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도감 -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곳
엔야 호나미 지음, 네티즌 나인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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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그렇게 오래 다녔어도, 목욕하고 나와서 바나나우유 하나 입에 무는, 그런 추억이 내게는 없다. 그냥 본전 뽑고 가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피부가 빨개지도록 때를 밀던 기억은 있다. ^^ 지금도 비슷하다. 목욕탕의 후끈한 분위기와 실컷 때 밀고 나오면 축 늘어지는 그 노곤함을 즐기는 정도. 그것마저도 이제는 귀찮아서 잘 안 다니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 혼자서는 아니고 엄마랑 항상 같이 다녔는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와 계속 다니던 엄마 집 근처의 오래된 목욕탕이 지난봄에 마지막 영업을 하고 폐업했다. 다른 사람이 인수하기를 기다렸지만, 적당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문을 닫고 말았다지. 어쩌나. 다른 목욕탕을 뚫어야지. 곧 서늘해지는 계절이 올 텐데, 벌써 걱정이다.

 

일상에 너무 가깝게 닿아 있는 목욕탕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일본의 온천 문화를 들어보긴 했어도, 실제로 그 문화에 스며들지 못한 터라 막연했다. 저자가 그림과 세세한 소개로 들려주는 목욕탕 이야기는 너무 신기했고, 너무 자세해서 마치 내가 그곳에 다녀와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친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일본 사람의 목욕탕 진심에 새삼 놀랐다. 거창하고 고급스러워서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 같은 느낌이 좀 더 진했다.

 

이미 부제에서 말해주었듯이,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의 이야기다. 저자가 추천하는 순서는, 처음 초심자 코스부터 상급자 코스, 마스터 코스, 인간미 코스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목욕탕이 처음이어서 서먹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초심자 코스,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즐거움으로 목욕탕 애호가를 만족시킬 상급자 코스, 궁극의 최고 목욕탕을 만날 마스터 코스, 목욕탕 주인의 열정까지 느껴지는 인간미 코스. 하지만 굳이 이 단계나 코스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목욕탕을 즐기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보다는 소개해주는 각 목욕탕을 얼마나 더 잘 즐길 수 있을지 저자가 전달하는 팁을 눈여겨보는 게 좋겠다.

 

저자가 소개해준 24곳의 목욕탕 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곳이 있다. 첫 번째는 목욕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닛포리 사이토유이다. 주인이 삼대째 이곳을 경영하고 있으며, 2015년 낡은 건물을 개축하면서 더 정성을 쏟았다. 냉온욕을 반복하면서 몸이 풀어지고 기분 좋을 때, 카운터로 향해 맥주를 마시는데, 이미 노곤해지고 뜨끈해진 몸 안으로 꽁꽁 언 맥주잔에 따라진 시원한 맥주가 몸 안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원함이 이 더위에 허덕이는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상상만 해도 시원해 죽을 것 같다. (이 부분 읽다가 냉장고로 달려가 캔맥주 한 개 당장 꺼내왔다) ‘닛포리 사이토유목욕탕에는 여성 한정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를.

 

두 번째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유가 와고코로 요시노유이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 가까이에 있다는 게 끌린다.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온천으로 검색해서 찾다 보면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던데, 나처럼 뚜벅이나 대중교통으로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전혀 도심 속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목욕탕을 만나면 더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서도 시원한 생맥주를 판매한다. 생맥주를 주문하면 작은 안주도 함께 나온다고. ^^ 로비에 마사지 코너도 있다고 하니, 뜨끈한 물에 씻고 나와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켜고, 마사지 받으며 누워있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어쩌다가 저자는 목욕탕을 탐방하며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에게도 일상의 피폐함이 찾아왔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극복하려 애쓰던 중, 목욕탕을 알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거다. 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풀어지는 몸에 감탄하지는 않았을까. 이 즐거움에 빠진 저자가 SNS에 한 장씩 올린 목욕탕 그림은 좋은 반응을 일으켰고, 좋아서 즐기던 게 일이 되어버렸다. 200곳이 넘는 목욕탕을 찾아다니고, 줄자로 목욕탕 내부를 재어가며 실제처럼 그려낸 정성에 반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 그려낸 목욕탕 그림을 보고 있자니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그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목욕탕 지배인으로 취직했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웃었다. 읽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그때 경험한 회복의 방법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얼마나 즐거운 인생 이야기란 말이야.

 

리뷰에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목욕탕의 매력과 특징이 가득하다. 대중목욕탕 이용하는 방법부터 가격,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욕법, 대중목욕탕 문화 같은 정보가 알차다. 저자 본인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더 신뢰 가는 소개였다. 나중에 어느 날 일본에 가게 된다면 목욕탕 투어 일정을 짜도 좋을 것처럼, 일본 도쿄 근방의 숨은 보석 같은 목욕탕을 소개하는 안내서면서, 목욕탕에서 얻은 휴식과 안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은 여정이다. 미치도록 목욕탕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목욕탕에 가게 된다면 내 앞의 온탕에 퐁당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독자로서, 이 책은 반가웠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저자가 그려놓은 목욕탕 도면 같은 그림에서 풍기는, 독자를 그 목욕탕 안으로 데려다 놓은 마법을 부린 시간에 감사한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더위에 지치고 피곤한 내 몸이 확 풀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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