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인물편 - 벗겼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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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오늘의 세계가 먼 훗날 어떻게 들려올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기름값 전쟁을 일으킨 배경이 된 인물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세계사에 기록될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기름값으로 남편은 출퇴근만 겨우 하는 정도다. 주말의 우리는 버스나 도보로 다닌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장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삼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지만, 무엇보다 이 전쟁이 얼른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경제적으로나 피해자를 위해서나. 알렉산드로스가 전쟁의 명문을 찾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 오늘의 이 전쟁도 분명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으면 세계인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다.


TV로 방송될 때 자주 챙겨보던 프로그램이다. 제시간 못 맞추면 아쉬워서 다시 보기로 가끔 찾아보기도 했다. 역사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제작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치 구연동화 듣는 기분으로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매번 주제에 잘 맞는 강연자가 나와서 눈과 귀를 호강시켜줬다. 무엇보다 역사 지식이 쌓이는 만족감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역사에 쉽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각 회차에서 만난 여러 인물 중 몇 명을 소개한다. 이미 방송에서 봤던 내용도 있지만, 미처 다 듣지 못한 뒷이야기 같은 추가 부분이 더해져 꽉 찬 느낌이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이야기로 기억하게 되어 얼마나 재밌는 공부가 되는지 모르겠다.


세계사에 기록된 모든 사건과 인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이미 들어온 내용도 있겠지만, 이른바 가짜 뉴스인데도 사실처럼 기억하는 부분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의 진실을 들려주면서 우리가 가짜 뉴스에 속지 않도록, 가짜 뉴스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그녀가 하지 않은 말들, 그녀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상황들이 그녀를 구석으로 몰았다. 운명이 그녀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도 모른 채로 흘러왔을 뿐인데, 프랑스는 그녀를 악녀처럼 여기고 프랑스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인물로 만들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안 되는 유명한 말로 그녀를 비난했고, 그녀의 끝은 결국 단두대였다. 슬픈 결혼생활로도 모자라 프랑스 국민의 미움까지 감당해야 했던 어린 소녀의 인생은 참담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국가적 결합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버려 절망적이지만,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보이는 것 말고, 그 이면의 이야기까지 찾아봐야 한다는 것.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한 나라, 전 세계의 진실이 다시 보일 거다.


흥미로웠던 건 폭군이라 불리던 네로였다. 어렸을 적부터 너무 익숙하게 들었던 폭군 네로.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못된 성질의 황제였다고 알았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누구도 그가 어릴 적부터 폭군이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내 기억의 오류였다. 그에게 붙여진 폭군이란 수식어가 마치 처음부터 있던 것처럼 여기게 된 건 왜일까. 네로는 엄마의 치맛바람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가 원래의 성정대로 성장했다면 어쩌면 인자하고 현명한 성군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나중의 일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린 소년이 엄마 손에 이끌려 권력 다툼의 한 가운데로 끌려들어 갔을 때 이미 그의 인생은 그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쥐고 흔드는 대로 듣고 따라 해야만 했던 그의 성장 시기는 점점 그가 성인으로 살아가는데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결국, 여자 문제로 어긋난 모자 관계는 폭군 네로라는 이미지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그를 향한 수식어는 그의 성정에 영향을 끼친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종종 등장하는 수렴청정과 비교하면 어울릴까?


듣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내용과 많이 다르기도 하다. 역사에 남겨진 인물들이 모두 업적만 세운 건 아닐 테지만, 그 이면의 자세한 내용을 몰라서인지 알려진 좋은 이야기만 기억에 남았다.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적 입지와 인간미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노예 해방에 앞장섰다는 링컨 역시 그의 정치적인 발언이 온전히 노예 해방에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노예 제도를 찬성하지도 않지만, 노예 제도를 활용하는 이들의 방향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농사에 필요했던 인력을 흑인 노예로 채웠던 미국의 남부, 기술력이 우선이라 흑인 노예가 절실하지 않았던 북부의 싸움은 사실 노예 해방을 수면 위로 올려놓기도 했지만, 무역 제재와 각자의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났고, 북부든 남부든 피해가 있기 마련이다. 전쟁이 끝나고 무너진 지역의 복구가 우선이었지만, 이미 몰락한 농장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우선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도 있고, 링컨이 더 크게 본 것은 미국의 통합과 유지였다. 미국의 남북전쟁, 링컨의 노예 해방의 진실은 정치적인 판단이 깊게 개입되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미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다양한 흑인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흑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을 보호하는 민권법이 탄생했으며 제대로 된 투표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중략)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흑인 노예의 해방과 그들이 법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와 부합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387페이지, 벌거벗은 대통령 링컨)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단순한 정의는 뒤로하고, 그 이면에는 그의 정체(?)와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돈을 좋아하는 상인이었고,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찾으러 떠났으나 그가 얻은 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신대륙 발견의 모험은 실제로 새로운 땅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터전으로 삼은 원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자기 문명과 종교를 강요하면서 대립하고 억압한다. 칼을 보고도 무엇인지 모를 원주민의 낙원 같은 영역을 그들은 정복하려고 했고, 살상한다. 그렇게 신대륙을 손에 얻고 좋았을까? 새로운 발견에 눈이 뜨이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좋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측면도 많았다. 그들이 열어놓은 여러 항로, 그리고 실크로드는 대륙과 대륙 사이의 무역이 가능해졌지만, 그렇게 오가는 많은 것 중에서 질병도 있었다고 하니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컸다. 문명이나 물질만 교류한 게 아닌 게 되었다. 얻은 게 있는 만큼 피해도 감당해야 했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먹고 살았던 원주민은 살 곳을 잃었고, 그들의 생을 빼앗겼다. 그렇게 생긴 대륙의 발견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얻는 것만큼 내놓아야 하는 건 역시 교환의 정의인가 보다.


해적과 손잡아 대영제국을 만든 엘리자베스 1세는 여성의 몸으로 그 많은 공격을 받아냈다. 그녀의 성장 역시 고요하지는 않았으나, 그녀가 스페인과 싸우면서 일궈낸 업적은 대단하긴 하다. 그 배경에 해적의 활약이 있었다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대영제국 측면에서 보면 나라가 탄탄하게 커진 시간이었으니 좋은 결과라고 해야 할까. 정치를 잘한 인물 같기도 하다. 길 위의 사람들과 전염병을 단속하려고 법을 만들고, 세금을 조정하면서 국민의 반감을 잠재우기도 한다.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나 국토 확장이나 영국 의회를 조종한 듯하다. 그래도 완벽한 군주는 아니었다. 부국강병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녀의 인생에도 끝은 있으니 말이다.


궁전은 왕이 사는 곳이지만 베르사유 궁전은 그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루이 14세가 자신의 절대적 권력을 과시하는 장소인 동시에 왕이 가장 통치하기 힘든 귀족을 길들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곳은 한번 발을 들인 귀족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덫과 같은 곳이 됩니다. (234페이지, 벌거벗은 태양왕 루이 14)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주장하고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이를 포장했지만 살아 있는 신이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불가능한 꿈에 불과했습니다. (257페이지, 벌거벗은 태양왕 루이 14)


엘리자베스 1세와 비슷한 분위기로 읽었던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역시 알려진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권력에 집착이 심했고,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의 세우면서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돈이 드는 법. 그가 무리한 덕분에(?)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졌고, 그의 마지막 역시 초라했다. 그저 평범한 노인이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의 끝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무리하게 살아오느라 애썼던 시간만큼 칭송받으면 좋으련만, 그의 끝을 보니 그다지 현명한 왕으로 기억되지는 않을 듯하다. 나폴레옹 역시 그의 출신에 심한 고민이 있던 인물이라, 그 자신의 프랑스 황제가 되고 나서도 그는 완벽을 추구했던 것 같다. 권력을 갖기 위해 이혼도 불사하고,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기도 하지만, 그의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지는 않았다. 그가 이뤄낸 많은 업적이 너무 과했던가. 아니면 무대뽀(?) 정신으로만 그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걸까. 그의 몰락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의 계획과 추위를 준비하지 못한 전쟁은 많은 병사를 죽음으로 몰았고, 그에게도 치명타를 입혔다. 백일천하로 끝난 워털루 전투까지, 그의 활약은 그렇게 끝이 난다. 분명 그에게도 좋은 평가가 있겠지만, 역사의 평가는 역시 양면이 있다는 게 맞는 말인듯하다.


칭기스 칸이 이뤄낸 몽골 역시 피를 깔고 있었다. 듣고 보면 비극의 시간이었으니, 어느 시대 어느 지도자에게도 칭송받는 것 이면의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절대 권력을 위한 진시황제의 폭정은 만리장성을 세우면서 극에 달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뭔가를 만들고 세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에 희생당하는 건 선량한 국민이고, 자기 권력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은 역시 몰락을 부를 뿐이다. 나중에서야 드러난 진시황제의 무덤 이야기나 사진 등은 정말 입이 벌어져서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위신을 세우고 싶었을까? 죽은 후에 그렇게 묻히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기는 죽고 없는 세상에 그렇게 알려지는 게 좋았을까? 여전히 나는 죽은 후의 시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진시황제의 무덤을 보면서 많은 이가 다양한 생각을 할 것 같다. 그의 힘을 여전히 느낀다고 해야 할지, 무덤까지 그 정도로 만들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은 누가 위로해주냐고 따져 물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코 폴로가 멀리 떨어진 중국 땅까지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실크로드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몽골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몽골 제국은 실크로드를 따라 교통과 통신 네트워크를 모두 연결해 실크로드를 관리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몽골 제국 전체에 철도를 깐 셈이죠. 마르코 폴로 또한 몽골 제국의 잘 짜인 역참(驛站) 교통로를 이용해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137페이지, 벌거벗은 무법자 징기스 칸)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뤘지만 이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창업(創業)은 이뤘으나, 나라를 지키는 수성(守成)은 리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진시황제와 진나라의 역사를 통해 새로움을 개척해 나가는 창업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수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나라와 같은 일이 역사에서 반복될 것입니다. (67페이지, 벌거벗은 정복자 진시황제)


이긴 자,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는 역사는 이제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누가 썼든 언제 쓰였든, 이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 진실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모습에 치중한 기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과정, 끝이 있다.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아도 보일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다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듯 과거와 현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렇게 쌓여가는 시간의 기록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르니, 언젠가 마주할 장면들 아니겠나. 속성으로 배우면서 세계사의 큰 그림만 휘리릭 넘겼다면, 이제는 한 사건 한 인물 마주하면서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세계사의 흐름을 보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아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 현재가 이루어진 과거, 미래를 그리는 오늘의 이야기가 채워지는 과정을 봐야 한다. 이야기로 만나는 역사를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재밌게 역사 공부를 하는 방법 하나를 알게 되었다.


송에서 다 못 본 내용, 방송의 여러 장면에서 큰 발자국을 남긴 인물을 추려서 완성된 이 책으로 우리 역사 속 인물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인물이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지, 시도와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후의 인물은 또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 많은 인물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흐른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지역에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해석으로 지식의 장을 넓혀보자. 이런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고, 여운을 느끼고 방송에서 못다 챙겨본 부분을 이렇게 책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외우지 않아도 좋은, 그냥 듣기만 해도 즐거운 역사 여행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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