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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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저자는 이 책 외에도 라이더의 삶과 현실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었다. 플랫폼 구조에서 라이더로 살아가는 일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고, 그렇기에 더 궁금했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을 살펴보니 이 책이 새삼 무엇을 더 얘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상하다. 아마도 많은 라이더가 배달 현장의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고 해도, 매일 새롭고 희한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배달 앱과 라이더 사이의 관계와 수입 계산 구조에서부터, 속도전이라고 할 만큼 배달 업무의 1순위가 얼마나 많은 위험을 낳고 있는지, 그 이유로 산재의 발생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로 산재가 생각보다 많이 신청되지 않는 이유 역시 이 책이 말하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뛰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그곳의 이야기, 플랫폼 노동의 진실이 이렇게 들려온다.


많은 사람이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있을 때도, 나는 이용하지 않았었다. 두 식구 먹을 것 주문하려니 배달비가 아까웠고, 배달비를 부담하며 먹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게 없었다. 그러다 거의 2년 전부터 배달 앱을 종종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마저도 배달보다는 포장 위주로 이용하다 보니, 우리 집에 배달오는 기사님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었다(비대면 배달이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배달 기사(오토바이)를 마주하는 때는 도로에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갈 때나.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분들이 어딘가로 배달하러 가는구나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위험하게 다니다가 언젠가 큰일이 나겠다하는 걱정과 좀 천천히 안전하게 가지 그러냐는 원망 비슷한 마음이었다. 안다. 교통법규 지킬 것 다 지키고 배달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고 보니, 그들을 마냥 이해한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배달 이용자가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고 현관문 앞에서 라이더를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가, 단순히 라이더의 과격한 운행 습관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단순해 보이는 배달 주문부터 배달 완료까지의 과정에 플랫폼 구조가 있다. 여러 위치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곳이다. 그곳에는 개인도 있고 기업도 있다. 저자는, 배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배달플랫폼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되었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었는데도, 저자가 설명해주는 배달플랫폼 구조를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서로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만들어놓은 것 같은 플랫폼 구조가 많은 사람을 위험에 노출한다. 특히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배달은 더 익숙해지고 있었기에, 사고의 위험도 더 많아진 게 사실이다. 더 많은 주문, 더 빨리 배달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으니까. 분명 하나의 시장이 커지고 발달하는 건 나쁘지 않을 거로 여겼는데, 이 배달 시장은 커지기만 하는 게 문제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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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깃한 이 구인광고를 바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아무리 작은 회사에 이력서를 내려고 해도, 자격증이나 경력 사항을 채워 넣어야 하는 건 기본이었으니, 경험이 없어도 이동수단을 정하지 않고도 누구든 가능하다는데 말이다. 이건 구직이 절실한 사람을 사고의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현실에서 사고를 많이 겪는 사람은 초보 라이더라고 한다. 난폭운전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고를 겪는 일이 왜 일어날까? 보통 출근 첫날부터 이주 사이에 많은 사고가 일어난다는데, 이는 미숙함 때문이었다. 도로를 잘 모르고, 계절과 날씨, 그날의 차량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를 경험하지 않았던 게 원인이다. 그러니 위험을 감지할 수 없고, 사고를 피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서도 사고는 생긴다. 거기에 더해진 플랫폼 기업의 윤리적인 문제까지 빼놓을 수 없는 사고 원인이 된다.


배달이 늦다고 다그치는 게 소비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달 재촉 1위는 음식점 사장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음식 배달이 늦으면 손님에게 항의를 받고, 거기에 혹시라도 불어터지거나 다 식은 음식이 도착해도 항의를 가게로 할 테니까. 그럼 사장님은 다시 배달노동자에게 화를 낼 테고. 이 화는 돌고 도는 것만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음식점 사장님이 직접 배달노동자를 고용하면 될 텐데(식당에 직접 고용된 우리 예전 방식으로 말이다), 그건 인력관리나 비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게 사장은 배달대행업체와 위탁계약으로 배달노동자를 마주한다. 책임은 피하고 비용은 절약하고 싶고, 일하는 건 마치 자기 가게에 소속된 노동자처럼 일해주길 바라는 거. 그게 문제가 아닌가.


배달료의 문제도 만만하지 않았다. 가까운 곳은 적게, 거리가 좀 먼 곳은 많이, 받는 게 배달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거다. 배달료가 도박판이 되고, 배달 노동이 사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미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배달료가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더 높은 비용이 발생하니 배달료가 도박판이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구조였다. 하지만 이게 옳기만 한 구조도 아니지 않은가. 그건 배달노동자가 사용하는 앱에 많은 단서와 문제점이 있었고, 이들은 이걸 실험하면서 배달 콜을 하는 AI의 문제와 함께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배달 노동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 또한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산재보험의 변화였다.


도로의 위험이나, 플랫폼 기업의 윤리성, 여러 가지 배달 노동 구조의 문제가 도로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마음 위에서 생기는 사고에 감정이 폭행당하는 건 금방 회복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손님의 폭언은 물론이고, 아파트 배달에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입주민의 요구, 더위와 추위에도 가게 안에서 픽업 물건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가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는 것), 급한 생리적 문제에도 가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라이더가 한두 명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가게 화장실을 누구나 이용하다 보면 또다시 발생하는 비용에 관해 가게 사장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모든 라이더가 항상 그 가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배려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각자의 이해관계로 성립되는 플랫폼 배달 노동의 구조에서 책임의 자리는 누가 앉아있어야 하는지. 모두가 그 책임의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정작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배달 노동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떠안게 되는 건 아니었는지 거듭 묻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 저자가 언급한 해결방안이 있다. 물론 그게 완벽한 답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이 직접 겪고 호소하는 방법이니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용 형태와 임금체계가 오토바이 속도계를 조절하는 만큼 이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며, 라이더를 위한 최저임금제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플랫폼산업의 혁신을 위해 이륜차 면허와 관리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륜차의 원활한 운행을 위한 도로 정비도 살펴봐 주고, 노조법 개정으로 라이더를 보호에 힘써 주기를. 특히 마지막 장에 배달 라이더를 위한 산재보험 사용설명서는 라이더분들에게 좋은 팁이 될 것 같다. 신청 방법을 몰라서도 접근할 수 없던 산재보험 신청 절차를 아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배달 주문은 우리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편해진 만큼, 우리가 불편했던 일을 대신에 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가 억울하지 않게,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게, 위험과 책임에서 공정하게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많은 이들(플랫폼 기업이나 업체 사장님, 배달라니 더, 주문하는 소비자)에게 이 구조의 현실과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개선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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