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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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아마도 내일까지는 계속 내릴 것이다. 비를 좋아하지도 않고, 개운하게 내리는 비도 아닌 오늘 같은 날에는 손에 잡히는 책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자칫 감정을 희한하게 건드리는 책을 만나면 이유도 없이, 활자 하나에 머릿속은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라디오를 통해 먼저 알게 된 이름이다. 이병률. 한밤중에 들려오던 그 감성이 남자 작가라는 말에서 한번 놀란 적이 있다. 남자 작가는 뭐 그런 감성으로 쓰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내게도 있었나보다. 나에게 한밤중의 라디오는 ‘여자 작가 = 발라드 노래 가사 같은 두 시간의 흐름’이었기에 말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이병률이라는 그 이름을 기억했을 때는 <끌림>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거의 7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또 어떤 가슴 떨림으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게 될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사뭇 궁금해지는 시간들이었다.

바람이 분다.
그래서 떠나게 되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 순간, 바람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사람도 불어오는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아마도 저자는 그렇게 떠난 게 아닐까 나 혼자 추측해보기도 한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여 떠나는 것이 아닌 그저 마음이 끌려서 내딛은 발걸음이 여행이란 이름으로 계속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목차도 페이지수도 없는 이 책이 그래서 더 여행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떤 페이지를 펼치면 그의 발걸음이 이런 공간에 닿았구나 싶어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고, 또 다른 페이지를 펼치면 그 길을 걸으면서 그가 했던 생각들과 그가 보았던 느낌들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공간과 그 생각들을, 그곳에서의 사람들과 풍경들을 담아냈다. 한눈에 봐도 이국적인 풍경들이 담긴 사진들, 누군가의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사물들, 이방인에게 다가서는 현지인들. 낯설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풀어놓고 사람을 대하는 순간들이 있다. 며칠 혹은 몇 달을 지내게 되는 그 낯선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누는 찰나가 크게 작용한다. 저자가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그래서 더 떨림을 가져온다. 그가 여행하는 그곳은 내가 여행하는 곳이 되고, 그가 만난 사람들은 내가 손잡고 악수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 풍경 하나하나에 내 눈이 담고 마음이 내는 소리는 마치 내가 그곳에서 저자 대신 걷고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기에…….
여행도 싫어하고 짧은 거리의 어딘 가로도 가기 싫어하는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만날 때면 숨이 잠시 멈춰진다. 누군가를 위한 현지 관광을 안내서가 아닌 저자가 그 순간순간을 기록한 이야기들 때문이다. 오직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을 가슴에 들인 것만 같아서.


# 36 무조건
꼭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꼭 만나게 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도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경우까지도.
......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은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당신이 좋다.
바람이 좋아서 떠난 길, 그 길 위에서의 살아있는 감각들을 온 몸으로 담아낸 것, 내 안에 남아있을 많은 것들까지.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전부일수도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길일 수도 있고, 당신의 웃음마저 좋아하게 될 일일 수 있는 것일 테지. 변화되어 가는 모습마저 좋아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나와는 다른 당신의 색깔,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신의 생각, 소통하지 못하는 당신의 많은 것들마저 좋아질 것임을 안다. ‘다름’을 알아가고 배워가게 만드는 그 순간들이, 장소와 시간과 계절의 이동으로 알아지는 것들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남아있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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