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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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자기가 앉은 자리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당연하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서 큰 노력을 했을 것이고, 또 그 자리 아래의 사람들까지 통솔하고 맡은 일을 수행하는데 책임이 따른다는 건 진리다. 그 자리 앉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힘 때문이다. 이 소설 속 소장, 반장, 관공서와 공사 관계자들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부들은 반장의 지시 아래 일하고 그에게 소속된 사람들이다. 반장의 팀에 합류해 공사 현장을 같이 다닌다. 여러 명의 반장 역시 공사 현장 소장의 지시를 따른다. 소장이라고 자기 맘대로만 할까. 그 역시 시행사와 공사와 관련된 여러 문제와 절차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한다. 피라미드 같은 구조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이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그 힘을 확인하고 즐기기도 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책임을 망각한 채로 말이다.


국도 옆에 파 놓은 터에 관을 메우는 공사 현장은 인부들의 바쁜 몸짓이 한창이다. 그사이에 다른 인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한 남자 선길이 있다. 반장은 그가 신경 쓰이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현장 소장은 선길을 멧돼지 보초병으로 세운다. 공사 현장과 멧돼지가 무슨 연관인가 싶을 테지만, 우습지도 않은 그 일의 배경에는 소장의 비리가 있다. 소장은 늘어나는 공기(공사 기간) 때문에 발생한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부족한 돈을 인부의 식사를 위한 현장식당 예산에서 챙긴다. 부실한 식사가 불만인 인부들의 항의에 소장은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멧돼지가 식당 부자재를 위한 비닐하우스 채소를 망가뜨려 놓아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에 작업 현장에 끼지 못하고 어색한 선길을 밤의 비닐하우스 보초병으로 세운 것이다. 어쨌든 소장은 일 못 하는 사람을 자르지 않고 임무를 주어 하루 일당을 챙겨주고 있다는 생색을 낸다. 아무도 소장의 말에 대꾸 못 하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우리 인생과 닮은 공사 현장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 무언가를 채우고 올려세워 눈앞에 보여 주는 것. 어느 날은 땅을 파고 있던데, 며칠 지나서 보니 바닥이 단단하게 메워져 있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보니 건물 1층이 올라와 있어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뭔가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게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지, 그 현장의 논리 속에 우리 인생이 걸렸다고 여긴 적은 없다. 하지만 닮았다. 우리 삶 역시 자꾸 배우고 노력하고 올라가면서 채워지는 거 아니겠나. 규정대로 공정하게만 오른다면 문제 될 게 없겠지만, 현실의 전쟁터는 공정하지 않았다. 은폐와 카르텔로 얼룩진 불의의 현장 그대로였다.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비리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관리가 아니라 힘으로 움직이는 곳이 된 공사 현장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도 모자라, 피해자를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로 왜곡시킨다. 마치 그러니까 죽었지, 그래도 싸다라는 비난을 받아도 충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피해자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해 죄송한 마음으로 사죄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입힌 사람의 가족이 되었다는, 배우자를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한다. 관리자들이 관리를 잘한 덕분에.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46페이지)


처음 알았다. 관리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내가 아는 책임과 너무 달라서 말이다. 책임을 지는 게 아니고 지우는 거라는 말이 이렇게 섬뜩하게 들릴 줄이야.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든 시작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상황을 너무 쉽게 바꿔놓는 소장의 발 빠른 처리가 너무 무서웠다. 피를 흘리며 죽은 현장 근로자가 내 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혹시 이거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인지 내 기억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부조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피해와 결말을 만들어내는지 적나라해서 이게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여겨도 충분했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얼마나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한다. 동시에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선택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지를.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던 악당이 세상 악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주변에 얼마나 평범한 악당이 많이 존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어쩔 수 없이 힘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우리다. 때로는 그 힘에 주눅 들고 타협하며,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대신 떠안으며 대가를 챙기기도 한다. 힘에 기생하는 작은 인간이기도 하니까. 현실 논리와 상황 논리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은 괴리감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소설 속 비극은 선을 넘는 일이었고, 불의를 보고 넘길 수 없게 했다. 슬프게도 이런 이야기는 주변에서 자주 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비극인데 흔하다니, 반복해서 일어나기에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게 절망적이다.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너무 익숙한 비극이 되어 이제는 그 슬픔과 불의조차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될까 봐. 그래서 마지막에 현경이 굴착기의 시동을 켰을 때 흥분했던가 보다. 아직 우리가 인간이기는 하구나 하는 안도감에, 이 불의를 그대로 묻어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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