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우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기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처음부터 연인으로 시작한 인연이 아니었다면 더더욱...그동안 만들어온 관계가 혹시나 고백 이전의 상황으로조차 되돌릴 수 없을 정도가 된다면 이 한마디를 뱉고 나서 그 후폭풍은 고백하려 망설이려던 마음보다 더 큰 고민과 슬픔을 줄테니까...특히나 그 우정이란 것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는 것보다, 그 사랑이란 것에서 다시 우정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학교다닐때, 남자동기 녀석의 연인을 선배들과 함께 만나게 되었는데, 얼마후 다시 두 사람을 만났을때는 그냥 친구라 했다. 그런데 그 녀석 얼굴을 보는 순간, 이 녀석의 얼굴은 전혀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붙들어놓고 그녀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는 우리가 막연하게 추측할 뿐...그리고 우리끼리 있게된 그 시간에 그 녀석에게 물었다.
"너, 정말 그 애를 친구로 볼 수 있어?"
"그냥 친구하기로 했어."
선배 한명이 그 녀석을 나무란다.
"친구가 애인이 될 수는 있어도, 애인이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다 이녀석아~"
"...그래도...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전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녀석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그녀의 옆에 있고 싶었을 그 녀석의 마음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랑이 끝났음에도 도저히 그 순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 역시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싶은 순간을 만났을 때, 그때....
두 주인공 정우와 인영에게도 이런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십년지기 우정을 사랑으로 바꾸기에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했을테니까...
이 마음이 우정이 조금 지나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이 마음을 입 밖으로 뱉어냄과 동시에 찾아올 그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지, 나만의 일방통행인지 상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발걸음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우정 사이의 이 미묘한 감정을 나 스스로가 분명하게 알아차려야할 순간임에도 왜 이렇게 망설이는 마음과 고민하는 시간만 길어지고 있는 것인지...
혹여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왜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는 그 사랑의 끝을 먼저 떠올리는지...이 사랑이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 끝난다면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 상대방과 나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할지 두려움이 먼저 앞서기 때문에...어느 시인의 싯구절처럼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있었던 일인데, 사랑이란 것을 나누기 전의 관계로 되돌아 갈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고민 아닌 고민으로 그 사랑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겁쟁이들처럼...그 순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감정에 솔직해져야 하는 용기일텐데...
오랜시간 차곡차곡 서로가 모르게 서로의 가슴에 쌓여갔을 그 감정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붙쑥 튀어나오기까지의 감정들이 참 미묘하게 그려져 있다. 로맨스소설이 주는 즐거움일 수 있으나, 사실 그런 흔한(?) 소재의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이게 하면서 읽게 만드는 힘은 흔하지도 쉽지도 않을 것이다. 단순히 두 사람의 감정들만을 그려낸 것도 아니고, 사회라는 공간, 직장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관계된 일반인들이 아니라면 사실 접근도 못할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역할도...
두 주인공이 살아가는 그 공간이 자칫 지루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비춰질만도 한데, 즐겁고 진지하게 읽게 만들어주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읽는 내내 설레였다. 두 사람의 우정이 어떻게 사랑으로 그려질지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때마다 기대를 하게 된다. 이들의 감정이 어디로 흘러갈지, 어떤 방해물이 두 사람의 사랑을 길을 훼방을 놓을지 그 오해로 두 사람의 마음이 멀어질지, 아니면 그런 일들로 두 사람이 사랑을 더 빨리 더 깊이 확인하게 될지...두근거리면서 한페이지씩 넘기를 떨림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다.
두 사람의 우정계약서가 사랑계약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참 이뻤다. 그리고 세상이 끝날때까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없다'의 해답을 이 책을 통해서 어느정도는 얻은 듯 하다. ^^
이쁘고 애틋했던 두 사람이 이젠 그 우정에 덮어씌워진 사랑으로, 함께 해온 그 시간의 몇배의 시간만큼 또 함께 할 삶에서 더 깊이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한편의 로맨틱영화를 보는 느낌이, 읽는 내내 두근거렸던 설레임이 새록새록 다시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칫 허술하게 그려질지 모를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생각보다 탄탄했던 이야기와 소재들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