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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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좋고 나쁘다는 명확한 구분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하루가 쌓이면서 늘어가는 나이만큼, 사고가 넓어지고 더 성숙한 어른이 될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만화 속 주인공들처럼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앞으로 이 생각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여러 만화가가 한 자리에 모여 인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쳤다. 다양한 개성만큼 각 이야기의 매력도 달랐지만, 인권이라는 한 가지로 모이게 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김보통의 최후의 보호막은 지금 내 주변의 몇몇 사람이 제조업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또는 외부의 작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에 많이 공감했다. 대마왕이 존재하는 세계여서 판타지의 재미를 상상했는데, 그 세계 안에서도 여전히 산업재해는 존재했다. 보석을 캐는 노동 현장에서 재해가 일어나고 노동자는 사망하기에 이른다. 처음부터 보호조치가 되지 않은 현장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런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죽은 노동자를 대신해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고, 회사는 이익을 맞추면 되는 일이 너무 익숙하다. 우리가 아는 노동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책에서 고발하듯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가슴은 이 추위에 더 추워지기만 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수수께끼라는 작품 속 김정연 작가는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누군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 이런 깊은 속내를 담아내는 돌봄의 문제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일상의 곳곳에서 돌봄은 필요하다. 아픈 노인, 잘 성장 시켜야 할 아이, 활동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등 마치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란 듯이 혼자서 불가능한 일이 너무 많다. 알고 있지만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관심 두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문제였다.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 돌봄을 위해 본인의 일상과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사회가 더 깊게 들어줘야 한다고.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없고, 국가와 사회가 함께 참여해야만 그 돌봄 현장의 많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이레, 요니요니 작가의 청첩장 도둑역시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정상가족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쎄, 내가 이 작품 속 가족 안에 있다면 선뜻 다른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살아가는 기준에 올려놓은 목록을 불러왔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마주하게 될 다름을 먼저 떠올리기.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게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우리는 다르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어렵지만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특이한 접근으로 느껴졌던 게 구희 작가의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이었다. 10년 후의 우리는 4월부터 열대야가 찾아오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구의 이상으로 폭염이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그 폭염을 견디는 일은 언제나 어려웠다. 덥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에어컨을 끼고 살았던 올 여름이었으니까. 이것도 지구를 상하게 하는 일일 텐데, 미안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 인권과 폭염이 무슨 상관이기에 여기에 끼어 있느냐고? 나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작품의 뒷부분에 작가가 언급한 것을 보고 이마를 쳤다.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문제라고, 우리 모두가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가지만, 그 양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그래, 그러겠지. 선진국이, 큰 회사가, 부자가 더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한단다. 자원 분배나 탄소 소비의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기후위기가 만든 기후재난은 또 사회적 불평등에 노출된 그대로 겪어야 하는 양이 다른 악순환이 반복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본인의 진로를 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더 파고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든 지구의 위기에, 힘든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는 지금의 현실을 보라고 말이다.


엄마가 사는 곳은 여기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젊은 인구보다 나이든 노인이 많은 동네. 시댁은 여기에서 차로 4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데, 마을 이장이 가장 젊다고 한다. 그 이장의 나이가 곧 환갑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대로 보여준다. 김금숙의 은 초고령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일도 많았기에 이 작품이 적나라하게 현실을 담았다는 감탄만 나오더라. 거기에 지역 소멸이라는 문제가 겹치니 이건 공포영화보다 더 괴기스러웠다. 저출산 문제가 초고령사회의 문제와 닿아 있고, 지역 소멸 속에 노인 문제가 함께 한다는 것.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이렇게 또 마주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암담하다. 앞으로 내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채워질까. 정영롱 작가의 끄나빠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를 짚어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 이주민이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정착하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그 가정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들은 자라면서 타인의 시선을 받곤 한다. 피부색이 조금 다를 뿐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인데, 이방인을 대하듯 할 때가 많다. 인종의 차별이 왜 필요한가?


마지막 작품 참교육의 화두는 정말 오랫동안 논쟁이 될 듯하다. 가해자의 인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사적 제재가 왜 문제가 되는가 하는 일은 계속 언급되어 왔다. 잔혹한 범죄 앞에서 뉘우침도 없이 건들거리며 인터뷰 하던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하고, 법이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결과에 사적 제재를 시도했다는 뉴스가 생각나기도 한다. 훈육이라는 말로 행한 폭력이 정말 참교육이었는지 묻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그 고민을 하는 작품 속 선생님들의 말에 시선이 머문다. 폭력이 폭력을 낳을 때, 남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멈추어야 할 때, 해서는 안 될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게 답인 듯하다. 참교육의 진짜 의미를 우리가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다. 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이 책이 만들어졌을 테고, 이 작품 속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들의 만남이 의미 있다. 우리가 버려야 할 편견과 차별, 저기 어둡고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내고, 우리가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작가들이 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면, 독자인 나는 그 목소리를 가슴에 한 번 더 새겨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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