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
강진아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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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의 성차경. 공부는 잘하는 편이고 특히 미술 실력이 뛰어나다. 딱히 좋은 관계의 친구도 없고 할머니와 둘이 사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다. 어느 날, 늘 혼자였던 차경에게 같은 반 도희가 친한 척 접근한다. 그렇게 가까워진 둘은 함께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함께 위조지폐를 사용하던 또 다른 친구 혜미가 죽게 된다. 놀랄 사이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차경은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혜미의 죽음이 꿈에서 계속 나올 정도로 불안한 날들이었다. 정작 위조지폐를 만들자고 먼저 말을 꺼낸 도희는 유학을 가버린다.


아니, 원래 도희가 차경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주변에 관심이 없던 차경이 도희의 호감을 몰랐던 걸까?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난 도희가 차경에게 친근한 척 구는 게, 이상하게 보기 싫더라. 뭔가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것만 같은 불길함이 번졌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서로 친해질 기회라고 생각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너무 나쁜 것만 먼저 봐서 그런지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희를 보자마자 나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서로 형편이 너무 다른 두 아이가 어떤 접점으로 친해질 수 있을까 잠시 기대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위조지폐를 사용하다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도망치듯 떠났다. 남은 차경이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살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어서 차경은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살았다. 대학 졸업반이 되고 유명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차근차근,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이 점점 짧아지고 있던 그때, 이제 인생 좀 피려나 싶어서 두근거렸던 그때, 도희가 나타났다.


왜 사는 일은 이렇게 팍팍할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좀 주면 안 되나? 못된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게 하면서, 왜 힘들다는 사람에게 더 힘든 상황만 던져주는 걸까. 그때의 기억은 차경의 머릿속에서 잊히지도 않아서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는데, 도희는 다시 나타나서 또 다른 위조를 요구한다. 이번에도 도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나? 안 하면?


사람이 벼랑 끝으로 몰리면 선택은 둘 중의 하나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거나, 눈앞의 상대를 벼랑으로 밀어서 떨어뜨리거나. 매 순간 안간힘을 써도 살아가는 일이 버겁던 차경은 완전히 변한다. 살아남기 위해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는다. 더는 머뭇거리면서 끌려다닐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차경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악몽을 떨치기 위해 발버둥 친 건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도 미술로 대학을 가기 위해 손끝의 모든 감각을 키웠다. 결국은 대학 등록금이 문제가 되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형편을 끝내기 위해서 차경의 재능은 훨훨 날아야 했다. 대학 지도 교수는 엉망인 사람이었지만, 차경은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 대놓고 요구 사항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완성된 작품을 진열하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을 지켜내야 했다. 거기까지 가는데 저질렀던 범죄는 물론 해서는 안 될 짓이었지만, 진짜 인생을 만들기 위해 달리던 그녀가 버티는 방식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안 될까? 진짜를 가질 수가 없어서,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 가짜라도 만들어야만 했던 상황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이해해주고 싶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 오지랖인가 싶기도 하다.


처음 위조지폐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에, 들킬지 안 들킬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들키면 망한다. 아니, 인생 끝장이다. 안 들키고 넘어갈 수 있다면 차경의 실력을 검증하는 순간이 될 테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이 순간을 들켜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죄의 대가를 얼마나 크게 치러야 하는지 한 번쯤은 겪어봐야 세상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어야 하는데, , 어렵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세상을 원망하고 싶기도 하더라. 그래서 더 갸우뚱하면서 읽게 된다. 이 소설이 그냥 드라마 같은 느낌인지, 한 편의 스릴러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어서.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의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묘하게 다르다. 고등학생 성차경과 회사의 입사 직전의 성차경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같은 사람이지만, 표정에 나타난 분위기와 단단함이 다르다. 진짜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만들어준, 가짜를 덮어버릴 수 있는 진짜 같은 표정이, 지금 성차경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생존의 문제만 남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그 생존을 위해 욕망이 깃든 사람의 표정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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