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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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카(큰 언니의 아들)10년 가까이 키웠다. 그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같이 살았으니,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키웠다는 말이 맞겠다.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함께 사는 동안, 가족 모두가 바라는 건 한 가지였다. 이 아이의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자라주기를,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고개 숙이지 말기를, 공부까지 잘해준다면 앞으로의 성장에 햇살이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큰 조카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자기 엄마와 살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리는 걱정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다면, 키우는 게 당연하다. 낳았으니 키우는 게 의무일 테고, 사회적인 책임을 배제하더라도, 미성년 아이에게 일어난 일 대부분 역시 부모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누구도 큰 조카가 자기 엄마랑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가 큰 조카를 돌봐야 했던 이유와 같다. 낳았다는 것 말고는 부모의 자격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부모의 자격이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는 거냐고 따지고 든다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가 아는 일반적인 생각의 기준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의 여의치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모의 역할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 그게 소녀의 부모였다.


어느 여름, 아빠의 트럭은 먼 친척 집 마당에서 멈추고, 차에서 내린 소녀는 그 친척 집에 맡겨진다. 아빠는 소녀의 손 한번 잡아주지 않고,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남겨두고 떠난다. 사랑스러운 딸을 두고 가는 아쉬움은 하나도 없이, 마치 귀찮은 일 하나 해결했다는 태도였다. 소녀의 엄마가 곧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돌봐야 할 아이 하나 남에게 떠맡기고 가는 거였다. 남의 집 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어려운 형편이라 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또 태어날 새로운 아이의 등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가 많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사랑 듬뿍 주면서 키우는 부모도 많더라만, 왜 다 주지도 못할 사랑에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것인지. 태어날 아이가 그 집에서 어떻게 자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쓰리다. 킨셀라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부족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자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소녀의 부모가 소녀를 친척에게 맡긴 것을 화내야 하는데, 이 상황이 소녀에게 어떤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킨셀라 부부가 소녀에게 보여주는 진심과 사랑에 울컥해지기를 여러 번, 이 부부에게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소녀와 킨셀라 부부,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궁금해질 뿐이다. 소녀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따뜻함이 이 부부에게 뿜어져 나온다. 아마도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낯선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관심조차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이쯤 되니 소녀의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관심 없어진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소녀가 무엇을 발견하고 이 짧은 시간 동안 어떤 성장을 이뤄낼지 기대되는 건 나만은 아닐 터. 어차피 소녀의 부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니, 소녀가 킨셀라 부부의 아이가 되는 것도 좋은 거 아닌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나는 도저히 이 부부의 진심과 다정함을 놓을 수가 없어서 그런지, 자꾸만 소녀의 현재와 미래에 이 부부의 인성이 그대로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멈추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가 마주한 것은, 차에서 내리면서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아버지와 같은 거였다. 소녀의 변한 옷차림에 부러워하면서도 어두운 표정의 언니들, 이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어린 동생들, 킨셀라 부부에게 고마움도 모르는 부모. 그 분위기 속에서 불편해진 킨셀라 부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뗀다. 이렇게 끝인가? 소녀는 부모에게 남겨지고, 킨셀라 부부는 떠나고. 정말 이렇게?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에게 훈련된 달리기는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떠나는 부부를 향해 뛰어간다. 아저씨를 끌어안으며 흠뻑 취한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부르는 그 이름을 외치면서. “아빠아빠이지만 아빠가 아니고, 아빠가 아니지만 아빠인 존재들을 부르며 소녀는 온 마음을 다한다. 그 여름 킨셀라 부부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소녀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을 의미들을, 사랑과 따뜻한 마음을.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거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더해진 노력,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항상 고민하는 태도가 부모의 자세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면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곧 서른이 되어가는 큰 조카는, 경제적인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늦은 졸업을 했고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어서 학교에 다녔으니, 이 아이의 경제활동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된 셈이다. 이제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기반을 다져야 하고, 어려운 시기에 취업 활동을 계속했다. 며칠 전,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다들 눈물바다였다. 우리 가족에게 항상 아픈 손가락이었고, 누구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기에 늘 걱정이었다. 이제는 취직도 했으니 좋은 일만 있겠지 싶은 마음에 안심한 것도 잠시, 부모라는 존재는 이 아이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고 있다. 입버릇처럼, 큰조카가 고아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오르지만, 부모가 있는 아이에게 나는 그저 친척인 현실이 눈앞에 있을 뿐.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남동생은 냉정하게 말한다. 이 아이의 성장에서 우리가 안부를 묻고, 가끔 밥을 같이 먹거나 용돈을 줄 수는 있어도, 이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이 아이가 자기 인생을 먼저 챙기기를, 도움에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잡아줄 어른으로 존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 생각하곤 한다.


한때 외가의 가족들에게 맡겨졌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이모 삼촌과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뭔가 더 해줄 게 없는지 찾게 하는 존재로 남아있다는 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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