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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폭에 담긴 붉은 그리움
지연희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6년 10월
평점 :
요즘에 TV 뉴스만 보고 다른 것을 거의 안 봐서 몰랐는데, 주말에 배우 박민영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듣고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는 걸 알았다. 제목이 <7일의 왕비>라고 하던데... 7일? 왕비? 게다가 사극? 감이 오더라. 어떤 소재로 만든 드라마인지 느낌이 왔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자꾸 물음표가 떠다니는데, 나, 이런 소설 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뭐였지? 소설 제목을 한참 떠올리면서 드디어 찾아냈다. 지연희의 『치마폭에 담긴 붉은 그리움』이었다. 로맨스소설 좋아하는데도 시대물은 취향에 안 맞아서 잘 못 읽고 있다가, 이 소설 읽고 나서 종종 이런 시대물도 즐길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와 같은 소재로 드라마가 나온다니 더 궁금해져서 소설을 다시 찾아봤다. (얼핏 살펴보니 드라마는 소설과, 혹은 역사적 사실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들긴 하다만...)
임금의 동생으로 대군이라 불리는 역은 유유자적 한가하게 보일 정도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권력 싸움에 관심도 없었다.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자기가 품은 첫정을 나눈 아내와 백년해로하는 게 유일한 바람인 남자다.
역의 아내 여의는 천방지축이라 불릴 정도로 밝은 성정이다. 아무리 봐도 지고지순한 현모양처의 이미지는 아니다. 바깥바람이 그립고 여기 저기 둘러보면서 살고 싶으면서도, 지아비의 사랑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한 여인이다. 부부인이라 불리는 대군의 아내로서는 불합격일지 몰라도, 역의 아내로는 충분했다. 역의 마음에 들어온,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은 유일한 여인이었으니까.
소설은 처음부터 부부였던 두 사람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역과 여의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다. '아니, 그 시대에 얼굴 한 번 안 보고 혼인하였을 터인데,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가?' 싶은 순간에, 역이 아는 어린 여의의 모습이 이야기가 흐르는 중간에 한 번씩 드러난다. 궁 안의 소년이 만났던 어린 소녀, 어차피 왕권과 상관없는 자리이니 이 소녀에게 건넨 손을 붙잡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소년과 소녀는 혼인을 하고 부부가 된다. 물론 여기서 여의는 역의 그런 마음과 과거를 모른다. 그냥 현재의 자기 남편을 아끼고 사랑할 뿐이다. 소박한 일상을 즐기는 여느 부부를 보는 듯했다. 시대가 다를 뿐이지,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잖아. 여염집 아낙의 평범하고 행복한 하루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역은 여의에게 교과서적인 아내상은 바라지 않는다. 완전하게는 아니겠지만 여의가 숨통 열어놓고 활발하게 지내길 바랐다. 그런 둘의 모습이 그동안 그 시대의 여인들에게 강요되었던 분위기가 아니어서 소설이기에 가능한 캐릭터겠지 싶으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 보고 싶었던 거지, 여의의 행동이나 생각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으니까. 마치 처음부터 마치 그들 사이의 어떤 방해도 없을 것이라고, 그러니 그들의 집 담 밖의 일들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고, 관심도 없는 일에 시선을 둘 여력이 없다고, 오직 둘만 바라보면서 살이게도 아까운 시간이었던 거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우연처럼 만났던 그 잠시의 순간, 손바닥 위의 꽃잎이 날릴 때 바랐던 소원이 이루어져 행복한 남자가 계속 웃을 수 있기를, 읽는 내내 나도 바라게 된다.
이런 부부가 있을까? 그 어떤 것도 가로막을 수 없고, 오직 자기 배우자만이 유일한 존재이며, 그 무엇으로도 둘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는 사이. 마음속 간절한 바람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살면서 얼마나 많이 다가올 텐가. 그런 것도 아무런 의미 없다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으니 오직 당신만이 내 옆에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삶. 아름다웠다. 역과 여의의 모습은 어느 부부에게나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연회에 참석해도 화려함을 자랑하는 기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두는 여러 명의 첩도 역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오직 여의뿐이다. 할 말 다하면서도 수줍어하고, 마음속 바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위험한 줄 몰라 가슴을 철렁하게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을 어찌 눈에 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평생 당신만을 보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역의 시선이 너무 당연해 보여서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자칫 권력에 욕심낼 것도 같은 위치였으나, 그에게는 여의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게 그대로 보였으니, 이런 멋진 남자의 사랑이 끝까지 멈추지 않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은 마냥 행복해 보여서 좋았는데, 어떤 악역도 보이지 않아서 힐링 드라마 같았는데,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것처럼 흐르는 이야기로 보여서 안심했는데, 이상하게 불안했다. 뭔가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흐르면 그냥 해피엔딩의 행복한 결말일 텐데, 뭔가 자꾸 숨어있는 채로 자기 역할을 소화할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던 거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 닥치지 않을까, 어디선가 복병처럼 튀어나온 일이 이들의 사랑을 훼방 놓을까 싶어서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읽는 내내, 그렇게 이상했던 부분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아, 이들의 사랑은 끝난 건가? 하는 슬픔이 밀려온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해도 기어코 그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믿음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믿음이 사라지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밀어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해야만 하는 상황. 알 것 같다. 시대가, 신분이, 자리가 그렇게 만든다. 백성들은 불안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폐위된 어머니의 복수라도 하듯 피바람이 멈출 날이 없었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던 사람들이 나라의 안위를 위해 반정을 꿈꿨다. 위기에서 나라와 백성을 구해줄 현명한 왕을 바란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잡을 정권에 세워둘, 반정의 명분을 합당하게 해줄 왕이 필요했던 거다. 역은 그 역할에 안성맞춤처럼 존재했다. 역이 원하지 않아도, 권력의 욕심이 없어도 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던지, 반정을 알았으니 죽음을 택하던지. 사실 역에게는 그 무엇도 의미 없다. 그들의 말에 따라도, 따르지 않더라도, 오직 여의의 존재만이 그를 있게 하는 것이므로. 여의만 옆에 함께 한다면 그 어떤 자리라도 개의치 않으리. 그가 선택하는 기준은 오직 여의와 함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역과 여의는 어떻게 되었을까. 둘이 함께 나란히 손잡고 궁으로 들어가 정권의 우두머리가 되었을까? 아니면 그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겠다며 죽음을 택했을까?
계속 슬픈 생각을 하던 차에 읽었기 때문인지, 마냥 고요하게 흐르던 이야기 속에서 내내 슬픔을 느꼈다. 계속 긴장하며 읽었다. 어디선가 기다렸다가 튀어나올 슬픔의 한 조각이 그림 전체를 채울 것 같아서 불안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한 두 사람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서글펐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순간의 마음이 읽힌다. 현실에서도 그러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선택의 강요가 존재할 터였다.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모두가 아프기 마련이다. 누구라도 덜 슬프게, 덜 아프게 하는 선택을 해야 할 터였다.
연연불망이라 했다. 연(戀)연(緣)불망(不忘). 잊을 수 없는 그리움, 끝나지 않은 인연. 역과 여의의 사랑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읽는 순간에 따라 매번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그래서 여운이 더 짙어질 지도... 마지막에 뒤돌아서서 가던 여의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역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내내 궁금해하고 있다.
“단언하건대, 제비꽃이 으뜸이었소. 모란도 난초도 곱기는 하나 제비꽃에 비할 수는 없었다오.”
실제 역사 속 인물인 중종과 단경왕후를 배경으로 가져왔다고 하지만, 많이 다른 듯하다. 연산군의 폭정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진성대군을 왕으로 이끌면서 기록된 중종반정. 진성대군이 이끌고 원해서 이뤄낸 정권이 아니었기에, 정권을 바꾸겠다는 세력에 끌려온 그가 왕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을 것이다. 허수아비 임금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그가 아내라고 지킬 수 있었을까? 7일 만에 쫓겨난 중전으로 기록된 단경왕후는 연산군의 정비였던 폐비 신씨의 조카였으니, 새로운 정권의 세력들은 단경왕후 역시 폐비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겠지. 그걸 거부할 힘이 중종에게 있었을까. 그렇게 7일 만에 궁에서 나온 단경왕후는 인왕산 아래의 사직골 옛 거처에서 지냈다고 한다. (검색해서 찾아보니) 부인을 잊을 수 없던 중종은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단경왕후는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바위에 올려두었다고. 그 바위를 치마바위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그에게 '나는 잘 지낸다...'는 말을 그렇게 표시한 거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중종반정이 이뤄지기까지의 시간을 그렸는데, 내내 긴장되는 반정의 준비라기보다는 역과 여의 두 사람에 초점이 맞춰졌다. 소설 속에서 그는 한없는 사랑을 바라는 남자로 그려졌고, 그녀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실제 중종은 이미 잡은 왕권을 놓고 싶지 않았던 인물이라던데, 아내를 버리고 끝까지 돌아보지 않을 만큼 냉정한 사람이었다고 하던데 정말일까? 아마도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중종에게도 적용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그래서 소설 속 역의 모습이 더 애틋하고 아프게 보인다. 아내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고 권력 욕심을 부린 사람이 아니라, 한 여자를 향한 사랑밖에 몰랐던 나약하고 여린 사람으로 비춰져서 그가 왕위에 오르고 보낸 몇 십 년의 세월이 죽은 상태였을 거라고.
소설의 처음부분에서는 그저 어느 시대의 이야기이겠거니 했는데, 마지막을 향해갈수록 암시하는 내용에 어렵지 않게 그 시대를 연상할 수 있다. 중간에 등장하는 정암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종과 단경왕후의 최후만큼은 드라마나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 반정으로 이룬 왕권, 7일 만에 폐위된 왕비, 전해지는 치마바위 이야기에 '7일'이라는 시간은 많은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소재가 될 것 같다. 이번에 드라마 <7일의 왕비>도 그런 의미로 궁금하긴 하다. 애절하고, 아프고, 슬프고, 동시에 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로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주는 듯해서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 소개 부분을 잠깐 봤는데, 연산군과 중종과 채경(중종의 아내)을 거의 삼각관계 분위기인 것처럼 보이던데... 그게 맞나? 어차피 드라마이니, 소설을 읽는 것처럼 보면 그만일지도 모르지만, 기록된 역사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심한 바람이 있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