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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구판절판
조카아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책선물을 우선적으로 해서 그런지...
의외로 동화책 단행본을 선물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불어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것을 같이 배우게 된다. 작년에 작가의 전작들을 보고나서 그림이 참 예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얘기들일지도 모를 일들을 이렇게도 설명해줄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책이 주는 즐거움과 교훈을 다시 한번 알아가게 된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빠의 숨겨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 <구름빵>. 그리고 이번에는 절약이라는, 환경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달 샤베트>.
정말 무더운 어느 여름날 밤.
너무나 더워서 잠도 오지 않는 그 밤에 모두들 창물을 꼭꼭 닫은채로, 에어컨과 선풍기를 쌩쌩 틀어대며 잠을 자고 있는데...
똑.....똑.....똑..... 들리는 소리. 창 밖을 내다보니 정말 커다랗던 달이 똑똑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 부지런한 반장 할머니가 큰 고무 대야를 들고 뛰쳐나가 떨어지고 있는 달방울들을 받았더랬지. 고무 대야에 받아진 달 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반장 할머니는 노오란 달 물을 샤베트 틀에 나누어 담은 다음, 냉동칸에 넣어두었지.
여전히 에어컨과 선풍기가 쌩쌩 돌고 있던 그때...
앗~! 온 세상이 캄캄해져버렸어. 전기를 너무 써서 정전이 되어버린거야.
사람들은 온통 캄캄한 그 곳에서 벽을 더듬어가며 반장 할머니 집으로 갔어. 반장 할머니집 창문을 통해 노오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 빛을 따라 반장 할머니 집으로 향했지.
할머니는 문을 열고 냉동칸에서 꺼낸 달샤베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지. 할머니가 주신 달샤베트는 정말 시원하고 달콤했어.
근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
달샤베트를 먹고 나니까 더위가 싹 달아나 버렸던거야. 이럴 수가...
달샤베트 덕분인지, 그날 밤 사람들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틀지 않고, 창문을 활짝 얼겨 잠을 잤어. 모두들 너무나도 시원하고 달콤한 꿈까지 꾸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날 밤, 반장 할머니집에 찾아온 또 다른 손님이 있었지.
달이 사라져 버려서 더이상 살 곳이 없어져버린 옥토기 두 마리. ^^
생각에 잠긴 할머니는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빈 화분에 남은 달 물을 부어주었어. 그러자 정말 달처럼 환하고 엄청 커다란 달맞이꽃이 피어난거야. 달맞이꽃의 꽃송이가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지. 아주 환하게...
그리고 잠시 후, 새까만 밤하늘에 작은 빛이 피어났는데... 그건 점점 더 자라나 커다랗고 노랗고 둥그런 보름달이 된 거지. 옥토끼 두 마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새로 피어난 보름달 속으로 돌아갔어...
반장 할머니도 달콤하고 시원한 잠을 청할 수 있었지... ^^
모두가 시원한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반장 할머니의 달샤베트 덕분이었는데, 그건 아마도 자연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겨울, 한 여름, 전기 사용량이 매일 최고치를 경신한다고 하는 뉴스를 보면서 나도 일조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뜨끔하지만, 그래도 '나는 에어컨은 잘 안틀잖아' 하면서 핑계를 대본다. 사실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전기가 아니면 안되는 많은 것들을 열어놓고 있다. 컴퓨터, 방을 환하게 해줄 전등, 따뜻하게 해줄 보일러와 전기매트... 등등... 한낮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는 것 같다. 잠깐만 전기가 끊겨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도 사실 그게 없어지기 전에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모르는 듯 하다. 여름 땡볕에 단수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리라.
전기를 절약해야 하면서, 전기 낭비로 인해 파손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설명을 어른이 아닌 어린이를 그것도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단 설명 자체가 어렵고,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나이이기에...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동화라는 장르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서, 눈길을 끄는 그림에 그 역할을 더하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틀어놓고 있는 전기, 그로 인해 갑자기 찾아온 정전, 달샤베트를 통해 달빛의 밝음까지 앓게 해주니까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어른들의 눈에도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해도 모르는 생각없는 어른들이 분명 있을테니까...
자연바람의 상쾌함을 느끼고자 드라이브를 하고 '바람을 쇠러 가자'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분명 자연이 주는 그 무언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편리함보다 한수 위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고, 비닐 코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움이나 파손의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넓게 이해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책의 맨 뒤장에 적혀있는 이 문구가 가슴을 따갑게 한다. 멋지고 좋고, 소장하기 좋은 책만 생각했지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는 생각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