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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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 참 오랜만이다. 많은 사람이 아닌 척하며 살아가기 바쁜 시대에,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지 못해서 한숨만 푹푹 쉬곤 했다. 반복되는 한숨 소리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안 그럼 병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다. 그래도 그 말을 다 하고 살지 못해서 얻어지는 병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슴 속에 묻어두는 말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병으로 쌓여가는 것을 놓치고 있다가 항암 치료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오늘의 나는 그랬다. 해야 할 말을 못 해서 끙끙 앓다가 돌아와서, 몸보다 마음이 지쳐 곯아떨어질 것 같은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 소설 속 네 명의 여성에게서, 오늘의 나를 보았고, 세상 어디선가 나와 같은 오늘을 보낸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아에게 퇴근길 1시간이 종일 일에 시달리던 회사에서의 시간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만원 지하철, 휴대폰이든 뭐든 큰 소리로 틀어놓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그걸 견디며 얼른 목적지에서 내리기만을 바랄 텐데, 그때 한 여성이 큰 소리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는 아저씨에게 시끄럽다고 말한다.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틀어놓지도 않았겠지. 민폐를 끼치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아저씨를 물리칠 방법은 없을까? 그때 모아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는 여성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서 모아도 한마디 거든다. 시끄럽다고. 이상하다. 혼자 옳은 말을 하면 잘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도, 여러 명이 옳은 소리를 하니 찌그러진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참나. 모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던 여성, ‘시내속삭이는 모임을 만들고, 두 번째 회원으로 모아를 가입시킨다. 이 모임은 무엇을 하는 건가? 비밀이든 아니든,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한다라는 게 이 모임의 취지다. 뭘 속삭여?


이 모임의 세 번째 회원은 심판의 날을 외치며 예수를 부르짖는 수자였고, 네 번째 회원은 시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두리였다. 이상하게 모이게 된 네 명의 여성은 각자 숨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고, 이들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은 뻔하다. 시내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더 예민하게, 모아는 소란을 참아내며 내일도 한 시간 동안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것이다. 수자는 더 시끄럽게 예수를 외치며 거리를 누빌 것이고, 두리는 썩고 쌓여가는 쓰레기를 가족 삼아 그 집에서 나오지 않은 채로 살아가겠지.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지, 마치 말하면 안 될 것처럼 여기며 고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거 말하면 부끄러울 거 같은데, 남들이 흉볼 거 같은데, 그랬던 마음을 정말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텐데, 뭐가 어려워서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그 이야기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듣고 나니, 그냥 쉽게 꺼내도 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속삭이듯 말하니 중요한 일처럼 들리고, 그렇게 한번 말을 꺼내고 보니 속이 후련해지면서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내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누고, 이렇게 하는 말들이 소란스럽지만 중요한 속삭임으로 의미가 있다. 큰 소리로 외치며 따지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일. 간섭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한다.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늘 어렵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동시에 나의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거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속삭이는 일은 그 선을 지켰을 때 가능해진다. 모아의 말처럼, 속삭이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려면 말이다. 다 잘 될 거라고, 해피엔딩의 결말처럼 보이는 이 소설의 끝이 마냥 개운하진 않지만, 어차피 우리가 소설을 읽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것일 테니 아주 이해 못할 결말도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 상처도 치유되고 위로받기를, 삶의 긍정적인 자세를 배우고 싶은 바람으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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