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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평점 :
왜 그렇게, 자꾸 폭력이 대화의 수단이 되려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대화를 벗어난 혼자만의 악다구니라고 해야 하나. 며칠 전 뉴스에서 봤던 데이트 폭력 기사. 새벽 시간, 골목에서 남자는 여자를 폭행하고 있었다. 여자는 피를 흘리고 쓰러지면서도 남자에게 계속 맞았다. 지나가는 시민이 여자를 도왔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남자는 오히려 그 시민들에게까지 위협을 가했다. 여자를 때리는 것도 모자라 술 취한 상태로 좁은 골목에서 트럭을 몰며 사람들을 쫓아갔다. 결국 경찰은 그 남자를 체포했다. 남자는 곧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애인이라는 사람에게 지독한 폭행을 당한 여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낫겠지만, 안으로 곪아든 상처는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쉽게 낫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어디 넘어져서 다친 것도 아니고,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그 무지막지한 폭행에 어느 정도의 상처인지 가늠할 수나 있을까? 뉴스에서 그 동영상을 몇 번이나 보다 보니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았지만, 그 동영상을 보지 않는 지금도 끔찍한 공포가 남아 있다.
누군가 애인이나 배우자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 맞지 않는 성향에 대해 토로할 때 사람들은 “왜 그런 사람을 만났어?”라는 질문을 종종 던지더라. 그때마다 그들 대부분의 대답은 이런 거였다. “만나기 전에는, 같이 살아보기 전엔 몰랐지.” (나는 이런 질문을 엄마에게 똑같이 한 적이 있고, 엄마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 그 말 말고는 딱히 맞는 대답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진실이기도 할 테고. 사랑해서 만났지만, 상대와 함께하는 게 고통이라면 헤어진다는 것은 그 고통을 줄이거나 없앨 방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 그런 결정을 했다면 그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쉽지 않은 결정인 거다. 어떤 놈은 자기 기분이 저조하면 잠수를 탔다. 또 다른 놈은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같은 경우를 두고 저는 괜찮고 나는 안 되는 이유를 내놓으며 억지를 썼다. '만나고 보니 이래, 정말 몰랐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마다 그런 대답을 내놓을만한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럴 때 할 방법은 한 가지다. 그 녀석을 내다 버려.
오사 게렌발이 자전적인 이야기로 데이트 폭력을 고발하는 걸 대면한 순간, 행복해지기 위한 그녀의 선택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벗어나야만 했던, 있는 그대로의 일을 드러내야만 했던 그녀의 태도는 당연한 거다. 만나보기 전에는 몰랐을 테지, 그 멀쩡한 외모에 가려진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왜 닐은 오사에게 그랬을까.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취향에 맞게 골라 쓰는 소유물처럼 여겼을까. ‘네 헤어 색깔이 맘에 안 들어, 눈에 덕지덕지 칠한 그 화장은 또 뭐고? 키스할 때는 눈을 뜨란 말이야, 나를 봐야지,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낙태에 관한 책은 왜 가지고 있는 거야? 창녀 같아, 생각해봐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생각날 때까지 더 생각해봐...’ 아, 욕 나온다. 말을 하든가 말든가 둘 중의 하나만 하란 말이야. 이게 잘못된 것 같아, 나는 이렇게 생각해, 듣고 보니 그건 오해였네, 그 말이 맞네, 뭐 등등. 넘어가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안 되겠다 싶으면 솔직하게 얘길 하고 상대의 얘기도 같이 들으란 말이야. 어떤 모양의 폭력이든 이해가 어렵지만, 특히 정신적인 폭력을 가할 때 따라오는 그 무너진 자존감과 피폐함은 엄청나다. 데이트 폭력의 시작과 과정, 결과까지 오롯이 드러낸 그녀의 이야기에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 욕 나와.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고 남자친구 닐을 만났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외모, 자상한 태도, 그녀만을 위한 눈빛까지.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엔 그저 자기를 지나치게 좋아해서 보이는 관심이고 기분 좋은 집착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범주로 그 집착을 넓혀간다. 그녀의 친구가 맘에 안 든다고 만나지 말라거나, 그녀의 까만 머리색이 맘에 안 든다고 바꾸라거나, 다른 남자가 그녀를 쳐다만 봐도 그녀의 태도를 추궁한다거나, 말도 안 되는 얘기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취향을 쓰레기 취급했고, 그녀에게 저속한 것을 보는 듯한 혐오의 눈길을 보냈다. 어디 눈길뿐인가, 그가 말로 하는 폭력은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는 그녀에게 육체적인 폭력도 행사하기 시작한다. 팔에 든 멍, 집어 던진 다리미, 그녀의 물건을 부숴놓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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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가 지나자 나는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다. “블랙 오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나 또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틀에 짜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끊임없이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닐과 함께. (2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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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반했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갔나? 정말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그 대답밖에 할 수 없는 건가. 만나보기 전에는 몰랐네, 같이 지내보기 전에는 진정 난 몰랐었네... 그녀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오사 게렌발을 나타내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녀의 존재감은 그 남자 옆에 있는 하나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의 상태에 따라 웃었다 울었다, 안아줬다 내팽개쳤다, 그냥 맘에 안 들면 마구 두들기는 것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 모든 것을. 어느 순간 그녀까지 이상해지려고 한다. 내가 맞는 게 당연한 건가? 내가 화장이 너무 진했구나, 내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구나, 그가 싫어하는 건 하지 말아야지.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비정상적인 요구를 하면서 상대의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쥐고 흔들려고 하는 게 잘못된 거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고, 이런 양보를 하고 싶고, 이런 기회를 주고 싶고,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을 때 하는 거다. 그게 진심을 담은, 상대를 향한 애정이다.
사랑이 변할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기에 그 남자의 행동은 병적으로 보인다. 처음 마음이 아니라고 해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가정폭력이 가정폭력에만 머무는 게 아닌 것처럼, 데이트 폭력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인권이 보장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폭력에서 보호받기 위해 사회가 손을 뻗어줘야 하는 거였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드러내야 하는 걸 주저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게 부당한 건데, 그걸 공개하고 호소해야만 하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분위기. 폭력에 대해 스스로 얘기할 수 있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더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런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던데, 데이트 폭력으로 죽는 여자가 한 해에 몇 십 명이라는데, 그 해결을 위해 침묵은 버려야 한다. 폭력의 함정에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될 수 없게 말이다. 저자는 주변의 가까운 이(아버지와 교수 등)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모든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려 애쓴다. 상담 받고 치료받고, 원래 그녀 자신이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좋아하는 사진, 옷, 화장, 사람들. 모두 그녀가 선택한 것들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 가끔 왜 그런 시간을 보냈나 싶은 분노에 울음이 차올라도 이제는 괜찮을 거다. 그녀의 용기가 더 단단하게 치유해줄 터이니.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고 분노했다. 억압당하는 게 얼마나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는지, 존재감을 잃게 하는지 보여주던 저자의 이야기에 소름이 끼쳤다. 한 사람이 보여주던 두려움과 절망이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게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상태를 원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거 아닐까. 가까운 사람들,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전문가의 이해와 절실한 도움이. 이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함께 도우며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는 의미를 알겠다. 언젠가 TV를 보면서 눈에 들어왔던 건 폭력에 관한 캠페인 영상이 생각났다. 학교 왕따가 사회 왕따가 되고, 가정폭력으로 자란 아이가 가장이 되어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폭력의 확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폭력이란 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인생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폭력은, 그냥 폭력일 뿐이다.
제목이 7층인 이유. 그녀가 살던 곳이 7층이었는데,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면서 그 7층에서 자꾸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그녀의 불안과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는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