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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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래스카의 작은 마을 스위트워터에는 포레스터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저택이 있다. 평범한 그 집에 포레스트 대령과 그의 아내가 산다. 누구라도 그 마을을 지나면서 머물 수 있는 곳, 마을 사람 모두가 우러러보는 곳이기도 하다. 철도사업으로 부유한 포레스터 대령의 집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겠지. 사람들이 보는 그 집은 그런 부러움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대령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항상 환대했으며, 포레스터 부인은 집을 둘러싼 숲에 찾아오는 아이들도 반갑게 맞아주며 가진 자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아마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부부를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 집에 판사인 삼촌과 함께 드나들던 소년 닐. 그는 상냥한 포레스터 부인을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부인을 보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던 중 포레스터 부인을 향한 그의 마음은 변한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단순히 외모의 변화만은 아닐 테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시선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것,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영향이 있는 어떤 것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닐이 바라보는 포레스터 부인이 그랬다. 그의 눈에 부인은 아름다운 여인이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대령에게 최선을 다하는 아내로 보였다. 대령 역시 아내와 잘 지냈다. 누가 봐도 두 사람 사이의 불화나 나이 차이 때문에 오는 불안함 따위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포레스터 집안이 쇠락해가고 대령의 몸이 아프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인의 마음은 예전과 같지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제 올 게 왔군 싶을지도 모른다. 나이 많은 남편을 돌보는 일이 이제 지겨워졌겠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혀를 차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상황이 변하면서 생기는 시골 생활의 지겨움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춤을 추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그녀가 겨우 한숨 돌리는 시간은 남편의 돌봄을 잠시 맡겨두고 집 근처의 물가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겨울이면 마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내고 오는 삶이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하고 갇힌 듯이 사는 것을 상상해보라.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그녀의 이 욕망을 본 순간 닐의 시선도 변했으리라. 내가 아는 부인은 저런 사람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부인이 저럴 수가 없는데? 뭐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어린 그가 다 알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제 서서히 보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다르지 않을 그 마음 말이다.


그러면서 점점 부인과 상대적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령이었다. 처음 대령을 봤을 때는 그저 나이 많은 남자가 돈을 무기로 젊은 부인과 사는 건가 싶었다. 그에게는 두 번째 아내였고, 시골의 조용한 생활에 익숙한 동네 유지 정도로 보였는데, 그가 참 어른이구나 싶어 보였던 일화가 그를 추락시켰음에도 그는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으로 다시 보인 거다. 그가 임원으로 있던 은행이 파산하게 되자, 그는 집을 제외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며 은행 고객을 지켰다. 사람들의 신임을 다시 굳건히 하면서도 그는 가난한 삶으로 들어왔다. 그런 선택을 누군가는 말렸을 테지만, 그는 인간으로 우선 돌봐야 하는 것을 선택했다. 포레스터 부인은 그의 선택을 존중했지만, 가난한 삶은 그녀가 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령을 떠나지 않고 돌봤으며, 대령 옆에서 아내의 역할을 해냈다. 포레스터 플레이스에 찾아오는 많은 남자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대령은 그녀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 문득 닐이 느꼈던 것처럼, 아마도 대령은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침묵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모두가 그녀를 아름다운 작품처럼 여기던 것도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던 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곁에 계속 머물기 위해 고요히 있던 것일까.


그 무엇도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의 옆에 있어서 존재감을 갖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지나고 보니 다시 보인다. 포레스터 부인은 대령의 옆에서 아내의 모습으로 있던 게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아마도 소년 닐이 처음 포레스터 부인을 마음에 두게 되는 건 이 장면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소년의 눈에 자연스럽게 보이던, 아내가 남편의 옆에 머무르는 게 익숙한 그런 거 말이다. 부인은 그곳에서의 삶을 힘들어했는데,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감당할 수 없던 것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인생과 자꾸 멀어져가는 불안함에 어느 곳에도 마음 두지 못했겠지. 대령은 점점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포레스터 플레이스는 쇠락해가며 남은 게 없고, 부인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했으니. 닐이 바라보는 부인은 점차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추한 인간으로 보였던 건 아닐까. 누가 봐도 비열한 청년 아이비와 함께 있는 부인을 보는 닐의 마음은 절망이었으리라. 부인이 그럴 수는 없다는 확신, 그런 부인에게 그동안 가졌던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은 순간을 견딜 수 없었기에, 그는 떠났다. 자기 인생을 살아야 했기에.


세월이 흐르고 닐에게 들리는 부인의 소문은 좋을 수만은 없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도 마을을 떠났고,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아니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거나. 누군가 그녀를 돌봤다면 잘 돌봐줬으면 좋았겠다 싶은 바람만 남았을 즈음, 그에게 들려온 소식 한 자락은 그를 안심시킨다.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그 시간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는 다시 그녀를 찾아갈 수도 없었을 텐데, 그 불편한 마음을 다독여준 그녀의 안부는 오히려 그를 더 성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되는 어떤 것을 다시 느꼈으리라. 치열한 삶 앞에서 포기하거나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누구나 그런 순간 앞에서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음을, 한 사람의 인간에게 담긴 아름다움은 한 가지 모습은 아니라고. 그녀를 향해 독처럼 뱉은 말을 되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썩은 백합이 아니라 살아가려고 애쓰던 질긴 잡초였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역시 각자의 몫이려니. 대령이 부르던 그 아가씨를 우리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가씨의 모습은 삶이 다양하게 만드는 거라고. 인간에게는 살아가려는 욕구, 의무가 있으니 말이다.


남자에게 의지하는 여성의 삶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건지도 모르겠고, 남편의 그늘에 머무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여기던 시절의 시선을 반박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포레스터 부인의 인생이 대령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은 없는데, 주변의 남자들이 보는 그녀는 위대한 남자들 모두의 과부라고 여기곤 했던 것. 한 시대가 끝났다고, 그녀의 울타리가 사라졌다고 그녀 스스로 소멸하기를 원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대령(남자)이 없는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마을을 떠난 그녀의 생활 역시 달라지지 않았지만(다른 남자를 만났다), 닐이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들으면서 점점 그녀의 삶과 인간의 변화를 알게 된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다른 누군가를 예술품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인간 역시 단순하지 않다. 삶이 만드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그 대상이 당신의 첫사랑이어도 인정해주기를,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당신은 그녀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 시절의 그 장면을 다시 그렸다.


아직 살아 계실까?” 닐이 물었다. “만나러 가볼 생각마저 드는데.”

아니, 3년 전에 돌아가셨어. 그건 확실해. 스위트워터를 떠난 다음에도 어디에서 살든지 매년 현충일에 대령님 무덤에 꽃을 놓아 달라고 그랜드 아미 포스트에 송금하셨거든. 3년 전에 영국인 노인네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포레스터 대령님의 무덤을 앞으로도 계속 관리해 달라며 수표를 동봉했대. ‘내 아내, 메리언 포레스터 콜린스를 추모하며라고 적혀 있었고.”
그럼 부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살핌을 잘 받았다고 확신해도 되겠구나.” 닐이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네가 그렇게 느낄 줄 알았어.” 따뜻한 감정의 물결이 얼굴을 스치며 에드 엘리엇이 말했다. “나도 그랬거든!” (20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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