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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페이지)
대문 밖 아버지는 호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잘 사고, 얘기도 잘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동네 경로당 출입문을 열고 마주한 장면은,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버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그런데 집에서는 왜 그래? 웃기는커녕 욕하고 화내고 큰소리만 치던 기억이 전부였는데, 지금 내가 본 건 뭐지? 뭔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에 더 오래 고민하진 못했다. 나중에 그날의 장면을 가끔 떠올렸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소설 속 평생 빨치산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는 딱히,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삶이 조금 평탄했을까.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아버지의 혁명은 계속되었으나 함께한 동지들은 죽어갔고, 아버지의 위장 자수 계획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가 바라던 ‘평등’은 지금 우리에게 닿은 세상일까? 일상의 많은 부분이 평등하게 이뤄진 세상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혁명에 힘을 쏟았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아버지의 ‘빨치산’이라는 수식어는 작은아버지의 인생을 무너뜨렸고, ‘나’의 인생에도 도움 될 게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노동절 새벽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긴 생을 그대로 담아낸 것에 놀랐다. 누군가의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평생 형을 원망하며 살아온 작은아버지가 이 장례식에 등장할지 궁금했다. 형의 죽음을 알았지만, 대꾸도 없이 끊어버린 전화는 그의 닫힌 마음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고, 그러니 증오하는 이의 죽음 따위 애도할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확인하고 싶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딸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에게도 평생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를 준 이였기에 말이다. 반면에 아버지가 구례에서 사귄 이들은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꽉 채운다. 누군가는 사흘 내내 머물면서, 누군가는 바통 터치하듯 찾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의 추억을 꺼낸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면서도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온 이가 있는가 하면, 다문화 소녀의 인생 한 장면에 기록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혁명을 위하는 중에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며 딸 같은 나이 청년의 삶도 바꿔놓았다.
그들이 소환하는 아버지는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너무 달랐다. 생활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아버지, 습관처럼 보증 서주며 집안을 말아먹은 아버지, 어느 시절의 ‘-라떼’인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테다.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음을. 막무가내 같았던 아버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오지라퍼 같은 행동이 감동을 불러왔으며, 기억에서 사라진 아버지와 ‘나’의 애틋한 시간을 다시 그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늦게나마 차근차근 아버지의 삶을 복기하던 ‘나’는 아버지가 바라던, 딱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이번 생에서 놓아주려고 한다.
책으로 농사를 배우고, 그마저도 완전하게 배울 생각을 못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그놈의 혁명이고 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농사라도 지어야 식구들 먹고살 텐데, 이놈의 영감탱이 허구한 날 혁명 타령이나 하고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으로 평생 살아가는 모습에 화병도 났을 법하건만, 아버지의 혁명 동지로 살아온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변하지 않더라. 사상의 지향점 앞에서 한편이 되었다가 상황에 따라 반대편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이 우습다. 아마도 아버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해방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 사흘의 시간이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하는 시간 그대로 가치 있었다. 이래서 죽은 이를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이룬 자유를 이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딸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답게 살다간 아버지의 인생을 이렇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하고 죽음 후의 자리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루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는 다 풀리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8~249페이지)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시간마저 희미해졌다. 대화다운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혹시 또 모르겠다. 살아있는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한 채로 떠났는지도.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지금 내 마음이 다독여질 것 같다. 평생 자기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기억된다면 내 인생에서 작게나마 남아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참 의미 없어질 것 같다. 어쨌든, 각자의 고단한 인생을 잘 정리하고 떠났다면, 그랬다면 된 거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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