지. 상수가 형의 세계와 결별하려고 노력했듯이 경애가 모든 무례함에도 자리를 지켜내며 담배를 피웠듯이 그렇게 조금은 달라지고 또 조금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모든 비어가는 피조에게, 은총을.
물론 그런 호의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애를 좀 아는 직원들이 더더욱 경애가 있다는 것을 고역으로 여기며 외면한 채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찬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찬 기운이란 어떤 공격성이나 냉소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불가피한 온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