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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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겠지. 내 자식이 예쁘고 귀하다. 마냥 품에 안고 키울 수 없으니, 내 아이가 집 밖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한다. 그저 아이를 잘 돌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을 바라던 시절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부모는 내 아이가 또래와 잘 어울리는 것이 큰 바람이 됐다. 학교에서 별일은 없는지,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 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내 아이가 왕따나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한다.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걱정이, 바로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 되었다.


사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일은 너무 자주 들려오는 뉴스다. 피해자는 얼마나 괴로웠으면 스스로 그 고통을 끝내고야 말았을까 싶고, 가해자는 왜 자기 잘못도 반성하지 못하고 폭력을 반복하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피해자의 부모가 있다. 내 아이가 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기도 전에 눈앞에서 아이가 사라진 고통을 감당하는 부모. 당사자가 아니어서 명확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로 아이를 보내줘야만 했다. 아이가 떠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이상한 퍼즐 조각들. 평소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알아가는 과정 역시 고통스러웠다. 시게아키의 아버지 역시 아들과 아내를 잃고서 진실에 근접하게 된다.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을 모두 잃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키타는 아버지의 반대를 비웃으며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불량배의 타깃이 된 후로 괴롭힘을 당한다. 계속된 갈취와 폭력에 시달리던 도키타는 이제 포기했다. 차라리 죽이라며, 험한 발길질에도 웃을 수 있었다. 그날도 공원에서 류지 일당에게 맞고 있던 도키타 앞에 피에로가 나타나 도와준다. 류지 일당은 일단 후퇴하고 도키타는 살았지만, 이 평온이 오래가지 않을 것은 안다. 피에로는 도키타에게 제안한다. 류지 일당을 벌해주고 싶은 시나리오와 계획을 짜라고, 자기가 그 애를 죽여주겠다고.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것도 잠시, 도키타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고 완전범죄로 만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가능할까? 마음으로는 당연하게 나쁜 놈들을 벌해주고 싶지만, 더는 괴롭히지 못하게 속 시원히 죽여주고 싶지만, 그게 완전범죄로 가능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어차피 살인한다는 건 살인 이후의 책임에 대해서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일 텐데, 도키타는 살인자가 되어 법의 심판을 받는 것 역시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매일 맞고 갈취를 당하느니 자기가 죽는 게 쉽겠다고 생각했을 거다. 피에로의 제안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건, 어차피 나쁜 놈들을 죽이는 거고, 그 살인에 죄책감은 필요 없다는 당위성이 생기기도 해서다. 역사적인 그날, 학교 폭력으로 자살이 계속된 매년 116일을 저주의 날로 만들기 위한 디데이를 설정한다. 더는 류지 일당이 이 폭력을 이어가지 않도록 이 살인을 기어코 완성하리라. 도키타 역시 그들에게 계속 당하고 있지 않으려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실행해야 했다. 피에로의 도움으로 이 계획은 반드시 완성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폭력의 중심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가 있다. 아이들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동시에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돈을 뺏고 의기양양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서 가해자는 더 쉽게 돈을 갈취하고, 폭력의 강도는 심해진다. 피해자는 처음에 반격하지만, 점점 힘을 잃는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포기하고, 그저 맞고 있는 이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 기적처럼 그 고통을 같이 해결해주겠다는 이가 나타난다면 손을 잡지 않겠는가? 피해자가 눈앞에 있어도 다른 이들은 모두 방관자가 되어 힘 앞에 무릎 꿇고 마는 상황에서, 믿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아무도 학교 폭력에 대해 바로 보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썼다. 두려움에 빠져 피해자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게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건 아닐까. 마치 주변의 두려운 시선을 즐기는 듯, 가해자의 폭력은 날로 심해지고 뻔뻔해졌으니 말이다.


작가는 단순히 학교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만 비추지 않았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서술하면서 독자에게 그 피해의 정도와 절망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닿게 하면서도, 가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묻는다. 가해자들에게 쌓인 가정 폭력의 시간이 아이들을 어떻게 성장하게 했는지 확인시킨다. 피해자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의 두려움과 외면을 담는다. 폭력 앞에서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묻는다. 지금 이 피해자를 계속 외면할 것인가? 당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성공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피해자의 고통은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폭력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대물림하듯 이어지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법이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흘러갈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억울함, 부모를 존경할 수 없는 슬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괴롭힘의 원동력이 되었구나. 그 사소한 시작에서 중대한 학교 폭력으로 발전한 것이다. (181페이지)


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미성년자이고,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는 것은 절망적이다. 갱생을 목적으로 반성하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준다는 의미겠지만, 그 갱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건 누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인가.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통의 감정을 피에로 페니가 나서주었지만, 그 역시 완전한 정의는 아니리라. 그런데도 우리는 읽으면서 페니의 등장에 안도하게 된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감히 시도하기까지 어려울 그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들지도 모르니까. 가해자가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와 피해자가 이루려는 복수의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 무조건 악인이고 무조건 선인이 아닌 게 인간이기에, 이 폭력의 기저에 놓인 한 개인의 성장을 보면서 누구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린다.


나를 심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학교 폭력으로 아이를 잃은 유족뿐입니다. (261페이지)


언제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폭력의 중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소설이다. 너무 잘 읽히기에 더 무거워진 이 소설이, 학교 폭력을 걱정하고 학교 폭력의 중심에 있는 모든 이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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