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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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나... 내 주변의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느낀 것은, 언젠가부터 외동아이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꼭 그래서인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의 모습에서 심각한 개인주의나 이기심을 보게 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함께 보는데 익숙하지 않고 오직 나를 먼저 보는, 혹은 나만 보는 사고방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볼 때는 섬뜩하면서 위험을 느끼기도 한다. 북적거리는 집안이나 학교, 나눠 먹거나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어떤 예의처럼 자리 잡았던 시절, 그래서 ‘함께’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던 오래전 그때, 내가 자라던 시절을 기억한다. 내가 자라온 환경만 해도 어김없이 그랬으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1순위였던 그때, 가난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고 남들에게 명함 내밀기 좋은 직업이 아니라, 기름때가 절은 옷을 입고 출퇴근하는 아버지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때이기도 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와 훌쩍 자라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창피한 게 아니라 노동의 아름다운 흔적이었다. 굳은 살이 되어 갈라진 손바닥과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작업복의 기름 얼룩이 삶에 있어서 '고마움' 그 자체였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를 이제와서야 알게 됐다. 힘든 하루 노동의 끝에서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 하루의 노고를 칭찬해주는 담소, 힘들지만 아침 출근길이 마냥 행복함을 알아주는 사이로 이어지는 관계의 흐름이었다. 그랬기에 사람 사이가 더욱 돈독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잡아줄 줄 아는, 언젠가 나도 그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있다는 공감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시간이었기에 말이다.

 

처음에는, 이미 무슨 내용인지 다 알고 있는 이 책이 자칫 무겁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었다. 노동자의 권리나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워서 거리감 있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노파심이 있었다. 하지만 웬걸, 막상 읽고 보니 너무 진중해서 무거운 게 아니라, 굉장히 쉽게 풀이된 다큐멘터리 한 편 보는 것 같아서 집중할 수 있던 책이다. 어려운 말로 포장한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이해가 가능하게 하는 쉬운 설명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라는 제목을 바로 내 옆에서 주인공 카를리토스가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카를리토스에게 느낀 긍정마인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린 나이의 카를리토스에게 엄마가 건물의 청소노동자라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친구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너무나도 당당하게 엄마의 직업을 외치는 소년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내가 잠깐이나마 가졌던 선입견들은 모두 기우였다.

 

 

 

 

 

카를리토스의 엄마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건물 청소부다. 남들이 모두 잠드는 밤에 출근해서 건물 안의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낸다. 그리고 통이 터올 때 퇴근하고, 카를리토스의 등교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고, 잠이 든다. 그러던 엄마가 청소노동자의 파업에 동참하게 된다.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파업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고, 이건 카를리토스의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청소노동자가 겪는 불공평한 처우이기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일이다.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파업에 함께하고, 뜻을 모아 같이 외치기 시작한다. 엄마는 그 파업의 이유와 과정을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아이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파업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참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라는 외침으로 엄마의 행진을 같이 한다. 아주 씩씩하게!

 

 

몇 페이지 안 되는 이 책을 읽고 있자니, 2011년 H대학교의 청소노동자 파업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청소노동자의 환경을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아마 그런 일(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실제 그 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었을 내용이었다. 노동시간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급여는 최소한의 생활을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이 그렇게 열악할 수가 없었다. 가장 최근에도 U대학, J대학, C대학병원 등 여전히 청소노동자의 파업은 계속 일어났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곳곳에서 불공평한 처우가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들이 특별대우를 원해서 시작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의 개선과 고용불안에 떨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그에 당연히 따라야 할 것이 기본적으로는 임금인상이고, 복지일 것이다. 그러한 외침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 노동자들의 연대다. 노동조합이 형성되고 같은 뜻이 뭉쳐 힘을 발휘하는 것. 한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최종 목적지로 도달하기에 앞서 가질 수 있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의 용기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사회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느낀 많은 것 중에서 가장 크게 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에서 노동이 주는 기쁨을 제대로 찾아야만 하므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이들이 하고 있다, ‘함께’. 그래서 더욱 집중해서 듣게 되고 공감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니까.

 

요즘 부모들이 아이의 교육에서 고민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자존감’이라고 한다. 자존감이라는 말에 많은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며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기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이 아닐까 한다. 내가 생각할 때 (아이의) 자존감이란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기본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노동이라는 것은 그 행복한 삶을 만들어줄 요소 중의 하나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노동의 가치를 배우며,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인간으로서 사는 삶을 영위하는, 곧 행복해지는 길을 걷기 위함이다. 카를리토스가 바라보는 엄마의 파업이 그러지 않았을까? 엄마가 바라는 행복한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불평등한 처우에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생각하면 되니까. 엄마가 파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그 파업의 과정, 시위의 현장에서 보이는 진심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카를리토스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점점 더 자라면서 경험하게 될 세상의 단면일 것이기에 꼭 한 번은 봐야할 이야기다. 이 세상을 살면서 당연하게 노동자로 살아가는 부모, 어른이 되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아이가 같은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하는 게 이 책의 매력인 듯하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이에게, 그래서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노동자의 현실이기에...

 

 

그래, 우린 할 수 있어!

 

강철과 콘크리트 아래

흔들리는 밤의 그림자 아래 어른거리는

눈동자와 목소리와 팔, 팔꿈치와 무릎들

건물을 빛내고 우리 모두의 얼굴 위에 빛을 비춘다.

이름도 없이 조롱받고 무시당하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엄마와 아이들, 아빠와 삼촌들, 여러 가족들…….

그들이 모여 이 도시를 춤추게 한다.

정의롭고 두려움을 모르는 리듬에 맞춰

파업과 항의, 분노와 존엄의 춤을 춘다.

 

유리 사원 안에서 그들이 노동한다. 더러움을 닦아낸다.

진실된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다. 미래로 향한다.

그리고 선언한다. 이제 그만! 우리가 닦은 것들, 거룩하도다.

 

청소노동자였던 내 아버지 알폰소에게 바친다.

- 루이스 로드리게스의 시에서 -

 

 

카를리토스가 직접 만들고 거리의 시위 현장으로 나가 두 손으로 들고 있던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라는 팻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보다 파업이 왜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보게 하는 내용에 저절로 시선이 가게 하는 강한 메시지였다.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진하게 하는 그 불공평의 원인, 과정, 결과까지 한눈에 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분명하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찾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누구 한 명, 특정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돋보인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와 함께 혼자가 아닌 ‘함께’인 삶, ‘함께’인 세상을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더 반갑기도 했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에서 그 생생함을 각인시킨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 일어난 일, 모두가 힘을 합쳐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며 애쓰던 시간이 사실이라는 것. 그 결과가 너무 아름다워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저절로 자존감과 용기를 주고 있다는 게 감동이다. 비단 이미 성장해버린 어른들 세상에서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가 살아가는, 살아갈 세상의 현재 모습이다. 그래서 카를리토스의 엄마가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보여주는 이 모습이 엄마의 행복과 함께 카를리토스의 행복까지 주관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경험하는 사회에서의 올바른 태도를 배워가고 있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나의 일이 아니면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으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제를 같이 보게 해줘서 고마웠다. 마냥 재미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함께 읽으면서 만나게 될 이해가 절실히 느껴진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설명해주기 어려워 입만 벙긋거렸던 기억도 나고, 아이가 알아주었으면 싶은 부모의 삶도 같이 보여주고 있어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세상 속에서 이뤄가는 관계에 대해, 연대에 대해 이 책을 통해 더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황폐해진 삶, 장애에 대한 편견, 성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처법 등등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보는 시선을 말하는 <희망을 만드는 법> 시리즈의 아홉 번째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함이라는 취지로 시작되었던 이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알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웠던 이야기, 몰라서 그냥 지나쳤던 이야기, 살면서 조금 더 배려하고 배워야 할 일들을 계속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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