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최양윤 지음 / 청어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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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진심을 알아차리는 타이밍...

 

뭐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어떤 선택을 앞에 두고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 순간은 짧아야 한다. 조금만 주저해도 버스는 떠나고 흙먼지만 달려들기 일쑤니까. 그걸 알면서도 늘 반복되는 시행착오가 있다. 혹시나 거절당할까, 내 맘과 같지 않아 부담을 줄까 싶어 망설이다가 가슴 속은 시커멓게 타버리는 일. 누굴 좋아하는 마음은 왜 그렇게 애가 타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주변을 맴돌며 마음을 흘린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키고, 짝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 쿨한 척 괜찮은 척하는 연기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한다. 어쩌겠나, 그렇게라도 옆에 있어야 좋다는데...

 

승연과 윤성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 1월 12일이 지나고 있다. 0시 1분. 승연은 준비한 이혼서류를 바라보며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윤성과 친구로 지냈던 시간, 낯선 땅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유일하게 발견한 윤성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시간, 아닌 척 마음을 숨기며 결혼을 유지했던 1년이란 시간까지. 승연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 윤성과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걸까. 이 서류로 그 확인을 할 수 있을까. 흩어진 많은 것을 한 군데로 끌어 모아 끝이 이루어지긴 할는지...

 

승연은 친구인 지영의 연인 윤성을 좋아한다. 물론 윤성은 승연의 오랜 지기다. 어느 날 윤성과 지영은 연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지기, 변호사인 시흔은 승연과 친구 사이면서 승연이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대상이다. 재벌 수준의 집안 배경을 가진 윤성과 승연, 개천에서 용 나듯 살아온 지영과 시흔. 네 사람의 공통점은 없는 듯 보였으나 이들이 오랜 친구사이였다는 건 그만큼 인간성이 바탕이 된 존재라는 얘기도 된다. 어쨌든, 연인인 지영과 결혼하기 어려웠던(?) 윤성은 승연에게 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제안한다. 승연은 윤성을 위해, 지영이 윤성과 맺어지길 바라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를 윤성과의 결혼을 시작한다.

 

이들의 시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뭔가 아리송하면서도 진실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려면 일단 끝까지 읽어봐야 판단할 수 있는 것. 소개 글만 보고서는 두 사람의 이혼을 시작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 헤어지고 나서 뒤늦은 후회로 다시 이어지는 마음이 어떻게 그려질지 설렜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최양윤의 소설 『자각』은 내 기대와 조금 달랐다. 그들이 결혼하기까지, 결혼하고 나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그들의 결혼기념일과 이혼서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진단하는 과정이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뭐, 일단 읽어보면 안다.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보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어떤 마음이어야 할지 알게 하는 이야기였다. 윤성의 묵묵한 태도는 믿음직스러웠고, 승연의 표정 감춘 웃음은 쓰라렸다. 뭔가 이루기 위해 참아야 할 것, 기다려야 할 것을 떠올리게 한다. 늘 그렇듯 좀 돌아서 가는 길이 더디고 아프겠지만, 마지막에 도착해서 만날 기쁨을 위해서라면 조금 먼 길이어도 괜찮지 않겠나. 말은 안 하면 모르니 상대에게 닿는 길이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말을 해!! 라고 충고라도 하고 싶지만, 그게 또 맘처럼 되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쓸데없는 오지랖은 부리지 않으련다.

 

“넌 아무것도 모르지. 널 곁에 두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넌 아무것도 몰라.”

 

그러니까 말이야...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친구를 정의하는 부분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물음표는 언제나 화두로 떠오를 수 있는 내용임에도 늘 완벽한 정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이 조금 다른 정의를 내놓고 있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상대에게 짝사랑 중이어야 친구라는 이름이 유지된다고 했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계속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어야 친구라는 이름으로 옆에 두고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는 거다. 안 그럼 두 사람 사이는 진즉에 끝났을 테니까. 듣고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니 두 사람 사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러다보면 저절로 관계가 소원해지고 끊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절친이나 연인, 가족도 아닌데 서로 얼굴 보고 시간이 이어지는 이성이라는 게, 친구사이로 계속 갈 수 있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 누구 한 사람이라도 상대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친구라는 이름으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싶다. 무슨 말인지 좀 알겠다. 이 의미가 세상 모든, 친구라고 부르며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 사이에서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마다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으로 유지되는 친구라는 호칭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짝사랑이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게...

 

전체적으로 읽기에 부담되거나 불편하지는 않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완전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탄탄한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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