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상대는 나를 모르지만, 마치 나는 그를 잘 아는 듯한 느낌에 익숙한 이름. 문학 기사에 적힌 작성자의 이름을 먼저 살펴보게 되는 저자의 글에 시선이 멈춰져서 읽곤 했다. 그저 신문의 한 면을 담당하는 기자 정도로 여겼다가, 매번 어떤 문학 작품을 검색하면서 그의 글로 이동할 때마다, 차곡차곡 그의 이름이 내 기억에 쌓인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모든 글을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가 써 놓은 글을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문학 작품을 읽고 기사를 쓰면서 이 분야에 뿌리내린 내공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겠더라. 더 자주 그의 글을 만나보고 싶었으나 이놈의 게으름은 그저 우연처럼 걸리는 그의 글을 마주하는 데 그쳤다. 그런 상황에 만난 이 책이 그저 반가웠다. 일부러 찾아서 읽기는 어려워도, 그의 문학 기자 생활 30년을 아우르는 글을 모아 놓았으니 고마울 뿐이다.


이번 출간작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책장에 오래 두고 종종 꺼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구성이 다양하면서도 문학이란 분야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담아내서, 문학을 다양하게 맛보고 즐기게 해주는 기분이랄까. 소개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여, 일단 펼쳐보고 문학 작품 만나는 재미와 감동, 저자의 설명, 한국 문학의 역사까지 두루 엿보는 즐거움의 시간이라고 해야겠다. 


1, 작가와 작품에서는 오랫동안 사랑 받은 작가와 작품을 이야기하며, 사적으로 만난 시간까지 문학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박완서 작가와 이별하는 시간에는 추모의 글을 담기도 했다. 가장 의외였던 건 김소진 작가의 이야기였다. 같은 기자 생활 하면서 똑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 책을 세 권이나 낸 게 놀라웠다는 것. 나 역시 그 시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기만 했다.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취재하던 시절이었으니 시간이 더 모자랄 것 같은데,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왔다는 꾸준함이 그의 작품 세계의 바탕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의 황현산 작가의 인터뷰는 그의 모든 작품을 만나보고 싶게 했다. 유감스럽게도 찾아보니 그의 작품을 완독한 게 하나도 없더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목록을 만들어두고 한 권씩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남긴다.


2부, 쟁점과 인물에서 언급한 노벨문학상에 관한 생각은 앞으로도 많은 작가와 노벨문학상 관계자들이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져준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문제는 저자가 언급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변이 없다면 반년 후에는 올해의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겠지. 많은 후보가 언급될 테고, 몇몇은 수상을 기대하며 발표의 순간을 기다릴 거다. 누가 받아도 그에 걸맞은 작품으로 인정받았을 테지만, 스웨덴인 심사자 여섯 명이 결정하는 수상 작가는 정말 전 세계의 작가를 대상으로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아무래도 유럽 문학에 익숙하기에 특정 문학 작품들에 더 마음이 쏠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는다.


3부 칼럼에서 저자의 다양한 시선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역시 문학 작품 소개와 더불어 이야기를 꺼낸다. 그중에서도 코로나 시대의 문학은 정말 많은 공감을 담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21세기의 집단 감염병이라니, 말 그대로 과거의 어느 시대에, 소설에서나 봤을 듯한 상황을 현실에서 겪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저자는 특히 문학의 역할을 이 소설에서 다시 확인한 게 아닐까 싶다. ‘입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기 위하여라고 이 소설을 설명하는 부분을 발췌해서 들려준다. 이 책의 1부에서 소개했던 조세희 작가가 왜 후속작을 완성하지 못했는지, 어떤 고민으로 오랜 세월 수정을 거듭하며 붙잡고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것과 닮았다.


4, 서평에서는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더 채우는 시간이었다. 알지만 읽지 않았던 작품, 몰라서 접근하지 못했던 작품, 내용을 듣고 보니 꼭 한 번은 읽어보고 싶은 작품 등 다양한 작품 소개를 담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를 옆에 두고 오랫동안 읽지 않은 게 생각나서 눈앞에 꺼내두었다. 아마 그때, 나는 나의 아버지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소년 시절에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알았다,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같을 수 없음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은 몸부림이었을까. 김애란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참, 많은 감정을 뒤섞이게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자가 소개한 달려라, 아비작품 속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마지막 부분의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많은 부분에서 올해의 책,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음에도, 많은 독자가 읽고 여러 번 증쇄를 거듭했음에도, 문인 주소록에 담기지 못하는 작가라는 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단편으로 인정받는 분야에서 장편으로 승부를 내는 작가를 차별하는 건지 뭔지,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굳이 이런 구분이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그저, 이 말은 할 수 있겠다. 나는 장르소설도 좋아하고, 로맨스 소설도 좋아해.


5부와 부록에서는 이미 작고한 작가의 이야기와 북에서 만난 작가들을 소개했다. 한국 문학사의 큰 줄기를 대변한다는 그의 부고 기사는 한 시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엄숙한 풍경이라고 했다. 작가의 이력을 듣는 것 같기도 했고, 그들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작가와의 인연도 같이 소환되었다. 독자로 보면 그냥 멀리 있는 작가, 작품으로 만나는 정도가 전부였다면, 저자는 그들과 대화하고 작품 설명을 더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내가 읽은 한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고 마음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기뻤다면, 저자는 그 문장 너머의 이야기까지 듣는 경험으로 작가와 작품을 더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싶은 부러움도 살짝 생긴다. 북에서 만난 작가들 소개도 특이하다. 시대가 만들어준 평화의 분위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런 기회 또 없을 때를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단순히 문학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어서 좋았던 글들이고, 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짊어져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 듣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 역시 문학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일단 지루하고 재미없으면 완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감히 저자의 문학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많은 작가가 고민하는 것들, 문학으로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들, 이 시대의 문제를 작품에 녹여내고 싶은 간절함을 모르는 건 아니기에,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은 연대의 마음을 읽는 듯했다. 저자가 만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 유작이 되어버린 이야기는 씁쓸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붙잡고 있는 작품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담으려고 했으나, 또 변화하고 그렇게 변화하는 세상 속의 사람들 행태가 못 마땅해 성토하듯 꺼내놓은 말들은 차마 문장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야기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저자의 문장에, 이 책에서 소개된 많은 책을 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낳는다. 작가와 작품 속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독자에게 다가와 만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을 테니 말이다.


#이야기는오래산다 #최재봉 #한겨레출판 #비평 #소설비평 ##책추천

#하니포터 #하니포터_이야기는오래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