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 - 감기에서 암까지 의학이 더 쉬워지는 생생한 이야기
고병수 지음 / 바틀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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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보던 수술 장면은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집게로 저렇게 집어서, 양쪽 혈관을 연결하고, 피부를 덮어 또 꿰매고. 인간의 피부가 저렇게 두꺼울까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연결한 혈관을 통해 피가 흐르게 되는 게 놀랍기도 하다. 처음부터 의술이 이렇게 진화하진 않았을 테다. 정확하게 증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병명은 물론이고, 치료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환자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그 연구나 치료 방법을 찾아보면서 정착했을 방법이 지금 우리가 아는 의학이겠지.


그 분양에 종사하거나 연관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잘 알지 못할 많은 분야 중의 하나가 의학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치료받는 게 전부인지라, 이런 책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흥미롭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 역시 영화광으로, 영화 속 장면들과 의사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에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있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에서 의학의 단면을 발견하는 건 물론이고, 오늘날의 치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학의 역사까지 한꺼번에 듣게 된다. 그 안에 우리에게 익숙한 의학 지식이나, 바르다고 믿었던 의학 상식의 오류까지, 의학과 연관된 사회 정치적 문제까지 다양하게 풀어낸다.


영화 <맨 프롬 어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을 통해서 원시 인류의 상처 치료와 질병을 말한다. 아마도 원시시대에는 감염병과 외상이 많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알파 : 위대한 여정>으로 인류 생존을 위한 싸움을 연상하게 한다. 아마 다치고 부러지고 하면서 수술이란 과정이 필요했을 테고, 부목을 대고 묶어주어 고정해서 뼈가 다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행해진다. 감염으로 썩어가는 부분을 잘라내는 절단술도 있었을 거로 추측한다. 이집트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고대 문명의 의학을 확인하기도 한다.


정말 흥미롭게 봤던 부분이 2장인데, 정신의학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에는 정신질환이 귀신 들린 상태라고 생각해서 무속인이나 사제 등이 치료했다. 가톨릭의 구마 의식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점차 병으로 인식되었으나, 그때만 해도 신경증이나 타고난 기질 탓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정신질환이 뇌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셔터 아일랜드> 등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이마앞엽 절개술로 치료하려고 했다. 긍정적인 치료법일 수도 있지만, 워낙 섬세하고 위험한 수술이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환자를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아마 이 방법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발작을 일으키거나 소란스럽게 했던 환자가 조용해지니, 나름 완벽한 치료법으로 여겼을 테다. 하지만 이 수술로 고요해진 환자는 치료된 게 아니라, 뇌의 어느 부분을 잃고 정상적인 사고나 대화나 불가능한 상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치료법이 아주 많이 틀렸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게 아이러니다. 분명 성공적인 부분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참호족과 동상은 증상이나 위험성이 비슷해서 혼동할 수 있다. 동상은 얼어버릴 만큼 아주 차가운 조건에서 생기는 반면, 참호족은 15도 안팎의 따뜻한 온도에서도 생길 수 있다. 동상은 신체의 말단인 귀나 손, 발이 손상되지만, 참호족은 습한 군화를 오래 신어서 생기는 것이라 발에만 발생한다. 그리고 동상은 감염과 관련이 없지만, 참호족은 세균 감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차이도 있다. (133페이지)


전쟁으로 더 심각해진 병도 있다. 이 책에서 참호족이란 병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병을 잘 알려준 영화가 <저니스 엔드>라고 하는데, 전쟁통의 참호 속에 오래 있으면서 공기가 통하지 않은 군화 속에서 습한 상태에 무방비가 되어버린 발이 썩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때 세균 감염이 되고, 항생제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던 환경에서는 발을 자르거나 패혈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영화 <마리 퀴리>에서는 딸 이렌과 함께 엑스레이를 설치한 구급차를 만들어 1차대전의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차처럼 보이던 이 구급차는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구급차 형태를 갖추었을 것으로 본다.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에는 암이 있다.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이 높지 않은 췌장암을 다룬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에서부터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는 일본의 오랜 풍습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동물의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또 중요 장기를 먹으면 영혼이 그 사람 속에 머문다는 미신도 있다고. 그러니 병을 고치기 위해 췌장을 먹겠다는 의미인데, 제목만 보고 이 영화에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말기 암 환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 <아들에게>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해서 더 진지하게 보게 된다. 난소암을 앓는 엄마가 난소와 자궁까지 적출했지만, 더는 어떤 치료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강한 진통제만 남았다. 그녀는 아들 토미에게 남길 말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마지막 정리를 준비하는데, 이걸 지켜보는 독자(관객)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말기 암 환자의 심리나 존엄사(안락사) 문제까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치매를 다룬 영화는 가족 중 한 사람이 기억력 상실을 겪으면서 지인이나 날짜 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된다. 더 파더(2020)는 치매에 걸려 시공간을 혼동하는 노인의 눈으로 영상이 만들어진 독특한 전개 방식의 영화다. 그리고 한국 영화인 로망(2019)은 노부부가 함께 치매에 걸린 상황을 그려내면서, 대한민국 노인들의 삶이 어떠한지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미국의 유타주립대 노인의학 연구팀에 의하면, 부부 중 한쪽이 치매를 앓으면 그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배우자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6배나 높고, 특히 아내가 치매에 걸리면 남편의 치매 위험은 11.9배나 높다고 한다. (181페이지)


어쩌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의학 상식은 많이 잘못된 정보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안에서 상식으로 지식 습득하여 병 앞에서 올바른 선택과 처치를 제때 해내고 성공적인 치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자꾸만 변하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병은 마치 우리 안심을 공격하듯 휩쓸려 오기도 한다. 우리가 3년여의 세월 동안 겪은(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 19 역시 어설프게 들은 지식으로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떻게 지식을 습득해야 올바른 건지도 막막하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갑고 고맙다. 우리 일상에 부담스럽지 않게 존재하는 영화라는 매체로 의학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의학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로 본 의학 기술, 사람의 마음, 사회가 이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까지 다양한 시선을 담아낸다. 영화와 의학을 잘 조합해서 의학과 인간의 이야기를 전문적이고 따뜻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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