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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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팍팍할 때, 인생의 큰 벽을 만난 것처럼 여길 때 테스 형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나훈아 아저씨의 노래로 대신에 하면서 계속 테스 형을 부르잖아. 혹시 모르지, 그렇게 불러대면 테스 형이 정답을 알려줄지도. ^^ 그만큼 철학적 사유는 우리 인생의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현명한 답을 찾고 싶을 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더 좋은 방향이 보일 것 같을 때. 그건 비단 어른의 세계에서만 찾는 일은 아니다.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어른이 보는 눈과 생각이 그대로 적용되곤 한다. 때로는 아이에게서 배운다고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이 책이 낯설지 않다.


처음에는 이사카 고타로가 무슨 어린이 대상으로 책을 쓴 건가 싶었는데, 초등학생을 주인공을 내세워 말하고 싶은 것은 연령대 상관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주제였다. 선입관.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서 판단을 흐리게 하기도 하는 나쁜 시선.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각각의 소제목에서 내용이 보이기도 하지만, 더 재치 있는 건 제목이다. ‘거꾸로소크라테스, 슬로하지 않다’, ‘옵티머스, ‘스포츠맨라이크, ‘거꾸로워싱턴. 제목에 붙은 부정의 단어는 아이들이 보는 부당한 상황을 순수하고 재치있게 건너감으로써 의미를 바꾼다. 우리가 가진 선입관이 얼마나 큰 부정의 상황을 만드는지 보여주는데, 아마 속으로 뜨끔한 사람 많을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진 선입관을 생각하고 적어내느라 바빴으니까.


우리는 남에게 지나치게 영향을 받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지.” (25페이지)


선입관으로 가득한 담임 때문에 한 아이가 상처받는 거꾸로 소크라테스, 어른의 선입관이 아이들에게까지 선입관을 심어준다는 교훈이었다. 옷차림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분홍색 티셔츠를 입었다고 여자 같다고 말하는 어른을 존경할 수 없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주눅이 든 채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아이들끼리 겪어가면서 적응해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어려움의 시작을 담임이 만들어버렸다니. 이런 몹쓸. 슬로하지 않다의 아이들은 왕따의 한 가운데 있다.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 사이에 있는 아이들까지 이 상황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누구도 왕따당하지 않게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조심스레 제시하는 한 아이의 과거를 불러온다. 한번 가해자는 영원히 가해자인가?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니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이유가 당연하지 않다. 작은 선입관 하나, 스스로 상대를 무시하려는 이유 없는 생각이 상처를 만들게 된다.


비옵티머스의 한 아이는 매일 같은, 낡은 옷을 입고 다닌다. 매일 똑같은 낡은 옷을 입고 다니니까 가난할 거로 생각하는 일. 차림새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람의 외모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지레짐작해버리고야 마는 일이 부끄러워지는 건 뭔지. 범죄자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언스포츠맨라이크의 다짐 같은 생각은 단순하지 않았다. 범죄자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다. 어느 시점이 되면 범죄자를 죄의 대가를 치르고 사회에 복귀한다. 우리는 그 사람과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한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또 죄를 저지를 거라는 선입관이 옳은 답을 찾는 걸 방해한다. 조금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꾸준히 고민하고 협의하는 일만이 이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은데 마냥 아쉬웠다. 어느 날 친구의 몸에 생긴 멍 자국으로 새아버지가 이 아이를 학대할 거로 생각한 거꾸로 워싱턴,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매체에서 접하는 부모의 학대는 생각보다 많고 다양했다. 그런 것을 접하다 보니, 어느 날 결석한 친구를 찾아가 확인한 미심쩍은 상황이 학대로 연결되었다는 게 씁쓸했다. 많은 상황이 그렇듯, 확인하지 않은 상태를 단정 지어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딱 한 번 먹어본 적 있는 치즈가 떠올랐다. 냄새가 지독해서 상한 줄 알고 금방 뱉었다. 하지만 그 후에 엄마가 그건 고급 치즈야하고 가르쳐주자 별안간 그게 독특한 맛으로 느껴졌다. 알맹이는 변하지 않았는데도. 정보 때문에 맛이 달라졌다. (131페이지)


아이들의 모험 같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사례의 선입관이 나온다. 이런 선입관이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배워가고 겪어가면서 습득하는 게 아닌, 어떤 단면 하나만을 보고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상황을 종료해버리면, 편견 뒤로 숨어버린 진실은 어떻게 찾을 수가 있나. 이건 소설 속 어른이 보인 태도에 기인한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는 식의 태도가 아이들의 시선을 결정하려고 한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문답식 산파술이라는 방법으로 모든 사물과 신념, 진리를 의심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배워야 할 자세를 어른들이 막고 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거꾸로 소크라테스가 되어, 옳지 않은 어른들의 선입관을 뒤집어버리게 된다. 어떤 가능성을 무한하게 하고, 상대를 판단하는데 보고 들은 그대로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명한다. 아이들 특유의 엉뚱함과 재치로 하나씩 풀어가는 문제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소소한 상황 하나하나가 사고와 성장의 큰 역할을 한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선입관이 맞을 수도 있겠지. 그 사람 겪어보니까 이렇더라, 지난번에 보니까 위험하던데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런 말이 스스럼없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을 거다. 어떤 일은 분명 전조 증상이 있는 것처럼, 일어나고야 말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부분이 어른의 편견이나 선입관으로 이미 색이 입혀진 건 아닌지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힘이 부리는 편견일지도, 약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 잘못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이의 성장에, 어른의 올바른 사고에 큰 벽이 될 선입관은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도 좋겠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다시 시도해도 좋아질 일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 인생에는 언제나 다음이 있다. 지금이 아니라도 또 다른 기회를 만나면 되는 일이다.


린이가 주인공이지만 어린이 도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린이가 읽기에는 어렵고 무거워서 힘들 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린이에게는 어른의 방식이 모두 옳은 건 아니라는 생각을, 어른에게는 오랫동안 쌓아온 선입관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모험 같은 이야기로 어른과 아이 모두 성장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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